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의 명저 <12가지 인생의 법칙> 후속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삶에 도움이 되고 적용될 만한 12가지 법칙을 더 제시한다.
그 주옥같은 내용 중 특히 마음을 울린, 한 대목만 소개한다.
삶을 가장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의미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특별히 불운하지 않다면 사람은 자기가 성취한 것을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난 그 일을 해냈어, 정말 유익한 일이었지. 쉽진 않았지만 해낼 가치가 있었어," 일의 가치와 그 난이도에 상호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고 기이해 보인다면, 다음 대화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어려운 일을 원하나요?" "아니요, 쉬운 일을 원합니다." "당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쉬운 일을 하는 게 가치가 있을까요?" "글쎄요, 대개는 그렇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실제로 당신이 원하는 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나는 다음 문장에 존재의 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어렵다는 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제약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게임을 할 때마다 임의의 제약을 받아들여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제한하며, 그때 드러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것이 게임의 요지다. 그런 규칙이 없으면 게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체스를 둘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받아들인다. "이 나이트는 L자로만 움직일 수 있어. 터무니없긴 한데 정말 재미있군!" 체스의 말들이 아무 데로나 이동할 수 있다면 희한하게도 재미가 사라진다. 어디로나 이동할 수 있다면 그 체스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제약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게임이 시작된다. 제약을 존재의 필수 요소이자 인생에서 가치 있는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 제약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심리적인 중요성만 있는 게 아니며, 게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은 의미를 필요로 하지만, 문제는 해결을 필요로 한다. 중요한 것, 나를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 맞서고 떠맡을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유익하다. 하지만 인생의 고통과 악의는 현실이다. 그로 인한 끔찍한 결과도 현실이다. 문제들을 직시하고 떠맡아서 해결하는 일도 현실이다. 우리는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심리적으로는 의미 있는 길을 발견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동시에 참을 수없이 잘못된 현실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삶에 큰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다. 인생을 오래 살며 실패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수록 이 이야기가 더 실감 나지만 젊은 시절에 이러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깨닫는다면 그 가능성은 무한하게 더 커질 수 있다.
보통은 자신의 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과 제약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문을 외우며 통과해야 할 무의미한 지점으로 생각한다. 시스템이나 규칙 등은 자신의 역량을 함께 제한하며 창의력과 상상력까지 막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학교 현장에서 실패의 크기만큼 학생들은 더 많이, 더 깊이 성장할 기회를 얻는 것을 흔히 목격한다. 실패와 좌절의 징후 없이 자기 고집을 내려놓을 방법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은 분량만큼 더 크게 성장하고 채워질 기회를 얻는다.
학생들 중 누군가는 학교를 감옥으로 표현하며 빨리 학교를 졸업할 날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학교를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건 그들이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졸업 후 찾아오는 제자들은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학교 다닐 때 누렸던 것들 중 뭐든 당연한 것은 없었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재수를 하게 되면서 학원에서 고가의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거의 무상으로 해주었던 관심과 애정 등의 열정 페이와 학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방과후 나 특보 수업 수강료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학교 규칙과 여러 가지 제약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날개를 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날개가 완전히 돋아날 때까지 지켜주고 성장시키는 안식처 같은 성장의 무대였음도 느끼게 된다,
창의력도 상상력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과 본질을 배우고 깨우치고 나서 발휘가 되기 시작하는 것을 그 배움 중에 있는 학생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구속이 있어야 자유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자유가 주어졌을 때 누릴 수 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은 진정한 휴식이다.
학생들은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인생을 배운다. 배움은 늘 제약과 한계를 알려준다. 그래야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인식하며 넘어설 기회도 갖는 것이겠지만, 의식적인 제약으로 인해 스스로를 절제하고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 좌절을 이기는 법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학생들이 꿈꾸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어른들은 때로는 아이들의 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우지 않아야 아이가 더 강해지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하고,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보다 넘어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원한다고 해서 체스의 규칙을 무시하고 멋대로 움직이게 두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배우게 할 수도 성장하게 할 수도 성취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에 성장을 시작한다. 그 사랑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가슴 아픈 기다림도 그 사랑 안에 포함된다.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이 삶의 규칙과 제약을 마주해야 하며, 그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발걸음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