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책(룬샷)을 읽었는데 그곳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리더십이란 체스가 아닌 정원 가꾸기와 같다. 리더는 정원사처럼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나무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원사는 환경을 만들어줄 뿐 자라는 것은 나무 스스로다" 이 글을 읽자 '아하!'라는 탄성이 나왔다. 불행히도 장기나 체스의 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를 두는 사람, 체스를 두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리더가 리더십을 체스나 장기로 여긴다면 이는 리더 자신이 구성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하고 지시하겠다는 의미다. 구성원들은 리더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또한, 구성원들은 체스나 장기의 말처럼 필요가 없어지거나 상대에게 패배하면 언제든 퇴출당하게 된다.
교사도 리더다.
친절한 교사는 누가 봐도 좋은 리더다. 그러나 때로 불친절한 교사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더 좋은 성장과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삶에 너무 개입하게 되면 아이들 자신의 성장이 지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전 고3 담임을 할 때, 나는 친절한 교사였다. 심지어 옆 반 아이들까지도 내게 상담을 원하기도 했다. 담임선생님께서 큰 역할을 해주시지 않는다며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입시 결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불친절하면 어떻게든 아이들이 살 길을 찾으면서 주도성을 갖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바람직한 교육적 효과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거리 유지해달라고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최선을 다해 표현한다. 특히 교사의 자녀는 불행을 느낄 때가 많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어떤 상황에서건 주저함 없이 정답을 얘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미리 정답을 알려주어 낭비와 방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도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어른의 조언은 흥미진진한 인생의 여정과 특정한 상황에 스포를 하는 것처럼 느끼게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실패할 권리가 있고, 넘어져 봐야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넘어지지 않는 법도 터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기쁨을 온전히 지켜주어야 한다. 혹 어른이 기대했던 그 경로로 결국에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선택까지도 아픈 마음으로 존중해 주어야 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그게 더 행복한 길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리더는 자신이 모든 걸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신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성장을 가져오는 진정한 리더는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며 속도가 느려도 격려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뭘 해주려고 하면 “내가! 내가!”라고 외치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무 어설퍼서 내버려 두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라고 해서 끝까지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영영 새로운 뭔가를 배울 수도 없고, 결국에는 늘 자신의 안전지대에 머무는 수동적인 애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기다림과 인내가 숙명이다. 기다림의 답답함이 길어지고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 아이들은 궁극적으로 더 성장하고 자기주도적 역량을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