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10대의 뇌>을 읽고

by 청블리쌤

질풍노도의 시기인 10대의 행동과 정서에 대한 보편적인 현상은 우리 눈으로도 직접 보고 있고, 매체나 책을 통해서도 늘 접한다. 남의 이야기일 때는 이해심도 커지고 공감하려는 노력도 기꺼이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객관화 자체가 어렵다.


직장인 학교에서 늘 10대들을 마주하는 교사들은 10대 학생 전문가지만, 정작 자녀 앞에서는 경험된 축적치가 별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오히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걱정과 조급함으로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며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교사 자녀인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큰 딸도 아버지가 교사라고 하니 친구들이 많이 힘들겠다며 위로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 딸의 반응은 감사하게도 뭐가 힘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오늘 둘째 딸에게 아빠가 교사라서 부담되고 힘든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딸은 그랬더라도 지금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하면서, 아빠 덕분에 고3 과정을 잘 지내온 것 같다는 마음을 전해 참 감사했다.

물론 딸들과 갈등이나 깊은 감정의 골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나도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 딸들의 실수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고 감정을 얹어서 꾸중하기도 했던 후회스러운 가슴 아픈 기억들이 많다.

심지어 아빠가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책임자이므로 너희들 원하는 대로 하고 살려면,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질 때가 되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독립해서 그렇게 하라고,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심각하게 경고한 적도 있다.


그 말이 큰딸아이 가슴에 새겨진 것인지, 대학 가서 등록금 외에는 생활비를 알바로 충당하면서, 생활비로 쓰라고 준 체크카드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흐뭇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딸들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되고, 괴롭고 힘든 시기에 난 부모로서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도 나처럼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과도하게 훈육했던 기억과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고 더 놀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가슴 사무치게 아쉬워하고 후회한다.

최선과 진심을 다해도 그런 후회와 아쉬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가 과거의 매몰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녀들을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을 또 다른 후회의 기억으로 남겨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무력감은 지금의 자녀는 그때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10대의 사춘기 아이들은 뭐든 해주는 대로 받으며 사소한 것이라도 기뻐했던, 그리고 부모가 그들 세계의 전부였던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래서 혹 못다 한 아쉬움을 다하려는 노력으로 후회를 보상받으려 하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게 문제다. 주도성을 키워가고 물리적 독립에 앞서 심리적인 독립을 이뤄가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부모의 역할이 방해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가 제시하는 지침이 아이들이 헤매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편안하게 가는 옳은 길임에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교사인 부모는 아이들 행동의 결과가 어떤지를 늘 학교에서 목격하며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실패나 넘어짐을 차마 볼 수 없어 조급해지기 쉽다.


부모는 이렇게 과거의 후회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지금 이 순간 역할에도 충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힘들다. 좋은 의도와 노력이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친구 선생님 한 분이 농담처럼 내게 원고료 없는 원고 청탁을 해왔다. 자녀를 보며 답답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드는 학부모를 위한 글 한 편 써달라고...

그런 분야라면 얼마든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답답함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으니...


3년 전 큰 딸에 이어 둘째 딸도 고3 과정을 겪고 있다. 고3 학부모라는 프레임은 학부모의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역할을 전제로 부담을 주는 말이다. 고3이 되어서 공부 안 하고 맨날 놀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은 고3 부모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라서 고3 학부모가 편하다는 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의 표현일 수 있다.


난 그 죄책감에서 자유롭기로 선언했다. 공부도 본인이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도 본인의 몫이고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의 몫인 것이니까.


학교에서나 집에서 그저 각자의 역량껏 각자의 속도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늘 전한다. 어제 수능이 2주 정도 남았을 때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던 것 같다.



