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모카신 신고 1마일 걷기

by 청블리쌤


제목에서도 충분히 암시가 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룬 책입니다.


제인 엘리엇이라는 미국 초등학교 교사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암살사건(1968년) 직후 인종주의와 차별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과 교육을 한 실제 내용이 그녀의 저서와 방송활동, 그리고 다양한 부류에서의 실험으로 이어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일련의 기록입니다.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자신의 학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푸른 눈과 갈색 눈으로 번갈아가며 우월 집단과 열등 집단을 체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학생들이 진지하게 몰입을 하게 되면서 열등 집단의 학생이 실수를 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 실수에 대해서 눈 색깔 때문에 원래 그렇다는 비판과 공격이 이어졌고, 우월 집단 역할을 하는 학생들은 자신감에 넘쳐 성취 수준도 높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편견이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편견을 만든다는 사실을 배웠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특성을 기준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골라서 그들에게 부정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부당하게 대하다가 그들이 그런 대접에 분노와 좌절로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행동을 질타하면서 그런 반응의 원인을 신체적 특성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런 반응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부당한 대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대우를 바로잡고자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징계하고, 그럼으로써 그런 반응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열등한 집단 구성원들이 따지기 좋아하고 비협조적이고 다루기 힘들고 좋은 일을 해줘도 좋은 줄 모르는 분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유대인 격언 중에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더 많을 것을 안다. 그런데 왜 행동은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나아지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차별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차별은 인종주의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성별, 나이, 지역, 계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단적인 과도한 일반화로 서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가진 것을 절대로 내어놓지 않으려 하면서 그 상태와 영향력이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계층 간에 불편한 갈등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그 실험을 통해 1960년대 여전히 인종차별이 가장 뜨거웠던 그 시절에 저자는 흑인들의 애인이라는 조롱을 당하며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렸고, 방송에 출연해서도 방청객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자녀들도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월 집단임을 당연시하던 백인들의 입장에서 저자의 흑인들을 옹호하는 듯한 움직임을 참을 수가 없어 견제하고 비판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저자는 계속 실험을 이어갔는데 실제로 아이들의 삶이 달라지면서 학부모들의 인식과 반응도 긍정적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인종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동생을 더 잘 대해주고 부모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등 삶에서 공감을 배워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예외 없이 열등 집단에 속하여 차별을 몸으로 체험하며 함께 아파했던 경험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아파하지 않으려 한다면 위의 유대인 격언처럼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의지가 없는 것이겠지요.


저자는 맡았던 반 중에 너무 열등하게 여겨지는 집단이어서 교장선생님조차도 읽기조차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던 학생들에게서 놀라운 학업성취를 이루었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일까? 그럴 리가! 그렇다면 내가 어떤 비법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첫 등교일은 학생들이 나에 대한 신뢰와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을 내가 가르칠 수 있다는 믿음을 쌓아가면서 교실을 흥미롭고 신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6개월간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차별에서 편견이 생긴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반대로 학생들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신뢰로 학생들의 성취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결론에도 다다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미 우리에게 피그말리온효과라는 용어로 익숙한 상황입니다.

아이들은 교사나 부모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은 극히 드물지요. 능력 밖의 것을 과잉 기대하여 학생들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의 처지와 상황에 관계없이 그들의 성장을 기대하고 응원하며 기다리는 것이 교육의 출발입니다.


저자가 수업 계획에 포함시켰던 아프리카 수(Sioux) 족의 기도문이 모든 것을 잘 설명해줍니다.



신이시여, 우리가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 이상 걸을 때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기도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실행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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