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생명력이 충만하고 그 마음이 열정적이며 스스럼없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일들이 계속 되풀이되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또 해줘요"라고 계속 말하고, 어른은 그 말대로 하고 또 하다가 지겨워 죽을 지경이 된다. 어른들은 단조로움을 크게 기뻐할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조로움을 매우 기뻐하실 정도로 강하신 듯하다. 그래서 아침마다 해를 향해 "또 해봐" 하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달에게 “또 해봐" 하고 말씀하신다. - G. K. 체스터턴 G. K. Chesterton
반복과 일상은 지겹다. 기질에 따라 간절함의 정도는 다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일상과는 다른 설렘을 기대한다.
위의 인용구에서는 단조로움과 일상에서의 새로움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반복하는 걸 멈추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배움과 습득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과 루틴을 소홀히 하지만 새로움과 설렘도 일상과 루틴의 단조로움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고 의미가 부여된다. 반복되는 호흡이 지겹다고 그만둘 수 없는 것처럼 일상과 루틴은 우리의 삶 자체다. 그리고 많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뭐든 처음 하는 일은 어설프고, 지속성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가슴 설레고 떨리는 성취라도 그렇다. 지속성은 열정과 동기유발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으로부터 시작되며 형성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일상과 루틴은 그렇게 우리 삶이 된다.
너무 익숙해진 후에 새로운 자극은 때로 불안함과 걱정의 실체가 된다. 특히 그 일의 중요성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느낄 때라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 걱정의 영역을 확장하며 떨며 불안해 한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부정적이라 생각하는 감정도 있는 모습 그대로의 실재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버겁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존재를 없애려는 노력은 부질없다. 떨쳐내려고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평소 하던대로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수능이 다가온다. 나의 수능은 아니다. 나도 대입학력고사를 두 번이나 치렀고 그 떨림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나 자신의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난 늘 수능의 떨림을 거의 매년 겪는다. 그리고 수능을 치는 학생들을 위해 기도한다. 고3 담임을 할 때는 물론이고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수능을 칠 때도 그러했다. 그 떨림은 나의 일은 아니지만, 공감을 느꼈던 간접 체험이었다. 큰딸 수능 때 느꼈던 그 떨림이 둘째 딸이라고 더 편안하고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떨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희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미 확정된 일에 대해 떨림을 가질 리 없다.
그 떨림과 두려움과 불안함은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보면 수능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집중과 몰입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용된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때 오히려 익숙한 일상과 루틴을 태연하게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날도 자신이 겪던 평범한 일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떨림이 사라지지 않지만 적어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도 그런 맥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떨림과 두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 없다. 갑자기 열정을 발휘하며 안 하던 일을 해서도 곤란하다.
D-day가 다가올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겸허하게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특히 남들이 수능 전에는 이러면 좋다, 저러면 좋다는 말을 모두 가슴에 새기며 억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게 안 하던 일이라면, 허용범위 내에서는 자신만의 루틴을 따를 일이다.
큰딸이 그랬던 것처럼 둘째도 요즘 나와 부쩍 대화를 많이 한다. 대화나 상담이라기보다 그저 수다를 떠는 일이지만 평소 하던 일 중 편한 일을 선택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딸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내게 표현하며 불안함과 떨림을 인정하고 객관화한다. 난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 조언도 설레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늘 듣던 이야기겠지만 그런 일상과 루틴이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 매몰되어 설렘을 잃어가고 새로운 느낌이 없을 때 그 익숙함 속에서도 매 순간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의도적인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야 하지만...
수능 같은 큰일을 앞두고는 오히려 일상에 매몰되려는 노력도 필요한 듯하다.
걱정도 불안과 떨림도 감당할 만큼 주어질 것이며 D-day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일상처럼 그 순간을 결국에는 마주할 것이고, 그 순간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다. 실수도 default(기본) 값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 수능을 끝까지 치르고 시험장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큰 성취인 것이다.
일상 중에는 평범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찾고, 불안함과 두려움 가운데서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감사가 넘치는 나날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