예전의 아쉬움으로 벌받듯이 공부 시간을 억지로 채우려 애쓸 필요는 없다. 고3이라는 프레임과 시스템에 맞춰 판단하면, 노력과 열정의 분량만으로는 너가 최상위권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모습으로 너만의 최선을 다해왔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결과를 떠나서 정말 잘 해온 거다. 혹 수능 성적이 너의 모든 노력을 부정하더라도 너의 노력은 의미 없던 것이 아닐 거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수능은 이제껏 노력을 보상받고 꿈을 이루는 첫 걸음으로서는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유일한 기회는 아닐 것이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속도가 다르더라도 뭔가 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다면 남들이 실패와 좌절이라고 규정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빠는 변함없이 널 지지하고 응원할 거다. 수능시험은 너뿐 아니라 너 친구들이 스스로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부담이긴 하지만, 수능을 겪어 낼 넌, 이미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달라져 있을 거니 그저 당당하게 마주하렴.

수능이 다가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한계를 받아들이며 겸허해지는 과정이란다. 당장 내일 수능을 쳐도 될 정도로 넌 충분히 준비했으니 그래도 아직 남은 기회에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서 편안하게 해보렴. 너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나 그 이후의 일들은 지금 너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거다.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이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후회나 책망을 담지 않으려 애썼다. 오히려 본인이 충분히 그런 느낌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니, 나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괜찮다고 해주면서도 다그치지 않으며 스스로 힘을 내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여전히 내 기준에는 딸에게 좀 더 개선할 여지들이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 늘 학생을 대하면서 생긴 혜안(?)이다. 지금 이 순간 약간의 의지와 결심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사소한 변화와 개선의 여지도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러나 난 늘 눈치를 본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나의 잔소리는 허공에 머물 뿐 아니라 아이의 상처로 기록될 것이니... 아이가 필요한 지점에 적절한 말이 전달되기를 기다린다.


큰 아이를 겪고, 둘째도 고3 막바지임에도 난 여전히 실언을 하고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많은 이들이 내가 아이들 학원도 안 보내면서도 아빠 코칭으로 완벽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을 거라고 오해한다.

중요한 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면서 매 순간 더 고민하고 애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씀과 노력은 준비한 말을 하지 않고 참으며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움에서 더 큰 보상을 받는다.


학생들도 고3 때만 힘겨운 건 아닌 것처럼 고3 학부모만 그런 부담을 지는 건 아니다. 모든 부모는, 특히 아이를 많이 사랑하는 부모는 어떤 시기에서도 부모됨이라는 막중한 부담을 지고 산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은 성인이 아닌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위로는 아니다. 어른에게도 동일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오히려 어른으로서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위로가 될 수 있고, 교감의 통로가 될 수도 있으며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동지애 같은 느낌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부모로서 힘겨워하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이런 메시지를 자주 전한다.


부모가 보이는 불완전한 모습, 잦은 실수, 아이들에게 준 상처를 주는 언행과 기질,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도 아이들은 성장한다고... 오히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모의 부족함이 아이들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고...

표준화된 부모 매뉴얼이 있다고 상상하며 그걸 100점을 맞아야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교육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실수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더라도, 그게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해치려는 의도만 아니라면, 아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더 단련되기도 하고, 더 성장하기도 한다고.


우리가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부모를 있는 모습 그대로, 연약한 모습까지 포함해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거라고.

필요를 채워주는 계산적 관계가 아니라, 그래서 늘 좋은 것만 채워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불완전한 서로가 서로의 불완전한 모습에 솔직하면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관계가 완성되는 거라고. 그 완성된 관계에서 상처나, 답답함이나, 죄책감도 다 치유되며 안정감 속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라고...


답답함이 있다는 것은 아이를 응원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고, 죄책감이 있다면 지금 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이를 대할 준비를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는 뜻이니... 오히려 더 건강한 관계의 모습일 수 있을 거라고...


그 모든 과정에서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키워드는 “기다림”이라고...

사람마다 기다림의 간절함이나, 기간은 다 다르지만, 그 기다림에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 물론 안타까움과 아픔이 기다림에 동반되는 치러야 할 대가이지만... 기다림을 포기한다면 그 안타까움과 아픔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니 어른들이 져야 할 몫이라고...



최근에 그 기다림을 정당화하며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났다. 그저 마음의 결심을 요구하는 현상적, 심리학적 접근이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이라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10대로 인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몇 구절만 발췌해서 소개한다.




