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한 9년 전 제자와의 만남

by 청블리쌤

졸업식 후 내게 와서 눈물을 흘리며 차마 작별을 망설이던 제자가 있었다. 심지어 난 3학년 담임도 아니고, 1학년 때 영어교사였을 뿐인데...

이 학생과의 인연은 어머니였다. 중학교 때 영어를 잘했던 학생인데 교육특구 여고에 진학 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고심끝에 어머님이 내 홈페이지에 장문의 상담을 남기셨다. 난 학원부터 그만두고 영어멘토링과 학교에서 내 특보수업수강을 권했다. 기본기부터 차분하게 시작하여 그동안 축적된 영어실력과 만나면 곧 회복이 될 거라는 확신을 드렸다.


놀랍게도 제자는 당장 그 미션을 시작했다. 학교수업은 물론, 영어멘토링, 특보수업, 점심시간 인문학독해특강, 방학 특보수업까지 끝까지 열심히 참여하였고, 겨울방학 때 꾸준한 자기주도학습까지 이뤄냈다.


2학년에 진급해서 영어성적이 안정되었고, 수업시간에 자신의 영어공부 비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너희들도 청블리쌤 특보를 들었어야지”라는 말을 남겨서 날 크게 감동시켰던 기억이 난다.

3학년이 되어서도 이 학생은 나의 조언과 학습코칭을 기꺼이 다 받아들였다.

성적이 더 잘 나올 수도 있었는데 이쉽게 지거국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재수를 권하기도 했지만, 제자는 그냥 남기로 결정했다.


대학 진학 후 내게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뜻을 전해서 내가 매주 청년 예배를 같이 드리고, 대학부까지 연결해 주었다. 그러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교회로 옮겼는데 완벽하게 적응을 잘 해서 신앙생활도 즐겁게 잘 하고 있다는 정기적인 소식에 기뻤던 기억도 난다.


대학 진학하고도 정기모임처럼 6개월에 한 번씩, 그러니까 한 학기에 한 번은 나를 찾았다. 졸업하고도 찾아온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나의 조언을 겸손하게 다 듣고 반응한다는 것도 늘 놀라웠다. 인생의 멘토처럼 나를 대하고 존중했다.


그러다가 작년 겨울에는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서 줌으로 화상통화 하듯 비대면으로 만나기도 했다.

이후 제자는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 준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계속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6월에 취준생 꿈의 직장인 공공기관에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2월에 졸업하자마자 거의 바로 취업을 하게 된 거였다.


그리고 7개월 차 직장인이 된 제자를 오늘 1년만에 다시 만났다.

월급을 받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내게 멋진 카디건을 선물로 들고 왔다. 진급시킨지 8년이 지났으니 김영란법과는 무관하겠지만... 이렇게 선뜻 받아도 될지 망설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고 너무 기뻐했다. 속물 같았겠지만, 준비한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졌기 때문에 나도 솔직한 나의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아빠랑 몇 번을 다니면서 고심 끝에 골랐다고 했다. 아빠가 자기에게 먼저 하나 해주고 선생님 선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체념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 이야기를 집에서 자주 하니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나의 존재가 부모님들께도 친근한 듯했다.

아버지가 한 번은 제자에게 "나중에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래, 청블리쌤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래?"라고 물으셨다가 상처받으셨다고 한다. 제자는 내가 가정불화의 원인 제공자라는 농담을 하며 웃었다.

부모님들도 졸업 후에도 내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시고 지지해 주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


제자는 좌충우돌 첫 직장생활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은 저렇게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헤아려져서 가슴이 찡했다. 그래도 대견하고 뿌듯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바깥은 너무 추운 상황에 자신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착한 제자였다.

업무도 업무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 거라고 했다.

환경을 조정하거나 만남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니, 좀 더 무뎌지는 훈련을 하자고.

마침 카페에서 시켜두었던 에그 타르트가 있어서, 제자의 마음이 에그 타르트같이 말랑말랑해서, 때로는 남들은 힘겹지 않게 무시하고 지나칠 일을 필터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라고... 점점 더 단단해져도 충분히 남들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순수하게 진심을 다하는 건 변하지 않을 것이니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동기들 중에서도 제자는 나이가 가장 어렸다. 보통은 비정규직으로도 경험을 하기도 하고, 몇 년간 취준 과정을 거쳐서 입사를 하게 되니까, 이 제자는 거의 고속으로 입성한 거라서 주변의 기대와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본인은 실수를 많이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삼수 한 동기 언니는 취준하면서 타버릴 정도로 힘들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 날 정도였다고 한다. 제자도 취준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을 뿐, 하루에 13시간 이상을 공부만 하고 자려고 누워서도 뿌듯한 성취감이 아니라 이렇게 하고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떨지에 대한 불안감에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걸 지켜보시는 부모님도 너무 힘들어하셨어서, 합격했을 때 합격 자체에 대한 기쁨보다 그런 고생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크셨다고 했다.


난 기성세대의 미안함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열심히 한다고 다 원하는 결과를 보장해 주지도 못하고, 충분히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더 죽으라고 애써야 된다는 뻔한 잔소리를 위로랍시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좌절스러웠다.


제자는 실수를 자주하는 부족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동기 언니가 최선을 다하고 배워가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너 잘못도 아닌데 자꾸 그러면 다들 너가 잘못한 줄 안다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마치 미생의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그렇게 잘 이겨내고 있었다.

난 미생은 완생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이미 담겨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 시작점에서 얼마나 어떻게 채워갈지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니 설렘으로 매 순간 실수하면서 배우라고... 그때만 마음껏 할 수 있는 특권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너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잘 할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단지 기대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할 뿐, 너가 불성실하게 피하는 건 아니니... 그렇게 애쓰고 진심을 다하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주위의 분들이 이해하실 거라고...


헤어지고 나와의 만남을 감사하는 문자가 왔지만... 난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 생각을 정리하고 다짐하며 위로를 받고 힘을 낸 건 본인 스스로였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난 그걸 옆에서 지켜보았을 뿐이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두가 떠난 자리에 추억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