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즈온더블록 163회에서 경력 24년인 라디오 <싱글벙글쇼> 김신욱 방송작가 인터뷰를 보고 수업의 방향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방송작가는 글로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모아야 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인터뷰에서 글을 쓸 때 금기 사항 3가지를 소개한다.
쌀로 밥 짓는 이야기, 아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
너무 당연한 이야기도 재미없고,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는 관심이 없을 것이니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거라는 결론이었다.
스키마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선험 지식(스키마)이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는데(학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다.
배움은 빈 컵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본인의 선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맥락이 연결될 때 이해가 되고 그게 지식으로 체계화된다.
쌀로 밥 짓는 이야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는 선험적 지식을 넘어서지 않으므로 배움도 일어나지 않고 흥미도 유발되지 않는다.
흥미는 선험적 지식과 새로운 지식 사이의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갭에서 호기심이 일어날 때 생긴다. 드라마나 책을 볼 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야 시청자와 독자는 계속 보는 것을 선택한다. 너무 뻔한 스토리와 당연하고 식상한 이야기는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없다. 그렇다고 논리적 비약이 있거나 개연성이 부족해도 역시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 이야기에 대한 선험지식이 없다면 당연히 이야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니 이해도 흥미도 가질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는 선험적 지식의 부재로 인한 맥락 연결의 불필요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흥미를 가질 수도 없다.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정도는 그 사람에 대한 호감과 친밀도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면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 이상의 교과지식은 다 갖추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많이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한다는 함의가 분명하지만, 그게 가르침의 전부는 아니다.
또 가르친다는 것과 학생들에게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도 별개일 수 있다.
학생들은 흥미를 가져야 공부를 지속한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내신성적으로 학업능력을 평가하는 것 외에도 학업태도, 탐구력 등의 학업역량과 진로역량(전공적합성)을 보는 것은, 배움은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식의 맥락을 연결하여 체계화시키는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를 가지려면 빈 컵이면 안 되기 때문에 가르치는 이들은 한 번에 컵을 채우려는 욕심보다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과 준비도에 맞게 사소한 기본지식이라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처음 단계에서는 무작정 암기는 불가피하다. 다행히 저학년일수록 맥락 없는 암기에 뛰어나다. 구구단을 무작정 암기해야 이후 복잡한 곱셈식을 감당할 수 있다. 구구단의 원리를 안다는 것만으로 빠른 계산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냥 암기하고 나면 이해가 시작되고 맥락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각자의 발달단계나 준비도에 따라, 똑같은 내용을 학교에서 배우는데도 각자의 실력과 성적이 차이가 나는 것은 이 지점이다.
혹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면, 막연한 의지와 정신력만으로는 극복이 안 된다. 빨리 기본기를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이 지점에서 개별학습코칭도 필요하다. 학교 성적이 안 좋다고 무조건 좋은 학원에 보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좋은 학원은 어렵고 심화된 내용을 잘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아이의 수준에 맞는 학원이어야 하는데 소위 교육특구일수록 그런 학원을 찾기가 어렵다. 그저 현행이나 선행을 반복하면 배움이 일어날 거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아이들은 더 고통스러워할 수 있고 나중에는 그저 포기하면서 무력해질 수도 있다.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재미있게 만들고 그래서 그다음이 궁금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아이들 드라마 12회를 볼 때 같이 보려 애쓰는 것보다 1회부터 정주행을 하면 된다. 당장은 남들보다 뒤처지겠지만, 그게 재미와 이해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수준과 흥미도가 다른 다수의 학생들이 동시간, 동시 공간에 있는 수업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사항을 준비한다. 상위권학생들도 안다고 착각했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 기본기 요소들을 도입하면 처음 배우는 중하위권 학생이나 상위권학생 모두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할 수업구성이 필요하다. 교과서를 읽어주는 듯한 상황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수업내용 수준에 관계없이 뻔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난 수업은 물론 강연을 할 때도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을 먼저 고민한다. 큰 딸의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그 스토리 자체가 남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흐름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교육없이 행복하게 대학간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분야지만 뻔하지 않은 것이어서 관심과 흥미를 많이 가지는 분들이 많았고, 호응도 좋았다.
의외의 전개나 반전이 흥미의 필수요소다. 익숙한 거라도 낯설게 하기 위한 컨텐츠를 찾는 것이 교사의 교재연구에 포함되어야 한다.
영어의 경우 단어의 뜻을 안다고 모든 문장과 문맥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단어의 본질적인 그림을 그려주고, 실생활에 사용되는 재미있거나 감동 있는 예문을 찾아 적용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거기다 교사의 직간접 체험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더해주면 아이들이 흥미와 재미까지 얻게 된다. 교사의 이야기는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무조건 관심을 갖는 형태이기도 하다.
영어발음 수업을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도 진행했었는데 학생들이 이런 건 배운 적이 없다며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영어단어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처음으로 터득해서 배우게 되었고, 상위권학생들은 영어단어를 읽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의 공부량과 암기의 힘으로 때로는 발음을 패턴 없이 그냥 암기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후 더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하게 됨에 감사해하기도 했다.
교사는 아이들의 관심사와 개별적인 수준에도 민감해져야 하고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수용어를 다듬고 설명을 잘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도저히 수업시간 내에 이해를 통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은 학생들에게 교실밖 학습코칭 등의 방법으로 드라마 정주행을 1회부터 시작하는 듯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 명씩 대면하는 게 가장 좋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한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온라인 컨텐츠를 생성하여 각자 학습하도록 유도하고,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할 리가 없으니 “유쾌한 강제성”을 지닌 지속적 점검을 연구하여 적용하도록 한다.
영어의 경우 쉬운 단어부터 암기하기 시작하면 문법이든 해석이든 독해든 자연스럽게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이때 학생들 스키마에 맞는 출발점 진단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영어단어의 발음을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읽을 수 있도록 영어발음과 파닉스부터 시작하도록 도와야 한다
자신만의 컨텐츠를 구성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것은 퍼스널 브랜딩이다.
그러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마케팅이다. 올바른 학습방향과 학습내용을 알려주는 일이다. 때로는 이 컨텐츠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무력한 아이들의 멘탈관리를 하고, 확신을 주면서 약간의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시작하도록 격려하고, 결국에는 학습에서의 자립을 돕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교사의 목표는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해서 학생들이 결국에는 교사의 도움 없이도 학습의 자립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방송작가의 인터뷰에서 받은 영감을 간단하게 정리하려 시작한 글이 이렇게 장황하게 길어질 줄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의 포스팅과 특별히 다른 이야기도 아니라서 혹 그 포스팅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쌀로 밥 짓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난 자꾸 외칠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학부모님들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자기 고집대로 해보고 실패를 한 후에야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모두가 자기주도학습을 완성해가며, 배움의 즐거움을 행복으로 구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