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의지를 몸이 기억할 때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말이고, 블로그에도 여러 차례 언급했던 말이다.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 습관 형성을 돕기 위해 고1 학년부장을 할 때 희망하는 학생 60여 명과 여름방학 일주일간 아침 일찍 등교하여 하루 네 시간씩 자습하며 나랑 학습 및 진로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학생들 전체에게 편지를 쓰면서 motto처럼 생각해 낸 말이다.
일단 신청한 학생들은 마음의 의지에 대해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의지가 금방 타오르다 꺼지는 열정에 그치지 않고, 굵직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후속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문장에 눌러 담았다.
몸이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안 좋은 습관을 들여놓으면 그걸 깨는 건 처절해야 할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쉬울 정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의지를 언급한 것은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것에 대한 칭찬의 의도 역시 담겨있었다.
마음조차 먹지 않는 아이들을 바로 교육할 수는 없다. 대장장이가 쇠가 달궈질 때까지 기다리듯 때를 더 기다려야 한다.
‘줄탁동시’도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 할 타이밍에 어미가 부리로 알을 쪼아준다는 의미다. 웃기는 급훈 중에 이런 말도 있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조급한 어른은 자칫 의도하지 않게 후라이를 만든다. 깨고 나오려는 타이밍은 동시성이 없다. 모두가 각자의 속도가 있고, 누군가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너무 늦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런 마음조차 먹지 않는데 억지로 끌고 나오면, 혹 좀 더 기다렸을 때 제대로 시작할 기회조차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집중이 안 되는 학생들을 향해 돌직구를 날린다. 집중하지 말라고. 당장 이룰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이라고. 그 대신 집중하는 척, 위선을 떨라고 말해준다. 하는 척하는 건,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다. 그리고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하는 척한다는 것은 아직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없는 초라한 시작 단계라는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위선을 반복하라고 말해준다.
“인간은 위선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인간의 사회화나 교육도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위선 같은 단순한 행위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찌질해도 된다는 위로와, 좌절할 자유가 있고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의 과정이라는 사소한 위로를 들으면 아이들은 겨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고, 특정할 수 없는 각기 다른 그 어떤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그 위선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척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재활이라는 것은 원래 당연하게 하던 것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재활 과정이 아니라도 인대를 다치거나 골절로 잘 걷지 못할 때 재활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너무 당연하게 누리던 것에 대해 의식하게 되면서 잊고 있던 감사의 마음도 재활의 과정을 거친다.
재활은 무의식적으로 하던 동작을 의식하는 걸음마 단계로 시작한다. 매 동작을 의식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순간을 위한 것이다.
호흡이 갑자기 곤란해지면 들숨과 날숨을 의식한다. 그러나 호흡이 편해진다는 것은 들숨, 날숨의 과정이 이뤄지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다.
몸으로 기억하는 무의식적인 동작은 의식적으로 머리를 써야 하는 또 다른 행위를 하기 위한 여유를 더 남겨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시작의 문턱에서 자꾸 좌절하는 것을 처음부터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거나 다그치면 안 된다. 그러다 어렵게 갖게 된 본인의 의지조차 무력해지면 아예 훨씬 더 오랜 기간을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면, 학생이 아직 온전한 의지를 갖지 못한 상태라도, 거부감이 없다는 걸 전제로 의지 형성을 도울 수는 있다. 물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압박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학생들이 좌절할 때 어른의 분노와 짜증과 실망감으로 아이들의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다시 일어서면 되고, 어떻게든 멈추지 않으면 무조건 성장하고 향상되며, 결국에는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시간을 지키는 습관,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 몸을 일으켜 스스로를 고립시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공부를 시작하는 습관, 집중하는 습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습관 등이 형성될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해 줘야 한다.
<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이라는 책에서 나의 생각과 닮은 내용을 확인했다. 전문가의 글이어서 평소 나의 교육활동에 더 힘을 실어주는 느낌을 받아 든든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운전의 사례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운전 절차를 외우거나 지시 사항을 따라 하며 운전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클러치 페달이 부드럽게 진동할 때까지 왼발을 천천히 떼어 클러치 페달을 위로 올린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해서 운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부드럽게 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것은 클러치 페달에서 얼마나 천천히 발을 떼야 하고 시동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가속페달은 얼마나 세게 밟아야 하는지 감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전을 배우면서 도로의 표면이나 경사가 다를 때 이것을 어떻게 달리해야 하는지의 감각도 빨리 발전시킨다. 직관적인 느낌으로 운전하고, 경험을 통해 개선해나간다.
인류학자 모리스 블로흐Maurice Bloch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말로 생각하지 않을 때 운전자는 진정한 전문가’이다.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길은 확실하다.
"마음의 의지를 몸이 기억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든 분야를 다 해낼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필요한 공부와 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은 거의 다 해낼 수 있다. 단지 각기 그 속도와 타이밍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