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꿈과 희망 지켜주기

꿈꾸지 않으면(간디학교 교가)를 들으며

by 청블리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 제천 대안학교 간디학교 교가 <꿈꾸지 않으면>



https://youtu.be/P3E8iFWNeEI





대안학교의 설립 배경과 현실을 생각하면 가사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대안학교는 입시 중심의 기존 공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며 자율과 자치, 상생의 가치를 중점으로 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생겨난 학교(나무위키 정의)"에서 출발하지만, 그 학교가 추구하는 핵심가치인 '다양성'처럼 한두 마디로 대안학교를 범주화하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대안학교에는 문제 학생들이 다닌다는 통념으로 설립 지역에서 반대를 겪기도 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별 헤는(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이기도 하는) 심정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낯선 길을 간다는 다짐 같은 가사가 가슴을 울린다. 대안학교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인식과 통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의 아름다움과 크기를 소득수준이나 안정성으로 재단하려 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른들은 남들이 주로 선택하는 확실한 길을 아이들이 가주기를 바란다.

어른들의 계획으로 정한 길을 가는 것만이 꿈을 이루는 정통코스로만 인식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물론 그곳이 확률 높은 길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행복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당장 지금 이 현실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후에 어른으로서,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 수 있겠냐는 다그침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누군가에게는 맞는 말이겠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되어 힘겨워하며 좀 더 기다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발달 속도와 출발점이 다른 아이들을 다 품을 수 있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의 <시시하게 살기에는 너무 크신 하나님>이라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꿈'과 나누고 희생하면서라도 함께 하는 '교회의 꿈'을 언급하면서 이 노래를 소개하였다. 굳이 대형 교회를 29개의 교회로 쪼개어 일만 성도 파송운동을 진행하고, 40개의 교회까지 확장하려는 더 큰 꿈을 꾸는 것은 분명 모두가 추구하려는 보편적인 꿈과는 다르다. 그래서 목사님께는 이 노래의 메시지가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교사인 내게도 어디서든, 누구와 함께든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울림이 가슴속에 오래 남아 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의 평가와 입시의 과정에서 비교당하며 상처를 받고 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말 그대로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어른들의 역할은 장기적으로는 그 현실이 아이들에게 너무 큰 무게로 다가오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애쓰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동일한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면서 능력을 단정짓지 않고, 아이들의 각기 다른 성장과 각기 다른 꿈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며 함께 아파하며 기다려주는 일이다. 다른 아이들과의 꿈의 크기를 애써 비교하려 하지 않는 일이다.


아이들이 성적이 남들보다 좋지 않다고 해서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게,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이 없다고 해서 열등감으로 구석에서 웅크려있지 않게,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하고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면 좋겠다. 가치 있는 것을 이루었을 때에만 인정해 주기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아이들의 진짜 성장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사랑의 힘과 희망의 메시지로 현실을 살아간다. 어른들이 보태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힘든 깊은 상처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잠시 멈춰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 놓은 박제된 꿈에 자신을 다그치며 애쓰고 있다.

아이들의 노력과 배움과 성장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당장 증명받지 못해도, 전부 의미가 있다고 인정해주며, 그 계획과 시스템과 속도에 맞지 않는다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매 순간 행복걸음으로 성장하도록 격려하면 좋겠다.


지금 당장의 증거를 요구하며 확인할 수 있어야 희망인 건 아니다. 오히려 불안함과 걱정, 염려 속에서도 마음속에 품으며 힘을 얻게 되는 실체이며 그래서 오히려 안정감보다 불확실성에서 더 빛나는 것이 희망의 모습이다.


난 늘 불확실성과 불안함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아이들에게 외쳐왔다. 다 이루었다는 안도감의 환경에서는 꿈을 품을 이유도, 희망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게 된 순간은 감격스럽고 모두가 바라는 결과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과정 속에서도 사소한 성취와 성장에도 기뻐할 자격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의 사소한 성장이, 불안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게 되는 희망의 한 조각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다림과 믿음 속에서 스스로 그 희망의 단편을 하나씩 모아서 결국 희망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아이들이 꿈꾼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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