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포스터(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

by 청블리쌤

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면을 벗어도 완전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세요.”

《메타인지 학습법》 리사 손 교수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알려주는 좋은 생각의 길


* impostor(imposter)

- someone who pretends to be someone else in order to trick people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하는 사람




<생각의 길>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생각의 길’을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의 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가 계속 재촉하거나 막아서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가면을 쓰게 된다. ‘생각의 길’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결코 잘못이 아닌데도 그런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거나, ‘완벽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실패자’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생각의 길’을 마음껏 걸어가게 해주면 아이는 자기 생각을 신뢰하게 되고, ‘완벽해 보이는 가면’으로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 부모의 분주함이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의 길’을 막고 있다. 잠시 멈춤으로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멈춤과 기다림의 역설>

사람들은 신속한 학습을 더 좋은 학습이라고 여기지만, 메타인지 연구에서는 느리고 어렵고 실수가 수반되는 학습을 더 좋은 학습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이 학습과정을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빠른 학습에 대한 신화 때문이다. 공부를 잘 따라가는 아이 옆에서 성급한 어른이 “넌 너무 느려. 빨리 좀 고쳐”라며 다그칠 경우 아이는 자신이 뭔가 실수하고 있다고 느낀다. 학습과정에서 실수가 포기하라는 신호가 되면 아이는 과제를 접거나 실수를 숨기기 위해 잘하는 척 가면을 쓸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목표를 세우는 시점부터 자신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데 있다. 그래서 중도에 실패가 발생하면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금세 주저앉게 된다. 다이어트가 좋은 예다. 감량 목표를 세우고 며칠 동안은 계획대로 다이어트 식단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곧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고칼로리 음식에 손을 댄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버린 몸인데” 하면서 이성을 잃고 그동안 참아왔던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 각자의 출발점과 성장속도에 대한 존중이 행복교육의 시작점이다. 결론을 정해서 제시하면 아이들은 매 순간 좌절한다. 그래서 학원 다니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 아이들은 늘 좌절감과 불만족감에서 무뎌지는 법을 배우거나, 스트레스를 축적하거나 둘 중 하나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실패하는 연습>

이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그간의 절제 결심이 둑 터지듯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효과What-the-hell effect’라고 한다. 다이어트에 도전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한 번씩은 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할 때마다 목표를 포기해버린다면 다이어트는 평생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계획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다 포기해버렸던 다이어트 경험이 내게도 있다. 다이어트에 실패했다는 후회와 자학의 감정은 음식에 대한 더 큰 탐닉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런 실패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목표는 완벽할 수 있어도 목표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공으로 가는 여정에서 실수와 실패는 필연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실패를 넘어서는 연습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도중에 실수가 끼어들었을 때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실패는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먼 길을 갈 때 발에 흔하게 채이는 돌멩이 같은 것이다.


- 넘어져야 일어날 수 있고, 그러면서 혼자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의 넘어짐은 가슴 아픈 광경이지만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진리를 믿어야 할 때가 있다.



<감정을 감추는 가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와 마주하고 만날 수 있다. 짜증내는 것이 철없는 행동이라는 암시를 받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게 된다. 그저 시험을 한번 망쳤을 뿐인데 아이 스스로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좌절한다면 그건 더 위험한 상황이다. 선생님과 부모님, 친구들과 ‘이번 시험은 많이 어려웠어. 다음번엔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를 함께 궁리하려 하기보다 시험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전의 시행착오로부터 배우는 바가 없다면 다음 시험에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 부모가 제시하는 명확한 기준과 다그침은 대부분 옳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성장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가짐 자체는 배움의 즐거움과 직접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러나 가면을 쓴 아이들은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칭찬의 역설>

아이가 뭔가를 잘 배우고 익혔다면 “지금까지 참 잘 배웠구나. 앞으로는 어떤 부분을 더 배워보면 좋을까?”라고 격려하는 것이 좋다. 이제 더는 배울 게 없다는 식으로 아이를 칭찬하면, 아이는 앞으로는 노력 없이도 완벽해져야 한다고 여겨 더 불안해질 수 있다. 임포스터들 가운데는 의외로 실패보다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가수 아이유의 말을 들어보자. “일이 잘되니까 잘되는 대로 더 불안한 거예요. 계속 거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어느 순간 거품이 다 빠지고 그걸 밀도 있게 압축해서 보면 내가 요만큼 밖에 안 될까 봐 그게 무섭더라고요. 원래 저라는 사람에 비해 너무 좋게 포장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짓스러움 때문에 나중에 내가 얼마나 벌을 받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 마인드셋이라는 책을 모두가 읽어보면 좋겠다. 칭찬 중에 특히 성과나 결과에 대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어른들은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12585436.jpg?type=m3&amp;udate=20220209


