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자들의 자존감
졸업하고 선생님을 찾아오는 경우는 대개 안정적인 진학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의 은혜를 크게 느낄수록 그 보답은 학생 자신의 성취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답할 자격을 갖추어야 선생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 스승의 날 즈음해서 나를 찾은 제자는 재학생이 아닌 경우에는 졸업연도에 관계없이 의대, 교대, 지방 국립대 혹은 좋은 학과에 다니는 경우였다.
세상은 우리에게 경쟁을 가르치라고 하고, 그 경쟁 논리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교사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적어도 모든 학생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려 애쓰는 나의 경우는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와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조건 없이 그들의 편이 되어 응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성취의 여부로 사랑의 정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니, 그들의 성장과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Zt1KtUJjUrQ&t=1s
2. 학생들이 준 감동의 흔적들 중 일부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에게 복에 겨운 손편지를 받았다. 본인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 않았지만 버릴 것 없는 정겨움 가득한 감동적인 내용들 중 너무 개인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특히 감동했던 내용만 몇 구절 정리해본다.
이러한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교사로서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확인으로 인해 열정의 심지가 더 굳어짐을 느낀다. 그렇지 않더라도 늘 진심을 다하겠지만, 부족한 내게 깜짝 선물로 주어지는 보너스 같은 축복이라 늘 감격스럽고 감동이 된다.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첫 영어 선생님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물론 가르치시는 양이 많으시니까 헉헉대며 수업을 따라갔지만, 또 선생님의 여러 프로그램에도 다 참가해서 그런지, 가장 얻은 게 많고 성장한 과목이 영어인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 영어수업 시간은 힐링의 시간이 되었어요.
그리고 영어에서뿐만 아니라 공부법 방면으로도 선생님 말씀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다른 선생님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거나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말씀해 주시지만, 막상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선생님 수업 때 하신 말씀들, 애정이 담긴 편지들, 블로그 포스팅한 것들을 듣고 보고 스스로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올해는 그냥 수업 끝난 교과서와 학습지를 그냥 계속 읽었어요.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전에는 불안감 때문에 넘기지 못했는데 그냥 다음날도 계속 또 읽고 하니까 정말 신기하게 깨달음이 오고 뭔가 저절로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에는 벼락 치기를 하니까 정말 몸을 쓰면서 힘들게 공부했는데, 그냥 계속 읽으니까 그리고 하교할 때 머리에 한두 번 떠올려보니까 별 노력을 한 것 같지 않는데 벼락치기 때 용쓴 것이랑 별 차이 없이 머리에 들어와서 신기했어요. 그래서 뭔가 체력 소모도 덜하고 어려운 내용이어도 계속 반복해서 본다면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여유도 좀 생겼어요.
3학년 때 꼭 선생님 수업 듣고 싶어요. 제발...
나의 느낌 : 수업 시간과 공개된 내 블로그를 통해 모두에게 똑같이 전해지는 노하우지만 받아들이고 성과를 내는 것은 각자 선택과 실행의 몫이다. 결국 학생 자신들이 해낸 일이지만 이렇게 교사에게도 감사의 지분을 전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보상 이상의 감사다. (2021년도 추가 FYI : 이 제자는 1학년 때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었음에도 편지의 방법대로 꾸준히 노력하여 2학년 때부터 최상위권에 진입하더니 결국 고려대, 서울교대 등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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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제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주신 것,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지 말고, 스스로 정말 하고 싶고, 열정을 가질만한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 자신이 내린 선택에 뒤돌아보지 말고 책임지는 자세를 배울 것, 사랑할 것 등 매 순간 정말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항상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시는 것도, 영어공부에 정말 간절함을 가진 많은 학생들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준비하셨던 것도, 좋은 영어 노래를 들려주시면서 학생들에게 다가가려고 항상 노력하셨던 것도, 지난 1년 동안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모든 행동에 진심으로 감동했어요.
나의 느낌 :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고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늘 있다. 그들은 내 칭찬이 아니어도 끊임없이 성장하며 사랑스러워져 간다. 그들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교사들의 특권이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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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잘 따라가다 보니까 스스로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나의 느낌 : 이것도 그들 스스로 해낸 일이다. 난 그저 아이들의 옆에 있어 주기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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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길이 남을 선생님이세요. 진짜... 항상 학생들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느낌 : 교사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일에 감동하는 학생이 더 큰 감동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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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 수업방식이 정말 좋았고 또 즐겼던 학생이에요. 제가 원하던, 갈구하던 영어공부를 학교에서 이렇게 딱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게 왜 선생님 특보 수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망설이다가 결국 시기를 놓쳤더라구요.
나의 느낌 : 공교육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쓴다는 혼자만의 거창한 목표의 현실성을 확인하는 전율의 순간이다. 학생들의 말에서 가능성을 찾다 보면 교사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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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만큼 저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신 분은 없는 것 같아요. 1학년 때 선생님의 기타에 맞춰 노래 부르던 시간도 그립고, 수업 시간에도 그냥 입시에만 맞추어 나가지 않고, 단어 수업이나 회화 표현이 전부 선생님이 저희들을 위해 노력해 주신 건데 그 정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네요. 그리고 선생님의 잔소리를 비롯해 신문사설 댓글 달기활동까지 너무 그리워요. 그 소중한 잔소리를 그때 좀 더 새겨들을 걸 하는 후회가 생기네요.
