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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준 마음의 치유(대행사 ep.4)

by 청블리쌤

카피라이터 발상의 전환이 담겨 있는 듯한 멋진 드라마를 만났다. 드라마 초반 진행 중이지만 유리천장 설정과 팽팽한 긴장감 자체가 큰 기대감을 갖게 한다.


드라마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뜻밖에 마음의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어 몇 부분 정리해 보려 한다.



1 에피소드 제목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기대감이 담긴 발상이다. 그래서 이 제목의 말은 친구 아닌 적을 분별하는 테스트 같다. 그러나 때로는 친한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서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문구다. 이 말을 깨닫게 되는 순간 동화 같은 세상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말에 매몰되면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본인도 외롭겠지만,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살아도 이런 현실을 한 번씩 의식해야 한다는 알림 문자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2 밟으려 하는 자와 밟히지 않으려 하는 자의 대화 중

비바람 불면 알게 돼요. 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꽃과 길바닥에서 자란 들꽃의 차이를.


들꽃은 소위 언더독이다. 사람들이 언더독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언더독과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 놓고 언더독을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언더독이 결국 올라서지 못하는 결말에 대해서 대중은 분노하기도 한다. 물론 평론가는 대개 후자에 대해 높은 평을 한다. 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3 주인공이 정신건강 의학과 치료를 받을 때 의사가 하는 말

용서해라.

너 자신.

문 꽉 닫고 혼자 웅크리고 있는 니 안에 그 여자.

콤플렉스에서 발현된 피해의식에 쩔어서 상처받은 여중생처럼 마음 열면 다칠까 봐 꽁꽁 싸매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사람들한테 버림받을까 봐 잊힐까 봐 두려워서 일이랑 공부에 사력을 다해 매달리는 니 안에 그 여자.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나의 열정의 일정 부분은 나의 상처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걸 들켜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도 교직생활에도 내가 그렇게 열심을 다해왔던 건지, 그렇게 나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늘 "Not enough"라고 스스로 너무 다그치며 힘겹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정말 이젠 스스로를 용서할 때가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늘 먼저 다가서기 힘들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주변의 일에도 쉽게 상처받으며 괴로워하는 나는 교사가 되기에는 너무 불리한 멘탈조건을 가졌지만, 그래서 아픔을 겪는 학생들에게 공감의 손을 내밀고, 귀를 더 열게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픔은 사명”이라는 나의 교사로서의 명제를 삶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그리고 먼저 다가가기 힘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애쓰지 않아도 늘 만남이 허락되는 이 상황이 나의 상처와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함을 고백하게 된다. 내가 학생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성장을 응원하듯이, 학생들도 “나의 선생님”으로 존중하고 내 부족함까지 다 끌어안으며 나를 신뢰하고 진심을 전해주고 있으니, 이토록 축복받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4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로 고민하고 있는 회장인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아들 :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 : 있지!

아들 : 그럼 말씀 좀.

아버지 :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넌 뭐 하러 월급을 주니? 머리 좋은 놈들 왜 모아 놨어. 싹 다 모아서 방법 찾아내라고 하면 되지.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니? 회장이 왜 걱정하니. 걱정하도록 만들어야지. 니 걱정 월급 받는 머슴들한테 싹 다 줘 버려라.


나의 오지랖, 세심한 관심도 여기서 출발했다는 생각.. 내가 다 걱정해 주고 내가 다 해주려는... 심지어 동학년 하면서 업무를 늘 내가 더 많이 가져가야 더 마음이 편하고... 학생들과의 감정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내가 나서서 해주려 했던 일...


영어멘토링을 17년째 하면서 오히려 교사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멀리서 박수치며 응원하는 일을 할 때 학생들 스스로 결국의 진정한 성장을 이뤄간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난 여전히 학생들과 딸들의 걱정을 내가 먼저 하려 하고 내가 먼저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나이 들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게 엄청난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요하는 일이라는 걸 몸의 한계로 드러나는 요즈음은 더 절실하게 느낀다.


위의 대사가 과격한 언어로 되어 있고, 내가 아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대목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은, 어설퍼 보여도 그 나이대와 그 위치에 맞는 책임과 기회들이 아이들에게 놓여 있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을 한 것이다. 놓쳐버리는 듯한 그 기회를 내가 더 아쉬워하거나 학생들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예방해 주려는 나의 걱정이 나를 해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진정한 성장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들으면 회장단의 횡포나 무책임한 말로 들리지만, 정말 프로다운 리더십의 표현이었다.


리더십은 자신이 혼자 일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얻게 된 성취는 리더가 아니라 일한 각자의 몫이 될 테니까... 어찌 보면 난 걱정을 앞세워 그 성취까지도 빼앗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세상 짐을 다 지고 가려는 듯한 걱정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 각자의 걱정의 몫을 돌려주는 건 '비정상의 정상화'이기도 하지만, 이젠 치열한 나의 생존의 문제일 정도로 절박해진 것 같으니...


힘겨워하는 나를 위한 위로의 메시지를 이렇게 드라마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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