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믿음, 성장의 축복과 감사

by 청블리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 중 사랑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가지신 분이 계신다.

오래전 고3 담임을 하다가 1학년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지원할 때였다. 유행처럼 학생들이 단체로 보충을 째던 무정부 같은 상황에서 유독 어떤 반에서는 출석률이 높아 아이들에게 비결을 물었다. 아이들이 담임선생님 덕분(?)이라고 했다. 얼마나 무서워서 그러냐고 하니까 보통은 레이저 눈빛만으로 충분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말씀을 시작하시면 완벽한 논리로 반박할 수 없도록 교육하신다고 했다. 그게 그 선생님의 첫인상이었다. 처음엔 교사인 나도 함께 겁을 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게 사랑으로 하시는 일이었다. 아이들도 그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잔소리 없이도 미리 알아서 잘 움직였다.

난 그런 그 선배 선생님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많이 배웠다.

그러던 어느 해 내게 따님을 만나 영어공부 상담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존경하는 분의 요청이라서 난 진심을 다해 상담을 해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어멘토링도 참여시켰다. 그 따님은 탁월한 성적을 유지하며 의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촉망받는 의사가 되었다.

내가 해낸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것도 아닐 것인데, 선생님은 아직도 그때 영어공부 방향을 잘 잡아주었다고 여전히 고마워하신다.

교직 초기에 난 그저 반학생들과의 상담, 교과학생들과의 상담만이 전부인 줄 알았고, 컨설팅이나 학습법 상담이라는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았었는데 이후에 친구들의 자녀와 편하게 상담을 해주는 컨설팅 기회가 여러 번 있었던 걸 보면 그 따님과의 만남이 내 학습컨설팅의 시작이었다. 물론 보수를 받으며 과외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의 가벼운 상담이었기 때문에 교육재능기부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당시 선생님의 요청이 너무도 놀라운 거였다.

후광효과가 있으면 사람들은 의심 없는 선택을 한다. 공부방법의 효율성보다 누가 그 공부방법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작가는 늘 베스트셀러 작가에 머물고, 그 외의 작가들에게는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광효과 없을 때의 선택과 신뢰는 너무도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 난 경력도 많지 않고, 우수한 교사들이 초빙으로 운집해 있는 학교에서 존재감도 없던 교사였는데 자녀 상담을 시킬 정도로 날 신뢰하셨다는 의미였으니까.

여전히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나를 신뢰하고 교육적 활동에 잘 참여하고 있어 감사하지만,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학교 교사로서의 나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걸 생각하면 그 믿음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작년에 학생 한 명이 내 보충수업을 신청하려 하니까 어머니가 학원 다니는데 뭐 하러 학교 선생님 수업을 듣냐 말렸던 일이나, 보충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 선생님한테 영업당했냐고 따져 물었던 학생의 일로 상처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후로도 난 선생님의 초대로 학교의 공식적인 컨설팅에도 참여하고, 반 학생 영어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강력 추천으로 고등학교 영어학습법 컨설팅강연이나 영어몰입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늘 미안해하시면서 부탁을 하셨지만, 늘 중요한 자리에 초대해주시니 완전 인정받고 신뢰를 얻는 느낌이 들었다. 늘 잘 할 수 있을지만 좀 고민이 되었을 뿐, 어떤 경우에든 늘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왔다.

후배교사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늘 절대적 지지와 신뢰를 주시는 느낌에 난 여전히 힘을 얻고 성장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어제도 그 선생님의 초대로 선생님 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공식적인 영어자기주도학습 행사로 추진하셔서 토요일인데도 100명이 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선생님 학년부장인 학년의 125명 중 100여 명이 모였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귀찮아서라도 굳이 추진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고, 행여나 그렇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을 경우, 들어야 할 비난도 감수하셔야 할 일일 텐데,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얼마나 나를 신뢰하기에 이런 일이 성사될 수 있는 건지, 거기다 추진력과 학생들이 모이게 한 능력까지 생각하면 난 믿을 수 없는 기적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이었고,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고 강의 시간 내내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내가 원래 그런 자리에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자리에 걸맞는 노력과 열정을 다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의 믿음과 격려로 인해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교사였고, 선배 선생님이시지만, 내게는 그저 은사님 같은 느낌이다. 나의 교직경력은 그분의 존재 없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교육방식을 늘 배웠고, 추진력과 카리스마가 늘 부러우면서도 본받으려 애쓰게 되었지만, 요즘 부쩍 내가 선생님의 학생이 되어 교육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것만큼 현장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자리에 있어야 할 거라고 다짐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여전히 학교 학생들을 만날 수 있고, 다른 학생들도 만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다.

얼마 전 수석교사이신 영어과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수석교사를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순간에 후배를 생각하고 전화까지 해주신 마음이 감사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마음속으로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수석교사는 교사들의 수업장학을 돕는 일에 초점이 있어서, 수업 시수가 다른 교사의 절반 정도 되고 담임도 하지 않는다. 내가 선생님들께 공식적인 자리에서 영향력을 끼칠 리더십도 역량도 물론 부족하다는 건 제쳐두더라도, 그래서 난 수석교사를 시켜준다 해도 할 수가 없다. 난 평소 정규수업 외에도 학생들을 수업으로 더 만나려 애쓰고 있고, 담임이 아닌 교사는 상상해 본 적도 없어서다. (그래서 직전 학교에 업무부장을 시키시려는 교감선생님께 담임을 포기할 수 없다고 읍소하자, 날 담임도하면서 부장하라고 학년부장을 시키셨다.) 나이가 더 들면서 더 힘에 부치긴 하겠지만, 난 퇴직할 때까지 학생들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그런데도 한 번씩 교사 연수, 학부모 연수 등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감사하다. 학생들을 만나는 것에 전혀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고, 혹 나와의 만남을 통해 그분들이 만나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는데 미력이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기 때문이다.

난 어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의 인생의 경로에 스쳐 지나가듯이라도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축복이다. 내겐 확실한 축복이지만, 그들에게도 축복의 기회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만나는 학생들이나 이후에 주어질 만남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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