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배 선생님이 시작하시는 학원을 응원하는 블로그를 올렸고, 문자로 응원의 메시지를 드렸는데, 자신의 블로그에 화답하듯 공유하고 있던 추억 하나를 꺼내주셨다. 자세한 에피소드 소개는 아래 링크에
고등문 국어 학원 블로그
https://blog.naver.com/ckdxotoa/222654525681
(위의 링크 에피소드에 어어지는 부연 설명)
둘째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회 달란트 잔치에서 아빠를 위해 손가락 지시봉을 사서 내게 전해주었다. 학교에서 언니들 가르치실 때 쓰라고 하면서...
아이는 감정이입하듯 수업할 때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저씨 선생님이 플라스틱 노란색 손가락 지시봉으로 수업하는 건 도무지 내 현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 같아서 일단 받아두고는 집안에 어딘가에 보관해 두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집에 있던 손가락 지시봉을 발견하고는 서운한 듯 내게 왜 학교에 안 가져가냐고 물었다. 다음날 마지못해 학교에 가져는 갔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서 수업시간에 가지고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너무 편리한 거였다. 고등학교였지만 내 손가락으로 칠판이나 TV 화면을 가리키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아졌고 내 신체적 핸디캡(칠판 위까지 손이 잘 안 닿는ㅠㅠ)도 극복하게 해주었다. 그 이후로 손가락 지시봉은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수업할 때에나 급식지도할 때에도 반드시 가지고 다녔다. 어느샌가 노란 손가락 지시봉은 청블리의 상징물처럼 인식이 되었다.
오래전 내가 근무하던 대구여고 1학년 학생들이 불우이웃 돕기를 위한 경매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선생님들께 전했다. 그래서 각 선생님들의 애장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게도 학생들이 왔다. 한참 망설이는 내게 뭘 망설일 필요가 있냐는 듯 내게 손가락 지시봉을 강제로 기부받아 갔다. 내구성이 높지 않아 소모품처럼 한 번씩 교체를 해주어야 하는 아이템이긴 했고, 하나의 가격이 천원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망설임으로 전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경매가 있던 날 퇴근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다. 내 손가락이 4만 6천 원에 낙찰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다수가 경쟁하다가 어느 금액을 넘어서서는 두 명이 경쟁을 하면서 가격이 계속 올라갔다고. 그 학생은 학생들 사이에 레전드가 되었다. 덩달아 나도 미안해졌다. 내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내 애장품에 그런 가격을 치른 거니까. 수소문 끝에 그 학생을 알아냈다.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학교에서는 핫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학생을 점심시간에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따로 사주었다. 그 학생은 내 손가락 지시봉을 들고 나와서 내게 싸인까지 받았다. 꼭 나 같은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내게 전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교사의 꿈을 현실로 이루려 교대에 진학했다.
이 글을 쓰기 전 그 학생과 통화를 했다. 한 번씩 내게 찾아오기도 하고 상담도 받고 그랬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전화를 감격하며 받았다. 손가락 얘기를 꺼내니 그 학생은 생생하게 그때 상황을 얘기했다. 친구들 사이에 여전히 회자되는 이야기라고... 경제관념 실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여전히 그 손가락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때로는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 소중한 느낌이 현실에도 살아남을 수도 있는 거였다. 어린 날의 철없던 무모함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을 그 학생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그 당시 너무 내 손가락이 갖고 싶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안 했다고...
꼭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난 그 제자의 실력과 인성과 아이들에 대한 진심과 늘 가슴속에 간직하는 열정에 대한 기억을 현실에서 불러내주었다. 어떤 상황에든 낙심하지 말고, 지금의 아픔의 깊이로 인해 이후 만나게 될 학생들의 이해와 공감의 깊이를 얻게 될 거라는 위로도 전해주었다. 지금 해야 하는 공부는 본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일 수 있으니 부디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고 애써달라고...
선배 선생님이 이제는 무대가 달라진 서로의 교육의 현장에 대해 이렇게 묘사해 주셨다.
냇물은 갈라져 있더라도 결국 강에서 만나 바다를 향할지니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에 진심을 잃지 않을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우리는 학생들을 만나는 축복이 주어져 있는 거니까...
그저 후회 없이 사랑하고 진심을 다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사의 존재 이유가 되고, 교사 행복의 모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