10대의 뇌저자프랜시스 젠슨,에이미 엘리스 넛출판웅진지식하우스발매2019.01.03.




<뇌가 아직 성장 중이라는 것은>

뇌는 인체의 모든 기관 중에서 태어날 때 완성이 가장 덜 된 구조물이다. 크기도 성인의 40%에 불과하다. 하지만 크기만 변하는 것은 아니다. 발달 과정에서 뇌 내부의 배선이 모두 바뀐다. 뇌의 성장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뇌는 역설 그 자체나 다름없다. 이 뇌는 회백질gray matter(뇌의 기본 구성 요소에 해당하는 신경세포)은 흘러넘치지만, 백질white matter(정보가 뇌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효율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돕는 배선)은 부족하다. 10대의 뇌가 금방 출고된 페라리 자동차와 비슷한 이유도 이것이다. 당장 어디라도 달려갈 듯하지만 주행 검사를 아직 거치지 않은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붕붕 굉음 소리를 울리며 공회전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 역설은 결국 혼란스러운 문화적 메시지로 이어진다. 우리는 누군가가 겉모습이 성인 같으면 정신적으로도 성인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은 면도를 하고, 10대 여자아이들은 임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경학적으로 보면 양쪽의 뇌 모두 전성기, 즉 성인의 세계를 접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0대 뇌성장의 한계점과 부모의 역할>

10대들의 뇌는 학습 효율이 정점을 달리고 있지만 주의력, 자제력, 과제 완수, 감정 등을 비롯한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한 번에 하나씩’이라는 주문을 속으로 여러 번 외워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잔소리는 금물이다. 10대들은 다중과제에 능숙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냥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격려해 주어도 다중과제에 관여하는 뇌 영역으로 혈류를 증가시키고, 그 영역을 서서히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점은 자녀를 지도하고 감독하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도를 말로만 끝내지 말고 글로도 적어주자. 그리고 한 번에 4~5개씩 지도하려 하지 말고, 한 번에 1~2개 정도만 지도하자. 아이들에게 일정표를 마련해 주어 일정을 직접 적어보라고 하는 것도 시간을 관리하고 과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이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면 자녀들이 스스로의 뇌를 훈련시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 한계를 정하는 일이다. 10대의 뇌는 활기가 지나쳐서 이런 부분을 스스로 조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10대 자녀가 인터넷이나 문자메시지 등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얼마나 허락해 줄지 명확하게 정해주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다. 만약 10대 자녀가 이런 부분을 잘 지키지 못하면 스마트폰 등을 못 쓰게 하고, 컴퓨터도 숙제를 할 때만 쓸 수 있게 제한하자. 그리고 자녀가 사용하는 온라인 계정의 사용자명과 암호를 모두 알려달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녀가 당장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가끔씩은 실수할 것이 분명하고, 꽤 많은 실수를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10대 자녀가 숙제를 하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켜보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으면 그만큼 유혹에 빠져드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유혹이 줄어들면 아이들의 뇌는 계속적으로 산만해지지 않고 과제에 집중하는 법을 더 잘 배우게 될 것이다.


10대 자녀가 갑자기 감정적으로 폭발했을 때 이에 대응하기 전에 열까지 세는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화를 내거나 자녀의 감정 폭발을 변덕스러운 짜증 정도로 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청소년은 자신이 성인이라고 믿고 있으며, 성인으로 대해주면 성인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할 가능성 역시 더 커진다. 나는 의사이자 과학자이기 때문에 내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희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고,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말해도 너희는 믿지 않지만, 그것이 왜 너희의 뇌가 저지르는 잘못인지 내가 보여줄 수 있어.’




