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내가 괜찮은 선생님일 수도 있다는 착각 속에 하루 종일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군중 속에서 아무도 시켜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누군가 이런 걸 학교로 보내왔다. 덕분에 내 생일이 강제로 커밍아웃되었다.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의 개별 포장 떡 위에 “Happy Birthday 청블리 제자가 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교직원 70명에 반 학생 30개 총 100개...
이런 스케일로 보낼 제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얼마 전 내게 생일의 뭔가를 예고했던 20년 전 제자였다.
매년 내게 생일 선물을 보냈었다. 20년 후에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 인연을 이어가면서 이렇게 실물로까지 표현하는 제자가 어디 또 있을까... 올해의 제자상, 이런 걸 수여해야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많이들 놀라셨지만, 내가 좋은 선생님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뭘 그렇게 애쓰고 노력한 게 아니라, 그저 운 좋게 좋은 제자를 만났던 것뿐이었다.
20년 전, 처음 여고에서 처음 고3을 하던 나는, 입시지도나 수업 면에서 아이들을 감동시킬 역량이 민망할 정도로 부족했다. 그저 젊은 나이로 아이들과 거리가 가까웠던 것과 진심을 다했던 열정뿐이었다. 게다가 큰 애가 갓난아기였던 때라서 평상시에는 거의 칼퇴를 했다. 아이들이 내게 칼퇴라는 별칭을 붙여줄 정도로...
그 제자는 전교 1등을 하였음에도 결국 의대를 진학하지 못했다.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왔지만 내가 전문가였다면 어딘가 의대를 진학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소에 동기유발을 더 시켜서 성적을 더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자에게 놀라움과 고마움의 메시지를 보내자...
이런 답변이 왔다. 그 제자는 지금 수학교사로 고3 담임을 오래 하고 있어 입시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되었다.
이 진학지도를 수의대나 뭐 어디 고신대 의대 가라 했음ㅋㅋ 커피차 3대 보내는 건데ㅋㅋㅋ
쌤이 사대 보내서 스케일 이 정도예요ㅋㅋㅋ
이런 상황에서도 늘 그랬듯이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며,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더해서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지내다가 퇴근하고 통화를 했다.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니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쌤 만나서 배운 거만으로 저는 영광입니다.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자 스승을 만났잖아요. 저도 괜찮은 어른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애들 마음만 살피지 마시고 선생님 찐행복도 누리고 사세요. 자랑하고 즐기세요ㅋㅋㅋㅋ
학교에 소문이 다 나서, 선생님들의 릴레이 축하를 받고, 오늘 중간고사 끝나고 종례하기 전 반 아이들이 칠판에 이렇게 케이크도 그려주며 축하를 해주었다.
내 생애 이런 생일 축하는 처음이었다.
교사로서 좌충우돌할 때 내 자문위원인 것처럼 쓴소리도, 현실적인 조언도 아까지 않았던 그 제자의 존재만으로도 내가 여고에서의 첫 문턱을 잘 넘어섰고,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졌던 인연으로 난 교사로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와 동기를 얻었는데...
제자는 선물을 통해서도 내게 통 큰 나눔의 의미까지 일깨워주고 있었다. 태블릿 pc와 생일떡 돌리는 것 중에 고민했었다는 제자의 이야기를 듣고 더 명확해졌다. 내가 혼자 실물로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모두에게 나누는 것이 얼마나 더 큰 행복이 될 수 있는지를...
나이가 들수록 소유하고 갖는 것에 대한 미련도 욕심도 조금씩 더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책으로 보며 지식처럼 갖고 있었는데 그저 삶의 모습으로 내게 직접 보여주는 것 같았다.
통화할 때 나의 행복을 위해 제자가 진 무게가 내게는 큰 부담이어서 말조차 하기가 어려워 주저주저하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제자는 어색하지 않게 혼자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는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받는 사람이 행복한 얼굴 상상하면서 즐거워하는 거라고, 이거 알아보면서 본인은 너무 신났다는 메시지를 어른처럼 내게 남겼다.
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운 좋은 행복한 교사다.
고맙다....
위의 글을 본 제자에게 온 추가 메시지
ㅠㅠ 쌤 글 보면서 첫 고삼때 첫째 갓난애기였다는 부분이 젤.... ㅠㅡㅠ 뭉클
쌤이 그때 칼퇴를 하셨던거였으면 다행이예요 정말 ㅠㅠㅠㅠㅠㅠ
애 엄마라 ㅋㅋ 그부분이 젤 다행스러운 맘이예요.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서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제가 교사되고 즐겁지 않았음 모르겠지만, 애들도 저한테 샘은 즐거워 보여요 이래요. ^^
이 일은 저의 소질과 성향과 성격에 정말 잘 맞아요.
감사합니다. 제 길을 찾아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