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드라마 스페셜을 보았다.
<더 글로리>에서 학폭 여고생 연진 역할로 화제를 모은 신예은이 출연한 드라마라서 더 관심이 갔다.
the last straw라는 표현이 있다. 낙타 등에 짐을 계속 싣다가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만 올렸는데도 낙타의 허리가 부러졌다는 속담에서 유래한 말이다. 결국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마지막 무게를 말하며 ‘최후의 결정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존재감 없는 사소한 무게로 그 극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제목을 보고 이 표현이 생각났다. 딱밤 한 대로 이별한다면, 그 한 가지 동작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지만, 착각 속에서도 이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사랑이 아니라는 자각이 있음에도 이별의 아픔이 두렵거나, 미련이 남아 헤어지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심리를 잘 활용하여 대박 난 프로그램이 <환승연애>다.
그리고 그 경계는 대개 모호하다. 사랑은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며, 사랑이 아니었으면 견딜 수 없을 상대방의 모습을 받아주는 것을 애쓰지 않아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사랑도 배워야 할 감정이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감정은 사랑을 시작하게 하지만,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는 건 영어로 commitment라고 확신한다. 헌신이라는 의미로 커버할 수 없는 단어다. 손해 보고 몰입하고 애쓰고 책임을 다하는 모든 걸 다 포괄한다. 그 단어에는 자아감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상대방을 위해 성실하게 진심으로 애쓰고 노력하는 느낌이 포함된다.
사람마다 배려의 깊이도 다르고, 표현의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각각 그걸 담아두고 수용할 수 있는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라도 만인의 연인이 될 수는 없다. 연예인 팬덤은 논외로 두도록 하자.
그러나 사랑은 각자의 모습 중 포기해야 할 것을 끊임없이 자각하려 노력하면서도, 상대방의 자아를 있는 모습 그대로 최대한 존중하려 애쓰는 것이다.
변화될 미래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후 혹 변화되지 않을 모습까지도 끌어 안아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동학년을 같이 하던 젊은 선생님이 내게 연애 상담을 자주 해왔다. 머리로는 자신을 아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가슴으로는 나쁜 남자 스타일에 끌린다는 것이었다. 나쁜 남자 컨셉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머리로 그런 생각이 들고 있다면, 외적 매력에 이끌리지 말고, 적어도 결혼을 전제로 만날 거라면 “나 같은 남자를 만나”라는 위험한 조언을 해준 기억이 난다. 여기서 "나 같은 남자"라면 비주얼을 어느 정도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매력보다는 함께 마음을 맞춰 서로를 소중하게 아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었고, 선생님은 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내 확인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나를 처음 봤을 때 얼굴을 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딸들에게는 엄마가 처음에는 남자 얼굴을 보다가, 철이 들어 그러지 않게 되었을 때 아빠를 만났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나도 인정한다. 단, 반복적으로 상기해 줄 필요는 없는건데ㅋㅋ
그런데 나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렇게 편안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경청의 힘이다. 내가 결혼한 게 신기하거나 나처럼 거울 볼 때마다 결혼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학생들은 내 결혼 비결인 경청에 대한 치열한 노력을 권하며 희망을 준다.
나쁜 남자 컨셉은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애쓰지 않아도 매력이 그냥 넘쳐나는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매력은 노력을 막는 부작용도 있다.
나는 적어도 문자 그대로 ‘나쁜 남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받아들였다. 매력으로 어필할 수 없더라도 노력으로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지금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관계규정에 대해 고민이 커졌다. 나는 사랑으로 보는 이 관계를 아내는 우정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서로의 공통점 어딘가에서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도 아내도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한참의 고민 끝에 그대를 사랑으로 대하는데 그대는 날 우정으로 대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내 이 마음이 더 깊어지면 불일치의 갭이 더 커져서 서로의 상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그만 만나야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별을 통보하는 것 같았지만 절실함이 담긴 절규 같은 외침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도 연락도 없었다.
난 내가 자초한 이별에 대해서 후회하면서도, 내 사랑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관계로 이어갈 수 없었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새로 하며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 있었다.
며칠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근거로 자신이 나를 우정으로 대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날은 우리 관계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 1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아내에게 했던 나의 진심이 담긴 고백은 이런 거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더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더 사랑하는 '을'을 자처하면서, 이별 같은 고백을 한 일년 만에 우리는 결혼했다. 동갑인 나와 아내가 26세 때였다.
나이가 들어서 세상과 사람을 더 많이, 더 잘 알게 될수록 결혼은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에만 기대어 결혼이라는 현실에 들어섰다. 물론 준비 안된 그 대가도 톡톡히 치렀지만 그 아픔도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더 가깝게 해주었고, 이후에 축복과 은혜로 만나게 된 두 딸들과 소소한 행복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남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평균 이상의 삶을 보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부족한 서로의 모습을, 이상적이지 않은 우리 가족의 물질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니 그 안에도 행복이 있었다. 무능한 아빠로 인해 차를 가져본 적이 없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네 명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나들이가 나는 너무 행복했다.
얼마전 수능 끝나고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한 둘째 딸과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놓고 괜찮지 않은 아이유와 겉으로는 표가 안 나게 괜찮지 않은 이선균...
이 드라마의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는 “불쌍히 여김”이라고.. 비판하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정말 괜찮지 않은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고, 관계로 규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스쳐가는 만남에서도 그런 교감이 이루어지고 나면 정말 괜찮지 않은 그 어둠에서 스스로 벗어나도록 애쓰고 노력할 이유와 힘을 얻게 되는 거라고...
결국 조건이나 성과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변화와 성장을 가져온다고. 그걸 사랑이라고 한다고...
이렇게 꼰대 같은 설교를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순간 역사가 일어나며,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교사의 꿈을 딸에게 살짝 세뇌시키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어림도 없었다.
어쨌거나 여기저기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서로 성장해가는, 사랑뿜뿜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