<진정한 겸손에 대해서>

유교적 겸양과 겸손은 다르다. 자기비하적 겸손은 상다리 부러질 듯 차려 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라는 느낌인 것 같다. 이러한 겸손은 체면이 더 중시되는 솔직하지 않은 가면을 쓴 겸손일 수도 있다. 작가는 겸손은 오히려 솔직함이라고 한다. 이 책 전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짓의 가면을 쓰지 않는 작업... 진정한 성장과 진실된 인간관계의 출발이다.

작가의 생각에 굳이 나의 생각을 더하지 않고 몇 부분만 인용하려 한다.



2009년도에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그가 발표했던 소감문에는 두 가지 겸손이 잘 드러나 있다. “수상의 영예에 깊이 감사드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 상을 받아 들겠습니다(감사하는 겸손). 슈바이처, 킹, 마셜, 만델라 같은 전 수상자들에 비하면 제가 이룬 업적은 너무나 미미합니다(자기비하적 겸손).”감사하는 겸손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의 어떤 면을 칭찬했을 때 “고마워요”라고 답할 수 있으려면 남이 칭찬한 그 면을 자기 자신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겸손은 메타인지와도 연결된다. 메타인지도 나 자신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기비하적 겸손은 메타인지로부터 멀어지는 겸손이다. 자기비하적 겸손은 다른 사람들과 엇비슷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혹은 그들에게 순종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잘해왔던 것들을 무시하고 “나 사실 잘 못해”라는 대답으로 스스로를 낮춰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감사하는 겸손보다는 자기비하적 겸손을 진짜 겸손이라고 착각하는 데 있다.


메타인지는 내가 저지른 실수뿐만 아니라 내가 이룬 성공도 인정하는 능력이다. 겸손은 미덕임에 틀림없지만 자기비하를 겸손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진실로 겸손한 마음이란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다 판단할 수 있어야 컨트롤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임포스터처럼 “나는 못해.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로 자신은 잘 모르는 사람이 되고, 그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공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겸손해 보이기 위해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혹시라도 틀릴까 봐 자신의 메타인지 판단에 솔직해지지 못한다면,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는커녕 실수했던 사실만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겸손한 모습이 좋다는 착각은 이제 좀 버렸으면 좋겠다. 실수를 숨기려고만 하면 실수를 교정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행여 틀리더라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잠깐은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도, 이후에는 실수를 극복함으로써 더 성공적인 학습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 그리고 관심 있는 것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내 생각을 언제든 정정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겸손의 태도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보다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민폐를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솔직한 자신의 모습에 당당해지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는 틀에 자신을 가둘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


‘엄마 아빠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무조건 엄마 아빠 말을 따라야 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순종적이고 소심한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이건 팩트다”라는 말은 가능하면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한다. “넌 틀렸어” 같은 권위주의적인 어휘들 또한 아이의 사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장애물이 될 뿐이다. 메타인지는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성찰하게 하는 능력인데, 극단적 표현은 이러한 능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가급적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그건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또 다르게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신이 한 말을 되돌아보고 자기 생각도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어떤 주제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 주제에 대해 자기만의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르칠 자격이 있다. 가르치는 것이 곧 학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 역시 모르는 것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겸손한 태도이다.


어떤 마음이 진정한 겸손인지를 생각할 때마다 예전에 교회에서 들었던 목사님 말씀이 떠오른다. 목사님이 겸손을 주제로 설교를 하면서 작가 C. S. 루이스가 남긴 어록 가운데 한 구절을 언급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게 바로 메타인지 학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가 ‘잘났다, 못났다’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눈앞에 닥친 문제를 파악해 보고 그 순간의 내 문제해결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가면(수치심) 관련 포스팅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014705459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담) 영어공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