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쟤 깨워라
- 나도 쓸모가 있을껄
- 엄마가 보고 있다
- 오늘 흘린 침은 내일의 눈물
- 50분은 길지만 3년은 짧다
- 개념장착
- 대학 문은 좁지만 우리는 날씬하다
- 日職集愛 可高拾多(일직집애 가고십다)
하루의 일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 옆 반 정복
-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 왜 내 사촌은 다 성공하는가
- 합격 해도 안 해도 변함없는 사실, 나는 소중해
- 있는 힘을 다해 그날의 내가 바라는 지금의 내가 되길
- 한 번쯤은 서울 살아보자
- 해 보자 인생 만렙
- 2호선을 타자(대구 말고 서울 2호선입니다)
- 우리 엄마도 계모임에서 말 좀 해보자
- 합격자 명단에 귀하의 이름이 없습니다
- 우리는 같이 있고, 가치 있다
- 일단은 위대하겠습니다. 그 후엔 나누겠습니다.
- 적당히 살지 마
- 칠판 보기를 최애 보듯
- 공부하기 좋은 얼굴이다
- 오늘 뭐 할 거니?(계획의 중요성)
- 그러라고 보낸 학교가 아닐텐데
- ㅇㅅㅇ(인서울)
- 처음처럼
- 나를 망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
- 만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온다
- 네! 제가 할게요!
- 부딪쳐라 짜릿하게
-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
- 더불어 숲이 되자
- 느려도 괜찮아 멈추지만 않는다면
-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몇 년간 우리반 급훈은 '啐啄同時(줄탁동시)'였습니다. 일부러 학생들에게 뜻도 가르쳐주지 않고 학생들에게 급훈을 공모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학생들보다는 수업들어오시는 교과선생님들께서 더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뭐든 궁금해하는 것만큼 알게 됩니다. 그게 진짜 지식입니다. 관심이 곧 지식인 것이지요. 아이들이 급훈의 의미를 스스로 궁금해하며 알아갈 때까지 기다렸던 것, 그것 자체가 급훈의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 재미있는 급훈을 보고 이렇게 더 와닿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물론 전달하려는 제 모든 의도를 다 담고 있지는 못하죠. 그래서 원안을 고집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모든 교사들의 약점입니다. 어차피 학생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범위내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범위만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 범위 밖의 것은 교사가 수업의 자기만족이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채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사가 할 일은 학생들이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내의 최소한의 것을 제시하고 그들 스스로 완성 하도록 도우면서 기다리는 일입니다. 이는 지식뿐 아니라 인성교육이나 모든 분야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우리반 급훈이 뭐든 저는 '줄탁동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