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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교육은 마중물

by 청블리쌤

학생들의 열정을 만날 때면 이런 표현이 떠오른다.

Bring out the best in me

내 안에서 최고의 것을 끌어낸다는 의미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게 만들어.


As Good As It Gets(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헬렌 헌트에게 한 거의 사랑고백 같은 대사였다.

사랑은 자격을 갖추고 나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그 은혜의 감격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어 있다. 사랑은 자아를 깨고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학년 말에 내 수업평가를 받으면서 질문이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쓰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학생 한 명이 내게 하고 싶은 말에 위의 대사를 썼다.


위의 문장은 내 수업시간에 진행했던 백일문 구문독해 예문으로 포함해서 실제로 수업을 했던 문장이었다. 학생은 그 문장을 암기하고 있었고, 그 숨은 의미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나에게 그대로 돌려주듯 전해주었다. 감동이었다. 내 교육의 영향을 확인하는 증거가 되기도 했지만, 그 문장을 배웠다는 증거 이상으로 내 덕분에 더 노력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교사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헬렌 헌트의 대답도 나의 마음과 동일했다.



That’s maybe the best compliment of my life.

아마도 내 생에 최고의 칭찬이겠네요.



특히 나를 신뢰하고 기대는 학생이 있다면 나의 열정이 발휘되지만, 알고 보면 그건 나의 열정이 아니라 그 학생은 나를 통해 자신의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열정이 내게도 비춰지는 것일 뿐이다.


내 사소한 농담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고, 나의 모든 영역의 모든 교육활동에 존중과 감탄과 신뢰를 보내주며 수업에 몰입했던 학생을 만났을 때 난 지칠 줄 모르고 내 안의 모든 것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 경력이 쌓이니 이젠 그 모든 열정의 교육활동의 주인공이 교사인 내가 아님을 잘 알게 되었다.


인사규정상 23.6년의 고등학교 경력을 뒤로하고 중학교 갈 것이 확정적이었을 때... 난 은퇴무대를 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직전 고등학교 마지막 해 겨울방학 때 자기주도학습코칭을 50여 명의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다. 영어멘토링은 내 동영상콘텐츠를 활용하고 온라인 단어 시험을 각자 응시하면 되는 거여서 난 점검 위주로 학습코칭을 진행하다가 학생들에게 실시간 온라인 수업 신청을 받았다. 단 두 명만 신청했다. 화면으로 얼굴을 맞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듯.


겨울방학 마무리하는 시점에 수강료를 받지 않고 두 학생과 각기 몇 번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내게는 고등학교 교사 은퇴무대 같은 수업이었고, 그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한 제자와 아침 7시에 온라인수업을 시작했던 어느 날... 한참 수업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11시 1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4시간 10분 동안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 말 그대로 시간순삭의 느낌이었다.


그 학생은 평소 내 수업시간도 불꽃같이 시간이 흘러서 늘 아쉬움이 남았다는 소감을 전하곤 했다. 이동수업 후 교실문이 열리지 않아 수업이 지체될 것 같은 상황에 전속력으로 열쇠를 찾아 달려와서 교실문을 열며, 내 수업의 1분 1초의 시간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던 간절함도 보았었다.


신기하게 나도 그 학생도 지치지 않았다. 몰입하여 집중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난 거의 고등학교 은퇴수업이라는 그 무대에서 공연을 마치며 감격스러운 감동을 선물받은 것 같았다.


나의 열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늘 겪는 일이다. 의지도 없고 의욕도 없으며, 기본기가 너무 없어서 진도를 나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그 순간에는 5분이라는 시간도 너무 길었었는데...

학교에서 특보수업이나 희망하는 학생들과 2시간까지 몰입해서 진행한 적은 많았지만 4시간 넘도록 몰입해서 수업을 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상상한 적은 없었다.


난 그저 그 학생의 열심에 반응해 줄 뿐이었다.


난 열의 없고 의욕 없는 학생들을 당장 변화시킬 능력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내게 손을 내미는 학생들에게는 지상계을 넘어선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의 교육은 마중물과 같다. 결국 열심을 가지고 몰입하는 건 학생이어야 하지만, 마중물만큼 교사의 역할도 필요하다.


학교를 떠나서도 그 학생과 한 번씩 전화로 상담을 해준다. 최근에도 대학 수시원서와 학습방향에 대해서 상담을 했다. 그 학생에 내게 이랬다.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신 이후 선생님 수업 같은 감동, 설렘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랬다.

“너 스스로 이미 이뤄가고 있잖니. 처음 너에게 필요한 결정적인 역할만 내가 해 준 거고, 그 이후에는 너가 갖추게 된 능력으로, 너의 주도성을 가지고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행복할 만큼만”으로 급훈을 밀어붙이기 전에 급훈으로 밀었던 말이다.


고 신영복 교수님은 <처음처럼>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우는 소리를 내면 어미가 밖에서 껍질을 쪼아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든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줄과 탁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관련된 급훈도 떠올랐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어른의 조급함으로 먼저 서두르면 병아리가 아니라 후라이가 된다는 위험한 경고의 말이 유머러스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와 부모는 기다림의 숙명을 지닌 사람이다. 그 타이밍은 어른보다 아이가 정하는 경우가 많다. 어른의 열심만으로 역사를 이룰 수는 없다. 그러나 어른들은 늘 주의 깊게 타이밍을 살펴야 한다. 아이의 의욕과 열정에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평소에 갖춰두고... 그리고 그 때가 되었을 때 마중물이라는 역할에 만족할 수도 있어야 한다. 배움이 시작되는 것도, 배움을 이뤄가는 과정도, 그 성취도 모두 어른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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