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했던 <별게 다 영감>에 이어 이승희 마케터이자 작가의 좋은 책을 또 만났다.
작가는 평소에 영감에 대한 기록에 진심인 것 같다. 작가가 퍼올린 영감이 내게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중 몇 부분만 발췌하려 한다.
p.78 <자존감과 자괴감 사이>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입니다. 그런데 행복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 박웅현
소위 default 값이 무엇이냐에 대한 삶에 대한 관점이다. 행복을 기본값으로 두면 행복을 얻어도 당연한 것이 되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평이 터질 것이니 고통을 기본값으로 두어야 한다는 관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일을 할 때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정말 힘들다. 자기확신이 있을 때 자존감도 높고 일도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높아서 자괴감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나 자신을 믿는 만큼, 일이 안 되었을 땐 더 고통스럽고 일이 잘되었을 땐 성취감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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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자괴감, 자만심 모두 내 안에서 만드는 것이다.
실력 없이 겸손한 것도, 지나치게 자만하는 것도 지양하는 내가 되고 싶다.
자기확신에 따른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더 깊은 추락을 버텨야 한다. 자존감이 높다고 좌절이 모두 비껴가는 건 아닐 것이니까... 그럼에도 자기확신과 높은 자존감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존감은 한 번 얻어서 영구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라이센스 갱신하듯 연장해야 한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려는 불안함과 부정적인 자극에 맞서 싸우면서...
p. 84 <빈틈의 중력>
빈틈에는 중력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말 없는 자는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말을 많이 하면, 내 말이 끼어들 틈이 없죠. 상대가 과묵하면(하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신호를 주면 나도 모르게 그 틈을 메우려 들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콘텐츠는 수신자로 하여금 들어올 여지를 주면, 나도 모르게 개입하고 싶어지고, 일단 개입이 시작되면, 그것에 대한 관심도 달라집니다. 어떤 영화가, 노래가, 소설이, 저건 내 얘기가 되는 거죠.
- 유병욱, <생각의 기쁨>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 여운을 주는 '밀도 있는 글'을 좋아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강한 힘이 느껴지는 글. 그렇게 쓰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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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꽤나(?) 완벽함을 요구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굳이 빈틈을 메우려 애쓰지 않는다. 특히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는 공백을 두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빈틈이 어색했는데 요즘은 그 공백에서 상대방의 매력을 발견하곤 하니까. 그것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빈틈의 중력 아닐까.
‘빈틈의 중력’ 멋진 단어 선택이다. 난 빈틈을 평소에 여백이라고 많이 표현한다. 교사의 수업도 절제에 의한 여백이 있다면 학생들의 생각과 활동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을 것이다.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의 재미와 인기도 결국 빈틈의 중력에서 나온 것일 듯하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그런 매력을 발산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p. 113 <나이 드는 마케터>
아마존 회장 제프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떻게 변화할지 많은 이들이 묻는다. 구태의연한 질문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는 왜 묻지 않는가. 더 중요한 문제인데 말이다. 예측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전략을 세우는 게 훨씬 쉽다. 사람들은 싼 가격과 빠른 배송, 다양한 상품을 원한다. 10년이 지나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전제에 집중해야 헛고생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곳에 돈과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 않겠나."
해마다 새로운 세대는 나타날 것이다. 그때마다 호들갑 떨지 말자. 가난한 생각에 빠지지 말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변화에 둔감해지기 쉽다. 변화에 최선을 다해 적응하더라도,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와 적응의 속도에 뒤처지는 것에 대해 좌절하기보다, 연륜으로 발견하게 된 삶의 본질, 그것에 대한 영감과 지혜의 강점을 발휘하는데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p. 150 <책에서 만난 질문>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 패티 스미스, <몰입>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내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번역된다.
남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언어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가,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글을 쓰는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p. 152 <책에서 받은 위로>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 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그러나 찔린 만큼만 아파하기가 너무 어렵다.
p. 160 <강연에서 받은 영감>
"칭찬받지 못하는 삶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다른 사람의 칭찬에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를 만드는 과정에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제멋대로 살 수 있었어요. 칭찬을 한 번 받으면 자꾸 칭찬받기 위한 행동을 하게 돼요. 그러면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준으로 저를 만들게 돼요. 굉장히 허무하죠. 여러분 칭찬에 길들여지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세요. 여러분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세요. 그렇게 본인만의 생각으로 살아보세요. 그 '생각의 근육'은 책을 통해 기를 수 있습니다."
- 김봉진 대표, <책 잘 읽는 방법> 강연 중
칭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축복이 되었다는 아이러니...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설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다, 얼마나 칭찬과 인정에 길들여져서 그저 평균의 삶을 지향했는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