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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성 난청을 겪으며

by 청블리쌤


의외로 흔한 질병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돌발성 난청'이라는 것이 있다.

나도 진단을 받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소리가 안 들린다거나 그런 돌발 상황이 아니라 특정 음의 영역대만 잘 들리지 않는 거라서 청력검사를 하기 전에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2016년 근골격계와 소화기 계통에서 시작된 건강쇠약으로 힘겨워했던 적이 있었다. 소화가 잘 안되니 잘 먹지도 못하고 강제로 몸무게는 줄고, 무기력함과 기운 없음으로 몇 달을 고생했다. 그러다 귀가 먹먹해지는 현상이 생겨 우연히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 난데없이 청력검사를 권했다. 그리고 받은 진단이 돌발성 난청이었다.

꽤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받았고, 휴직을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약물치료가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몸 전체가 회복되었다.


그 이후에도 몸이 너무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슷한 증상을 느끼고 바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해서인지, 양쪽 귀의 먹먹함과 귀의 압력이 올라왔다. 이미 전에도 겪은 적이 있는 돌발성 난청 증상이 확실했다.

코로나 후유증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로 울산과 대구의 1정연수 강의와 진학사 온라인 강의에 모든 걸 다 쏟아붓고 목 상태가 안 좋아져서 약물치료를 계속하던 차에, 다음날 아침에 가서 청력검사를 하고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아서 추가 약물치료를 해야 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익히 겪은 터라서 늘 조심스러웠지만, 양쪽 귀로 차오르는 듯한 답답함과 먹먹함의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고, 초기 치료를 하지 않으면 청력 상실의 위험도 있었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약물치료를 하며 약 기운인지 귀의 압력과 이명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


돌발성 난청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바이러스 감염이나 혈관장애 등으로 생길 수 있지만 병원에서도 그 정확한 원인은 밝혀 낼 수 없다고 한다.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과로하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어지럼증을 동반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입원치료를 해야 하고, 스테로이드를 고막에 직접 주사한다. 나의 경우 입원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서 약물치료와 안정과 휴식을 권고받았다.

초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니, 귀가 먹먹한 증상이 있으면 바로 이비인후과에 가 볼 것을 권한다.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의 평소 약점이 하나씩 다 들춰지는 느낌이었다.

초기에 온몸이 아플 때 유독 평소에 많이 불편한 근골격계를 집중 공격당하는 느낌이었고, 목소리가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잘 안 돌아왔고, 귀에 이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명의 연장인지 예전의 고통을 회상하듯 돌발성 난청까지 온 거다.


질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만 예방하거나 확률을 낮추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할 수 있다. 평소 운동과 식사 등의 생활습관도 노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스트레스를 차단할 수는 없지만, 관리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뭐라도 해야 되겠다. 혹 안 하거나.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가정법적인 후회나 자책에서 벗어나는 일이 스트레스 해방의 시작이다.




언젠가 학교 노트북을 자전거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린 걸 모르고 지나쳐서 분실한 적이 있었다. 동일 모델의 중고 노트북을 40만 원에 구입해서 학교에 반납했지만, 노트북 안의 자료도 같이 날린 것이 너무 큰 자책이 되었다. 아내와 딸들이 내가 다니던 동선 곳곳에 노트북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붙여두기도 했다. 나중에 회수하면서 보니 어떤 분이 “꼭 찾으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써주신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기억도 났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둘째 딸은 노트북 모양을 종이로 정성껏 만들어서 내게 전해주었다. 어린 마음에 잃어버린 아빠 노트북의 빈자리를 그것으로라도 채우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난 그 상실의 아픔과 자책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마음의 아픔을 넘어서 실제로 온몸이 오래도록 아팠다.


It just happened. What happened just happened.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나도 겪어보니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받아들이는 일이 더 중요했다. 후회와 자책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 과거의 망령처럼 현재와 미래를 망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실수를 했을 때 자책이나 후회를 증폭시키는 말 대신, 그 아픔을 먼저 살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가장 속상한 건 본인이니까...


이건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 아이가 중요한 일을 실패했을 때, 부모님을 실망시킬 때도 그렇다. 아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보통 부모가 하는 잔소리는 아이들 본인도 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소위 쌀로 밥 짓는 재미없는 이야기에다가 몇 배나 더 큰 마음의 상처를 가져다주는 이야기다. 아픔이 성장의 시작이지만, 외적으로 강요된 아픔이 아니라도 본인의 아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난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스트레스 지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필터가 잘 안된다. 그래서 더 노력이 필요하다. 심호흡을 하며, 어떻게 할 수 있었다는 가정법적인 생각을 의도적으로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한다.


이런 영어 문장이 떠오른다. 후회하고 자책할 때 떠올려야 할...

Don’t stress over what could have been.

Chances are if it should have been, it would have been.

Should have. Would have. Could have. Didn’t.

그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마라.

아마도 그래야 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래야 했거나, 그렇게 했었을 일이나, 그럴 수 있었던 것들.. 모두 어쨌든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저 직설법적인 자세만 필요하다. 실수와 실패를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만 받아들이는 거다. 가정법은 해롭다. 난 수업시간에 가정법을 이토록 저렴하게 설명한다. 한 글자로 “뻥”, 두 글자로 “구라”, 세 글자로 “구라뻥”... 내용이든 시제든 모두 “구라”라고.


구라뻥에서 허덕일 이유는 없다. 그것도 나의 지금 이 순간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일과, 미래의 가능성,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 걸고까지 그럴 필요도 이유도 절대 없다는 것을 또 바보 같이 실수와 아픔을 반복하며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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