2주간의 행복한 수업의 끝을 마주하며

by 청블리쌤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던 2주간의 과정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학교에서 아침 9시부터 12명의 예비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 동안 수업을 하고, 오후에 인근 고등학교에서 예비 고1, 고2 학생들 대상으로 3시간 수업을 하는 일정이었다.

그 기간 중에 영어교사 대상 6시간 강의도 하루 있었고, 1정 연수 후배교사들을 대상으로 2개 반*2시간 강의 일정도 있었다.


수업은 설레지만 늘 부담은 내 수업이나 강의가 제대고 먹힐지에 대한 걱정이다. 막상 시작되면 대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하게 진행을 하지만 이번엔 2주간 4종류의 수업을 준비하는 거여서 그 준비 전까지의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크긴 했다.


하루 평균 5시간-6시간 수업이라서 체력도 걱정이었지만, 목이 너무 아플 것도 염려되었다. 수업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로 수업을 하는데도) 목이 너무 쉽게 아픈 육체의 가시 같은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그 긴 시간을 거의 혼자서 떠들어댔다.

너무 해주고 싶은 말들과 내용이 많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활동을 시키면서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해 서툴러서 그렇기도 하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늘 기회비용을 생각하는데, “기억은 생각의 잔여물”이라는 말을 놓고 고민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혼자 수업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면서 집약적인 전달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난 어떤 활동을 시킬 것인지 보다,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지에 더 진심인 편이다.

신기하게도 목은 아프지만 수업을 하면서 난 방전이 아니라 충전이 됨을 느낀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나의 열정을 끌어모아 쓴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열정을 수업과 강의에서 담아낸 감사한 느낌이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는 참 힘든 과정이다. 거의 3주간 하루 6-7시간씩 연수를 들어야 한다. 내 경우도 그 기간 동안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하루 종일 수업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감정이입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지루함과 힘겨움을 덜어줄 수 있는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1정 연수 강의가 끝나고 한 선생님이 내 블로그에 서로이웃을 신청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1정 연수로 방학을 다 빼앗겼다는 생각에 아침에도 우울했었는데 선생님 강의를 듣고 빨리 학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졌어요.


연수를 들은 모든 선생님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아니지만, 순간 나의 수고와 노력이 다 보상받는 뿌듯한 감격을 느꼈다. 그런 느낌이 아니라도 강의 중의 행복감은 후배 교사들의 열정값에 비례했음을 체험했다.


이번에 오후 수업을 했던 학교는 20여 년 전 근무했던 여고였다. 학교로 가는 골목골목에도 20년 전의 기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학교는 새 단장을 하고 현대화의 과정을 거쳤지만, 교정과 교실, 복도에서 나의 젊음이 곳곳에 묻어났다. 내가 근무하는 4년간의 시간 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교실에 앉아있던 거였다.


기간 중에 마침 서울에서 교사를 하다가 대구에 내려와 있던 그 학교 졸업한 지 20년이 된 제자를 점심시간에 잠깐 만났다. 나란히 학교 교정에 서서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학교 건물 리모델링이나 긴 세월의 흐름으로도 꽁꽁 숨겨놓을 수 없는 각자의 추억으로 잠잠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무리 소중한 순간이라도 영원히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머물 수는 없었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과 성장의 여정을 거치며 그곳에 다시 서게 되었지만, 우리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오늘의 모습이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 추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장의 구성 성분으로 우리 내부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문득 그 학교에 유예를 하려 하다가 사대부고에 초빙이 되어 떠나게 된 봄방학 기간에 겨울방학 때 처음 보충수업으로 만났던 예비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수업이 떠올랐다. 희망 학생들을 이메일로 신청받았는데 놀랍게도 80명을 넘어섰다. 아이들도 나와의 수업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던 거였다. 가장 넓은 교실을 잡아놓았지만 책상과 의자가 모자라서 아이들은 다른 반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일부러 들고 나르는 수고를 해가면서까지 하루 2시간씩 3일간의 수업에서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집중력을 내게 쏟아 주었던 그 행복한 순간을 16년이 지난 지금도 난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은 수업에 대한 참여로 떠나는 나를 배웅하고 있었고 난 끝까지 함께해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마지막 수업으로 눈물처럼 다 쏟아내고 있었다ㅠㅠ


긴 과정을 돌고 돌아 다시 그곳에 2주간 머물면서...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1년 근무하고 다시 하게 된 고등학생 수업이라는 것도, 20년 전의 추억을 현실에 담아내는 것도 내게는 특별하고 축복 같은 선물 같은 경험을 누렸다.


2주간의 빡빡한 여정을 잘 끝내간다는 안도감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했음에도 아쉬움이 더 크다. 오히려 진심을 다해서 아쉬움이 큰 것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끝날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하루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선물을 하나하나 다 소중히 꺼내가며 드는 아쉬움이라서 감사했다.


학교 학생들도 방학 특별 수업을 마무리해가며, 졸업까지 학교에서 볼 날을 이제는 세어볼 필요도 없는 끝자락에 와 있다. 이 시즌이 되면 늘 느끼는 거지만 매일의 일상이 영원히 반복될 줄 알았던 느낌에 또 속았다. 그래야 일상을 무겁지 않게 살아가겠지만 난 또 두려운 이별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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