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진 후의 성과(Feat. 그레이 아나토미)

by 청블리쌤


시즌 18의 7번째 에피소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메레디스는 훌륭한 의사다. 의술면에서도 환자를 대하는 진심면에서도...

그 일면을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대사에 꽂혔다.



I’m always personally invested. The second I walk in the room, I’m personally invested, whether I know them or not. And if I don’t know their story, I make one up. There is no such thing as just a body on a table for me. Ever. So you can give me the burden. I can hadle it.

난 언제나 사적으로 몰입해요.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환자를 알든 모르든 난 늘 감정이입하며 진심을 다한다구요. 그들의 사연을 모를 때면, 지어내기도 하죠. 내겐 수술실에 누워있는 몸뚱이 같은 건 없어요. 늘 그럴 거예요. 그러니 내게 부담(절친이니 꼭 살려줘야 한다는. 잘못되면 책임을 지우게 될 것 같다는)을 줘도 돼요. 감당할 수 있으니.



invest는 “투자하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투자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 혹은 일부를 바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전혀 동떨어진 의미는 아니긴 하지만, 여기서는 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사용된 be invested는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으로 아래의 의미를 가진다.

(출처 : Merriam Webster 사전)


Definition of “be deeply invested in”

: to have given a lot of time and effort to something and care about it very much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뭔가에 진심을 다하다

- She is deeply invested in this project and wants it to succeed.

-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진심을 다하며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메레디스는 환자를 그저 치료의 대상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사적인 친분이 있든 없든 사적인 감정이입에 따른 진심을 다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만 본다. 내가 과잉진료 당했던 병원 의사가 특히 그러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찍은 MRI로는 진단이 안 된다고 완전히 새로 찍을 것을 강요했고, 치료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고비용의 스테로이드 주사제까지 투입했다. 그는 치료 과정에서 내 상태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한참동안 나를 대기시켜 놓으면서 옆에 있는 동료에게 골프 치러 다니는 즐거움만 끊임없이 얘기했다. 물론 치료 이후 내 상태가 좋아지지도 않았고, 엄청난 진료비만 날렸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분한 느낌만 남았다.


어떤 의사들은 나의 치료 여부보다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궁금해했다. 실손보험이 있다고 하면 비싼 치료를 권했다.


이쯤에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계속 기억을 떠올리면 자꾸 할 말이 더 있을 것 같고, 그건 내 상처와 분노를 쓸데없이 소환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진심으로 환자를 걱정해 주고, 감정이입해 주는 의사가 있다면... 의술이 좀 부족해도 난 그저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난 바보같이 과잉진료를 많이 당했다.


어떤 책에서 이런 대목을 본 기억이 난다.

재활을 하고 아직 몸을 조심해야 하는데, 골프를 치러가도 되냐고 환자가 물어보니까 의사가 그렇게 하다가는 재발하게 될 거고 그러면 정말 슬프고 가슴 아플 것 같다고 대답한 대목...

어찌 보면 과몰입일 수도 있겠지만... 감동이었다.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와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게 편할 때가 많다. 병원에서 치료 한 번 받았다고 동네를 지날 때마다 반가운 척하기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선생님들도 학교가 가까운 건 좋지만 학생들을 마주치는 게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마트 등에서 마주치는 건 그러려니 하지만, 목욕탕에서 마주치는 난감하기 이를 때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과 공감이 치료와 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멘토링 학습코칭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반 학생들의 멘토링은 한계가 있었다. 난 교직 첫해와 군 휴직 전후의 애매한 기간 외에는 계속 담임을 해왔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담임교사와 비담임교사와의 친밀도가 다르다. 내가 담임을 고집하는 것은 반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른 반 학생들의 교과 지도에서도 친밀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해지면 교감과 공감을 이루게 되고, 감동이 있고, 변화가 있고, 성장이 있다.


2018년 12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을 읽고 정리했던 멘토 관련 글로 마무리하려 한다.




<멘토의 조건>

학교에서 영어교과 멘토링 학습코칭을 실시하며 스스로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하는 학생들, 간절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학교가 아니어도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 멘티들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놓이기 됩니다.


멘토라는 말의 출처는 <오디세이아>라고 합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출정길에 오를 때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의 장래를 그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에게 부탁하여 20년 만에 귀향했을 때 그 아들의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mentor는 아버지 같은 스승이라는 의미로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멘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멘토르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오디세우스를 찾는 모험길에 오르게 한 것은 실제 멘토르가 아니라 멘토르로 변장한 여신 아테네였다는 점에서 작가는 아래와 같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텔레마코스의 시선에서 보자면 아테나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었고 모험에 나설 수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멘토르'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혜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 나를 잘 아는, 내 편인 그런 사람만이 나를 진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멘토는 멘토의 성장에 있어 그 역할이나 존재감이 두드러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 경우도 처음에는 방향성을 강조하며 코칭을 하지만 결국 자기주도적인 학습 습관형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멘토링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렇게 말합니다.


“출발점(그러니까 현재의 점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끝까지 가려는 태도와 절실함만이 중요하고, 여러분들이 손을 먼저 놓지 않는 한 제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는 일을 없을 것이며, 결국에는 멘토인 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리고 멘토링 과정을 수업을 하지 않는 다른 학년에서 진행하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중단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멘토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멘토로서의 라포(rapport)에서 시작된 신뢰감이 없다면 절대 의도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이 훌륭한 책에서 발견하게 되어 무척 반갑고 힘이 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41031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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