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만큼 아플 걸 알면서도

by 청블리쌤

(2019.7.3.)

기억 저편에 묻어 둔 것이었다. 감당할 수 없으니까, 꺼내어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잊은 척 살고 있었던 거다.

첫사랑이 끝난 후 난 현실 앞에 굴복할 수 없는 기억의 잔재들과 미련의 조각들을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혼재된 불안함으로 덮어 버렸지만, 한 번씩 주체할 수 없도록 솟아나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은 한 번씩 쏟아내는 눈물로 달래야 했다.


딸이 첫사랑과 헤어진 후 고3이라는 현실 속에 그저 괜찮은 척 지내왔지만, 한 번씩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요즈음 무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다. 소용돌이도 자신이 만든 것이고 거기서 나오는 것도 오롯이 자신의 몫인 것인 걸 아니까... 그저 조금만 덜 아프게 그 시기를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면 그 끝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게 그저 기억의 파편을 현실의 감정으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한 번 시작된 관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현실에서의 만남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리움에 겨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하는 것도 추억화의 과정 중에 반드시 거쳐야 할 아픔 중 하나이다.


그 기억과 아픔과 소중한 감정들 모두를 불러오는 주문 같은 것이 음악이다. 특히 감정이입했던 가사가 담긴 노래다.

문득 깊은 밤 학교에 남아서 한 번 듣기 시작한 노래에 기억에 꼬리를 물고 노래를 들으며 허우적거렸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낼 도리가 없다. 신기하게 현실에 충실할 기회가 생길수록 그 기억과 예전의 감정들은 마음속 서랍 어딘가에 다시 열릴 때를 기다리며 자리를 잡는다.


사실 우리는 이별을 감당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말이다. 각 노래에 각기 다른 이별의 모습이 새겨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RmFNiH4QU&t=4s

https://www.youtube.com/watch?v=pp-pJwikXwk

나의 젊은 시절 가슴을 움켜쥐며 들었던 노래들이다. 지금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복면가왕 패널로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한때는 지금 아이돌의 인기를 능가했던 감성의 아이콘 유영석이 이끈 푸른하늘이라는 그룹... 응팔 등에서도 소개가 되어 추억을 살려주었던 "겨울바다"나 "눈물나는 날에는" 등의 대표곡도 충분한 감성을 선사하지만, 덜 알려진 이 노래 두 곡이 난 더 사무친다.


특히 고등학교때 갑작스럽게 경기도에서 경상도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나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짊어져야했던 학교 친구들과의 처절한 이별(밤마다 눈물로 지새워도 다시 이어질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도 함께 떠오른다. 동생과 나는 떠난 지 몇개월 후 고3이 되어 휴일에 학교를 찾았고 그 짧은 만남을 뒤로 하는데 친구들이 교문옆 담장에 단체로 매달려 서서 동생을 향해 불러주던 신해철의 "우리앞의 생이 끝나갈 때" 노래를 떼창하던 가슴 아픈 감동의 순간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잊혀지는 것이 실제 이후의 만남 여부와 관계 없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는 메아리처럼 아직 잊지 않았음을 이별이 새겨진 노래를 들으며 끊임없이 홀로 외치고 있다. 그래도 그대들은 나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고.


큰딸이 처절한 이별하던 그때 나와 여동생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딸도 그때 우리들처럼 이별의 언저리에서 아파하고 있다. 그 아픔을 통해 감정이 자라고 또 다른 사랑에 진심을 다할 준비를 하는 성장의 기회가될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 아픔을 통해서만 감정이 자라는 걸 체험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난 또 교사됨을 생각한다.

오늘 만나는 학생들은 가까운 미래에 기억으로만 남게 될 거다. 그리고 그 기억들도 점점...

애써서 외웠던 전교생의 이름도 한 해가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머릿속에서 비워져 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먼 훗날 스치듯 만났을 때 그 학생의 이름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아예 외워지지 않는 자신의 이름보다 알게 되었다가 잊혀지는 이름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한 번씩 그런 순간에 마주하면 나의 미안함은 더 커진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이별의 아픔은 더 크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험하면서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을 늘 선택한다.

나의 사랑이 학생들의 삶의 긍정적이고 밝은 물줄기에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역할을 했다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보상이라도 좋다. 그게 그 사랑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교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는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를 자꾸 세어보게 된다. 이제까지 교사로서 지내온 날들보다 남아 있는 날이 적다는 사실도 힘겹게 받아들이면서도 그저 유한한 기회와 그 만남에 그저 진심을 다할 뿐이다.


학생들에 대한 나의 열심과 열정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뭘 그렇게까지.. 그러나 나의 사랑은 그렇게까지 하는 것으로도 아직 충분치 않다고 내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교직을 완전히 떠나게 될 때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 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더 커져버린 끊임없는 아쉬움과 아픔과 그리움만으로 허우적대겠지만 그게 지금 쏟는 나의 사랑이 치러야할 댓가라는 건 이미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아파할까봐 주저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까지... 그 소명과 사명이 다할 때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tQFbMlYoN2o


고등학교 시절 여동생의 애창곡으로 그 때 친구들이 떼창으로 불러줬던 무한궤도시절의 신해철 노래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난 이곡을 들으며 그를 추모했다. 제목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여서...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 그렇게 나도 야자하면서 이 노래를 가슴에 눌러 새겼다. 벅찬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그리고 난 그 때 그리던 그 벅찬 미래를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날 생이 끝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신해철이 노래로 물을 것 같다.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우리가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은 후회이고,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반드시 남겨야 할 것은 후회 없이 사랑하고 난 후 애절한 아픔으로 떠올리는 그리움 같은 감정이다.


노래를 듣고 있는데 아내가 행복한 현실로 날 깨운다.

"누구 생각하면서 노래 듣는거야?"

난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그저 그리움이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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