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채워가는 예술과 삶

by 청블리쌤


줄리아드 음악 학교에서는 연주곡의 악보를 더 주의 깊게 읽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 결과 ‘종이 위의 점’ 하나하나를 도대체 어떤 소리를 생각하며 찍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스타카토를 예로 들면, 작곡가가 어떻게 ‘짧게 끊어지는 소리’를 의도했는지 깊이 파고들며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악의 바탕에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성난 파도 소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아이들이 웃는 소리 등 우리가 평소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이 쓴 악보에는 이런 소리가 표현되지 않습니다. 한정된 기호로 어떻게든 의미를 전해야 하는 악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제 듣는 음악에는 악보에 표기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곧 악보에 숨어 있는 정보를 알아내 표현하는 일입니다. 이를 깨달은 뒤로는 악보에 숨어 있는 작곡가의 의도를 정성 들여 읽어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던 소리에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사운드 파워 - 미테일러 치호



악곡은 음표가 아니라 음표 사이의 공백으로 연주한다는 말을 듣고 전율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침묵이나 여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책을 쓸 때도 모든 이야기를 다 기록하지 않는다. 추론이 가능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여백을 두어야 읽는 사람이 지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추론력이 부족하거나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그 공백의 간격만큼 힘들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학교에서 난 독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외친다.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공부하는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여백을 추론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추론해가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이 심화되면 처음 보는 정보도 자신만의 지식체계로 조직하고 구성하는 시각도 생긴다.


작가는 그 여백 속에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을 채울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외국인 교수의 피아노 레슨을 통역한 적이 있었다. 그 레슨은 생각지도 않게 나 자신을 위한 레슨이기도 했다. 통역하기 전에는 레슨이 당연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테크닉에만 집중될 줄 알았는데 그 교수는 악곡의 느낌이나 감정을 구체화하여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갔다. 분명 악보에는 표현되지 않는 생생한 묘사였다. 물론 교수 자신의 주관일 수도 있겠지만 난 통역을 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고 생생한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는 음악에 매료되었다.


같은 악곡이라도 지휘자나 연주자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지는 건 악보에 담긴 원작자의 의도나 생략된 여백 속에서 찾아내는 자신만의 시각과 해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인용구에서 이런 대목에서 멈춰서 한참 생각에 잠겼다.

한정된 기호로 어떻게든 의미를 전해야 하는 악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그려낼 수가 있고, 오히려 더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악보뿐 아니라 글을 통해서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한계나 결핍이 오히려 더 큰 채워짐으로 이어지는 역설인 것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서 그 여백을 찾아내는 것이 공감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의 이야기를 대한다는 건 그 여백과 공백을 찾아내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갈등과 오해는 적절한 타이밍에 그 여백이 메워지며 해결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흔히 등장하는 “비밀”이라는 소재가 가져오는 긴장감이기도 하다.


우리가 책을 읽고 평생공부를 하는 이유도 상대방에게서 그 여백을 찾아내는 끝없는 여정일 것이다.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반 학생(중3)과 상담을 했다. 지금 당장은 웹툰에 집중하는 것보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어 담임선생님인 내게 의견을 묻고 있었다.

꼰대 같은 소리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웹툰을 잘 그리는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테크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고, 다양한 체험과 경험이다. 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과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 그리고 네가 독서나 다른 경험 등을 통해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이 너를 성장시키고 너의 시각을 넓혀준다. 당장 그 성장을 느끼지 못할 뿐...

작가들은 일부러라도 취재를 하기도 하는데,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너만의 경험과 다른 이들의 경험을 나누며 삶으로 취재를 해가는 게 필요하지 않겠니. 조급하게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그런 준비를 병행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구나.

네가 겪는 모든 일들이, 좋건 싫건 그 어떤 것도 시간 낭비는 아닐 거다.


여백을 통해 말하고, 여백을 채우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예술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백과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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