선생님과 함께 한 많은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어특보에요. 정말 저희를 위해 아프신 몸도 희생하시면서 노력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진심을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어 너무 기뻐요. 꼭 건강하시고 선생님이 해주신 노력 그대로 저도 노력해서 선생님께 보답하겠습니다.
나의 느낌 : 지나고 나면 저절로 생길 수도 있는 것이 그리움과 그에 따른 아쉬움이다. 이 학생은 아쉬움을 별로 남기지 않은 착실한 학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학생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성장하고 있지만, 아쉬움의 이유조차 찾을 수 없는 학생들은 마치 성장을 두려워하는 자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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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해주셨던 말이 너무 감동이었기에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요. 제 마음속에 있던 압박감을 처음으로 드러냈던 순간이었거든요.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던 속 얘기를 하다 보니 많이 울었던 것 같네요. 지금까지 그때의 말들을 토대로 공부하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거예요.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의 느낌 : 그냥 함께 아파해주었다. 고집을 뚫고 학생들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학생은 두터운 문을 누군가 열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누군가 드러내어 치유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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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진짜 그립습니다. 선생님은 성격도 참 따스하시고, 아이들의 말도 존중해주시고 그냥 선생님만 생각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저 요새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다 선생님 덕입니다. 전에 저에게 해주신 저를 믿어주시는 그 말 때문에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도 안 합니다.
나의 느낌 : 교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되, 막연한 희망과 헛된 용기로 더 큰 상처를 주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난 학생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희망만 준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성장의 분량을 제시한다. 일반화되지 않는 개별적이면서 현실에 기대를 둔 작은 미션이나 격려가 학생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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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올라와서 선생님 수업 못 들어서 너무 슬퍼요. 3학년 땐 함께 해요. 방학 때 특보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1학년 때 선생님께 고민 상담도 해볼 걸 그랬나 봐요. 선생님의 조언은 정말 더 깊게 다가오거든요.
나의 느낌 : 더 늦기 전에 상담할 기회를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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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한 단어와 블리텐어법포인트로 자신감이 생겼고 친구들에게 도움까지 주고 있어요.
선생님의 쓴소리가 가장 좋았어요. 1학년이라고 정신을 놓고 있을 때면 귀에 꽂히는 선생님의 잔소리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어요.
선생님이 이때까지 지금도 많은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저는 많이 바뀌었고 항상 선생님 말씀을 떠올려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매일 열심히 할게요.
나의 느낌 : 3학년에 비해 희망의 크기보다 간절함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은 1학년들에게 간절함을 키우기 위한 잔소리 폭우를 퍼붓는다. 학생들은 일명 나의 잔소리를 좋아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한 애정과 진심이 담긴 러브레터처럼 이야기해서 그런가 착각하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아름다운 분석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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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자주 해주시던 얘기가 떠오릅니다. “끝까지 해보자. 찌질하게 할 수 있는 것부터 꾸준하게 하자.” 머리에 스칠 때마다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기 싫다고 혼자서 되뇝니다.
나의 느낌 : 1학년을 향한 나의 잔소리의 핵심 단어는 “찌질함”이다. 그 찌질함의 연속으로만 습관을 형성할 수 있고 그렇게 형성된 습관으로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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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때는 영어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지만 선생님의 열정과 수업하는 방식으로 인해 제가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어가 무섭고 그랬는데 선생님 멘토링 덕분에 영어가 제 친구 같은 느낌이 들고 좋은 습관도 형성된 것 같아요. 항상 수업 시간에 재미있는 예문과 적절한 비유로 설명해주셔서 이해하기도 쉽고, 전교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시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처럼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의 느낌 : 그가 삶으로 말하고 있던 것을 글로 확인했을 뿐이어서 그 진정성과 희망의 깊이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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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신 선생님 덕분에 얻어 갈 수 있던 것이 많았어요. 일주일에 5개의 사설을 읽으면서 배경지식을 넓힐 수 있었고, 읽는 속도도 빨라졌어요. 아침마다 하는 단어도 도움이 되었고 특보 시간에 가르쳐주신 것도 아주아주 도움이 되었어요. 선생님의 여러 조언도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었구요.
나의 느낌 : 교육의 효과는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고 멈추지 않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은 이렇게 지나고 나서야 그리움 가득한 감사를 받는 경우가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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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도 도움이 되었어요. 사회복지사 하고 싶다 했을 때 ‘너는 사람들을 재밌게 할 수 있어서 어울린다’라고 해주셨을 때 너무 감사했어요. 남들은 돈을 잘 못 버니, 굳이 왜 가냐면서 조금은 말리는 눈치였는데.
나의 느낌 : 실은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한 마디라도 진심을 담도록 하면 감동과 오랜 기억으로 이어지는 그 학생만의 명언이 된다. 그렇다고 어떻게 말을 멋있게 할까를 연구하지 않는다. 각 학생의 개별적인 특성과 평소의 행동을 더 관찰하고 애정을 가지고 더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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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듣기로 선생님이 맡은 반 아이들이 그 해가 지난 후에도 선생님을 그리워한다고 그러더라구요.
나의 느낌 : 교육의 효과가 더디 나타날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그리움은 대개는 내가 쏟아부은 사랑에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