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깊은 사유를 통해 삶의 소중한 것들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작가입니다. 삶에서 음악과 책과 영화 등에서 치열하게 체험하며 삶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그 깊이로 인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아래 글은 단행본이 아니라 월간 잡지처럼 보다 자유롭게 에세이 형식으로 써 내려가도록 기획된 1월에 해당되는 책의 가장 인상적인 구절과 이어지는 제 느낌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접속어나 부사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러나’ 등의 접속어를 남발하면 독자에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 주고 사고의 자유로움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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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접속어는 ‘사유의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
사고를 제한하지 않고 무한히 확장하게 만드는 단어 중에 ‘어쩌면’이 있다.
‘어쩌면’은 온갖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모험에 몸을 던질 줄 하는 자의 부사다.
내 안에는 예컨대 이런 희망의 언어가 숨어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이 아픔을 이겨낼 힘이 있을지 몰라. 어쩌면 그리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어쩌면’의 사유는 ‘저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적과 아의 이분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나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만남에서조차 ‘어쩌면’을 대입해보았다. ‘어쩌면’을 집어넣어 보니,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마음이 누그러든다.
이렇게 ‘어쩌면’의 사유는 ‘역시나’의 사유와 정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역시나’는 언제든 실망할 준비, 기대를 좌절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부사다. ‘역시나’는 예외나 예측 불가능성을 싫어한다.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며, 그 언어를 통해 각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도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가치관은 평범한 일상보다 위기와 긴박감 속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위기의 순간이나 절망의 순간에 외치는 ‘역시나’와 ‘어쩌면’은 이후의 삶의 경로를 나타내는 이정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망 속에 주저앉을 것인가 여전히 희망을 품을 것인가.
‘어쩌면’은 희망을 품고는 있지만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경로에서도 그런 확실성은 보장받기 힘듭니다. 고3 학생들에게 “불안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증거다. 불안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미 이루었거나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니 때로는 절망 같은 어려움의 순간에 확신에 찬 몇 마디 말보다 ‘어쩌면’이라는 대놓고 드러나 보이지 않는 희망의 신호만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