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의 재정의

by 청블리쌤

(2018.11.20.)

낭비는 부정적인 단어일 뿐 아니라 반드시 피하고 버려야 할 우리 삶의 오류값입니다. 저도 그런 줄로만 알고 치열하게 막 달려왔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현재의 낭비를 죄악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낭비라는 이름으로 불릴만한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guilty pleasure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을 저지르는 남모를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도 성격이 멀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도 즐겁지 않는 부담감뿐이었습니다.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화장실 갈 때도 단어를 외우고 그걸 자랑하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낭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그 낭비가 우리 삶의 여백이며, 쉬어가는 충전 지점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아갑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어디를 다닐 때도 최단 시간과 최단 거리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너무 들어 건강이 예전 같지 않고 몸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의도적인 낭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지하철을 탈 때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학교 출근길에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최단거리보다 둘러 가는 정겨운 시골길 느낌의 흙길을 선택하고, 화장실을 다닐 때도 쓸데없이 한 층을 올라가서 다녀오는 등의 사소한 낭비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뭐가 그렇게 급한 것인지, 빨리 도달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그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세월의 흔적이 슬프게도 뱃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옷을 새로 사야 할지, 예전 옷에 몸을 맞출지... 타협하며 흘러갈 것인지 거슬러 올라갈 것인지...
보기 좋은 옷매무새의 문제가 아닌 건강의 문제라는 걸 심각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강제로 새벽잠을 깨우며 집을 나서고 있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책도 보지 않고 그저 걷고 뛰기만 할 뿐인데 그게 하루의 활기를 찾아주고 건강한 삶의 희망이 되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그런 것들을 낭비라고 몸이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빨리 더 많이 일하고 교재연구하면서 달렸던 그 경제적이지 않은 교재연구 과잉에 따른 낭비가 실은 낭비가 아닌 가장 경제적인 업무 패턴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달렸던 모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진정 추구해야 할 낭비는 그 바쁜 가운데에서도 멍 때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그 낭비 같은 시간을 안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십계명에도 명시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그 율법은 종교적인 족쇄가 아니라 인간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배려였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낭비와 안식이 오히려 더 큰 업무능력과 능률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혹 그런 것들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결국 필요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출근길을 일부러 돌아갑니다. 밥을 먹고 나서는 일부러 학교 주변을 배회하며 가을의 끝자락을 멍하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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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올라 돌아가는 낭비의 출근길



학생들을 위한 거룩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등은 그대로 둔 채로,
삶의 안식, 진작 찾았어야 했지만 이제라도 찾으니 다행인 그 또 다른 낭비를 위해...
새벽잠을 깨우며 쓸데없는 걷기와 뛰기, 그리고 일상에서의 뜬금없는 비효율적인 선택을 매일 반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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