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9)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감독을 하였습니다. 고3 담임하면서 몇 번 빠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해왔으니 15년이 넘게 하고 있네요.
올해는 언론에서 수능 감독의 고충을 다루어 주어 수고에 대해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왜 수능 감독을 하는 것을 다들 꺼려 할까요?
수당이 적어서는 아닙니다. 모두가 돈 벌기 위해서 수능 감독을 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책임에서 피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인원에서 자신이 빠지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보통은 숙명처럼 받아들입니다.
저는 내년에 큰 딸이 수능을 응시하게 되어 감독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딸은 고생하는데 딸 덕분에 아빠는 수능 감독 한해 휴가입니다.
그렇다면 수능 감독을 왜 꺼릴까요?
일단 무한 책임 때문입니다. 감독 시 늘 듣는 말이 수능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입니다. 혹 의도하지 않아도 수험생에게 불편을 끼치면 법적 책임까지도 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같이 수능 감독했던 동료 교사가 수능 감독 마친 날 저녁때 남편에게 감독하다가 기침했는데, 변호사 살 돈 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웃어넘겼지만 모두 정말 그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시계를 가져오지 않는 수험생이(수험장에 시계를 걸어 놓지 않습니다. 혹 몇 초, 몇 분의 오차라도 있거나 하면 그로 인해 수험생이 영향을 받으면 민원과 심지어 소송까지도 감당해야 하니까 아예 없애는 것이지요. 초치기 등의 커닝 방지 때문이기도 하지만요)이 감독관에게 잔여 시간을 물었는데 감독 선생님의 시계에 오차가 있어서 소송을 당했다는 사례도 들었습니다.
감독은 과잉친절도 냉혹한 대처도 다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수능 감독을 많이 한 사람이나 처음 한 사람이나 그 책임의 무게로 인해 긴장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몸이 힘듭니다. 실제 시험시간에 미리 입실하고 시험 종료 후 문답지 수거 및 확인하는 등의 시간을 합치면 표면적 시험시간 이상을 감독을 하게 되어 길게는 한 교시당 2시간 정도를 잡아야 합니다. 4교시 탐구영역은 문제지가 많고 절차가 복잡하여 3명씩 감독을 하니 모든 교사들이 다 감독을 하고, 1-3교시 중에서 한 교시만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속해서 감독을 해야 할 때면 쉬는 시간 20분 중 답지, 시험지 수거해 오는 데 5분 소요, 시험장 입실시간 5분-10분 전 배부대에서 감독관 확인 및 전달사항을 듣기 때문에 실제 쉬는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고 화장실 겨우 다녀올 정도의 시간입니다. 점심시간도 서둘러서 점심 먹고 양치질하면 딱 맞는 시간입니다.
시험실 입실해서는 계속 서 있어야 합니다. 지루함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몸이 힘듭니다. 굳은 몸을 풀려고 마음대로 걸어 다니거나 스트레칭을 하여 수험생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거의 자세를 유지하고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합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는 건 흔한 증상입니다.
거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독만 해야 하기 때문에 지루함은 물론 때로는 잠과의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그래서 대개 수업 몇 시간 하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이 수능 감독에 긍지를 느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피할 수 있다면 수당 안 받고 안 하고 싶지만 말이지요.
그건 학생들 각자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에서 그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어떻게 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의도하지 않은 실패나 실수를 막아 줄 수는 있습니다.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사례 중 가장 많은 것은 4교시 탐구영역 응시할 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의 문제지만 올려놓고 있어야 하는데 그 외의 선택과목 문제지를 같이 올려놓고 있거나 순서를 인지 못하고 잘못 올려놓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감독 선생님이 주의사항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고 지도하면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휴대폰 같은 경우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벗어준 외투에 딸려 들어와서 울리는 바람에 부정행위가 되는 경우도 오래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1교시 감독 선생님이 학생들의 가방과 옷 등을 철저히 찾아보게 하여 제출하도록 안내하면 비의도적인 부정행위로 억울하게 쫓겨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부정행위는 반드시 적발해내야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감독관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최대한 보호받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응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제 딸이 내년에 수능을 응시하게 되니 그런 감독관 선생님들의 역할에 감사하는 마음을 미리 갖게 됩니다.
예전에 수정테이프를 사용할 수 없던 시절에는 한 문제만 마킹을 잘 못해도 답지를 바꿔야 하니 늘 1교시 후에 본부에 와서 몇 문제만 마저 마킹하게 해달라고, 인생이 달린 문제라면서 통곡을 하는 학생들이 몇 명씩 있어서 늘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금은 수정 테이트 사용이 허용되어 그런 일이 거의 없어져 다행입니다. 어쨌든 수험생 모두가 적어도 외적인 요인이나 실력발휘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수능 감독을 하는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입니다.
수능 감독은 잘 할 때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지 않고 잘못했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존재감 없이 사회를 지키고 공헌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그런 분들의 특징은 잘하고 있을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시는 그런 분들에 비하면 교사들이 수능 감독하는 것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은 아니니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늘 자신의 자리에서 존재감 없이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의 일상 중 하나가 수능 감독입니다. 수험생들에게는 일생을 건 특별한 이벤트지요.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일상이고자 합니다. 그게 힘들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