<왜 아침에 깨우기가 어려운가>

대략 만 10~12세부터는 생물학적 시계가 늦춰지면서 저녁 7시나 8시 무렵에 활기가 돈다. 그래서 밤 9~10시 정도에는 ‘잠이 없는’ 시간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때가 바로 부모들이 살짝 졸리기 시작할 때다. 잠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melatonin이 청소년의 뇌에서는 성인의 경우보다 밤에 2시간 정도 늦게 분비되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청소년은 이 호르몬이 머무는 시간도 더 길다. 아침에 10대 자녀를 깨우기가 그리 힘든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반면 어른들은 깨어날 때 몸 안에 멜라토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처럼 졸리지 않다. 아이들을 일찍 깨워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은 아이들의 수면 시간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잠은 열심히 공부하거나 놀면서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몸이 긴장을 풀고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만은 아니다. 잠은 우리의 경험을 회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날 배웠던 것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잠은 사치가 아니다. 기억과 학습 내용은 잠을 자는 동안에 응고화consolidation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잠은 공기나 음식처럼 건강에 필수적인 것이다. 잠은 10대들이 더 잘 먹는 데도 도움이 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뇌과학으로 본 10대 시기의 위험요소>

연구들에 따르면 청소년 행동을 예측하는 데서 중요한 변수는 행동에 뒤따르는 위험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을 했을 때 뒤따를 보상에 대한 기대감임이 밝혀졌다. 바꿔 말하면 청소년이 보이는 충동성의 중심에는 만족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은 더욱 큰 만족을 위해 무모한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청소년은 도파민에 대단히 예민하기 때문에 보상은 적지만 즉각적일 때가 보상은 크지만 지연될 때보다 중격의지핵 활성이 더 크게 촉발된다. 10대의 뇌가 위험 감수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즉각성과 감정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다.

청소년들이 즉각성과 보상의 감정에 굴복하지 않게 돕고 싶다면 다른 종류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우리는 10대들이 위협이나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해마와 오른쪽 편도체를 끌어들인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들이 감정적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성인은 앞이마겉질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성인은 위협을 더욱 이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 또래가 있는 상황,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이는 상황, 낯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득을 얻기 위해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클 때, 그리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행동을 억제해야 하는 경우에 청소년들은 성인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0대 뇌가소성의 양면>

청소년기는 아동기의 뛰어난 시냅스 가소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높은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고, 학습과 기억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발달 단계다. 이런 능력은 성인은 갖지 못한 장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학습 준비가 너무나 잘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학습할 위험에도 대단히 취약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것은 뇌는 보상을 갈망한다는 사실, 그리고 뇌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도파민의 생산을 자극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보상으로 해석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곧 시냅스가 여기저기서 흥분하고 있는 10대의 뇌에 약간의 자극만 주면 이것이 좀 더 많은 자극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일종의 과도한 학습을 낳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과도한 학습을 흔히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청소년기의 뇌 가소성 때문에 청소년들의 흡연과 중독 상황을 더 심각하게 여긴다.




<청소년기 이후에도 멈추지 않은 배움을 위한 뇌 가소성>

뇌 가소성에 대해 반가운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그것이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정점을 찍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가 멈추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많이 배울수록 그다음 것을 배우기는 그만큼 더 쉬워진다.




<잔소리도 필요하다?>

10대는 아직 먼 미래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한다. 먼 훗날에 일어날 결과를 고려할 만큼 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에서 그런 주제를 꺼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내용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고, 또 해야 한다. 자녀들이 당신의 말을 무시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결국 그 내용은 자녀들의 머릿속에 새겨질 것이다. 청소년들은 귀로 듣는 것을 어느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잔소리도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잔소리의 효과를 가시적으로 기대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과 당장 발끈하는 적대적 반응을 마주해야하지만...

나도 잔소리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덜 하려고 애쓴다. 개입의 빈도를 줄이고 일단 기다리면서 지켜본 후 타이밍을 볼 뿐이다.

잔소리를 덜 하면 그 빈 여백과 멈춤의 순간에 아이들의 자발적인 성찰과 성장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있으니, 부모가 생각하는 교육효과가 좀 더디더라도 조급할 일은 아니다. 물론 기다릴 수 없는 긴급한 일이나 선을 넘는 일에 대한 즉각적인 개입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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