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 골든아워를 읽고

by 청블리쌤

사명자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라는 책을 통해 깊이 생각해보며 내린 결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미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환자에 대한 기록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보다는 법적, 경제적 시스템의 한계로 인한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와 그 시스템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겪게 되는 외상외과 팀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언급이 많아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큰 희망을 읽어 내었습니다.


그중 교사의 입장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제 마음속에 남았던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병원에서 외상외과란 버려진 존재들이었다. 나는 그에게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런 나를 오히려 그가 달랬다.

- 교수님 저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많이 다친 환자를 살릴 수 있을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이런 분이 가진 직업은 천직 혹은 소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책에서 기독교인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저의 모습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라는 것 없이, 보수나 인정 없이도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기꺼이 하고 있는 것인지...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아직 의사로서 여물지 않은 시기부터 과도하게 외상외과에 집착하거나, 큰 기대를 가지고 이 일에 뛰어드는 외과 의사들 중에도 뜻밖의 중도 탈락자가 많았다. 이 분야는 오히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시작해야 지속할 수 있다. 한 번의 수술로 기적같이 환자를 살려내고 보호자들의 찬사를 받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존재한다. 실상은 답답하고 지루한 긴 호흡으로 환자를 살펴야 하고, 그런 중에 더없이 비루한 현실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이 외상외과의 일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듯 누구나 잘못에 대해서는 원인을 찾으려 하고, 자신보다 남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 불평을 합니다. 학교에서도 교사의 좋은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만 가지고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 있기도 하고, 민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소신껏 교육활동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처럼 인정을 받거나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좋은 일을 하고도 원망과 지탄의 대상이 될 각오를 하면서 사명자처럼 자리를 지키는 훌륭한 교사들도 적지 않아 아직은 교육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국내 최고의 간 수술 팀을 이끌다 아주대학교에 부임해 와서 내 스승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하면 1시간이면 끝낼 수술을, 조수 자리에 서서 나를 가르치고 잡아주며 찬찬히 이끌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가장 뛰어난 외과 의사였다. 특히 가르치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완벽한 의과 대학교수였다.


학생들을 믿어주면서 답답함을 표현하지 않으며 기다려주는 것, 그게 조급함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아끄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진정한 교육의 방향임을 알고도 실천이 어렵습니다.




소방관들 역시 가족의 병마와 자신의 부상이나 아픔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수개월씩 바다에 떠 있는 해군들도 자식의 출생을 보지 못하고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버티며 각자 자리를 지킨다. 그런 이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이름이 드러나며 인정받는 선두에 선 사람들보다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됩니다. 감사함을 품으며 살아가야할 이유입니다.




야 인마,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는 거야.


이국종 교수가 심경이 복잡할 때 동료에게 들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다 책임지려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 한계를 인정해야 오히려 더 오래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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