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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02. 2023

학년 첫날, 익숙해지지 않는 분주함

경력이 쌓일수록 분주함을 면제받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모든 변수를 다 예측할 수 없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마음의 평안이나 여유는 사치다. 어떨 때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포기해야 한다. 



얼마 전 내 경험을 담아서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담임에 대한 자료나 첫날의 흐름 등을 정리해서 포스팅했었는데, 다소 평온했던 내 블로그 기준으로 갑자기 조회수와 공감이 폭발했다. 3월 1일 조회수는 절정이었다. 

(찾아주시고 공감이나 댓글까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ㅠㅠ)

불안함을 설렘으로 바꾸려는 선생님들의 애쓰심인 것 같아서 내 자료가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같은 교사로서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첫 만남에서 반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담임의 영향력은 학생이 정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1년의 긴 시간을 거의 매일 봐야 하는 존재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직감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날 선택한 적이 없고, 나 역시 아이들을 내가 골라서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반 아이들에게 오히려 운명적인 만남과 귀한 인연을 강조했다. 중3이면 현실적인 진로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순간에 대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되겠지만, 그보다 학반에서의 인화와 배려를 먼저 강조했다.



내 경력과 그동안의 성취의 기억을 더해서 아이들에게 교육적 확신을 주려 애썼다.

나 자신이 브랜드인 것처럼, 상품을 파는 것처럼 마케팅을 하는 영업사원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사교육과는 달리 공교육은 아이들의 선택을 받는 구조가 아니므로 굳이 안 팔아도 되지만... 난 올해도 학반에서 아침 영어단어시험, 독서, 댓글달기, 플래너점검 등의 자기주도적 학습 활동과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을 하려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몰입시켜야 할 나만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더 얻는 건 없지만,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기대감으로 인한 몸부림이었다.



브랜드 홍보와는 별개로 보통 나의 혼신의 연기로 인해 첫날 학생들은 너무 무서워 보이는 내 모습에 좌절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연기가 제대로 될지 늘 걱정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내 의도와 관계없이 생기는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카리스마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던 것 같아서, 오만상 무서운 척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큰 걱정없이 아이들을 만나는 여유는 좀 생긴 것 같다.

더구나 난 11개 반 담임 중에 유일한 남자담임이었다. 여자담임선생님을 주로 만났던 아이들은 일단 남선생님이라는 낯섦에 어색한 긴장감을 보이기도 했다.



늘 그래왔듯이 학반 마스터플랜을 설명하며 1년간의 교육방향을 보여주었고, 학부모님께 전해드리는 편지를 아이들에게도 읽히며 구체적으로 방향을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

자기소개와 타임캡슐 꿈종이를 작성시켰는데 진지함과 몰입의 정도가 출발점의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역할은 그 간격을 최대한 좁히면서도, 더 날갯짓을 원하는 아이들까지 존중해 주는 일일 것 같았다.



이 와중에도 첫 수업도 있었다. 수업종이 울리고 내가 입실할 때 서 있던 학생들을 세워두고 규율과 책임을 강조했다. 초반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아이들은 제대로 반응한다.

우리 반 아이들도 쉬는시간 종료되는 담임시간에 늦게 들어온 애들을 세워두고 지도를 했더니 다음 시간에는 종이 치기 전에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난 올해도 통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맨바닥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과의 신뢰를 얻으면서 나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고등학교 가서 상처받으며 후회를 안고 지내지 않도록, 과정 자체도 행복할 수 있도록... 



퇴근길에 학부모님께 단체 문자를 보냈다.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이제 시작이다.


안녕하세요? 왕선중 3학년 11반 담임교사 영어과 ***입니다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한 첫날이었습니다

오늘 학생 편으로 학반 마스터플랜과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전달드렸습니다(꼭 확인해 주세요)

1년간 부모님과 함께 아이들의 꿈을 향한 행복걸음을 곁에서 돕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응원하는 마음이 1년 내내 아이들에게 가닿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제 번호는 저장해두셨다가 출결사항 발생 시 연락 주세요

1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세요^^왕선중 담임 드림.



모든 선생님들이 그 선생님들을 새롭게 만난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더불어 행복교육을 이어가기를... 분주함은 어떻게든 만남에 최선을 다하려는 그 시작점일 것이니... 점차 여유를 찾아가며 의미 있는 교육적 변화와 평소에 그저 행복하게 지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얻게 되어 감격하게 될 교육적 성취까지도 함께 응원하며 힘을 내기를, 그렇게 매 순간 즐거운 순간들을 모두가 누리게 되길 기도하며...




이 글에 9년 전 제자의 댓글이 달렸다. 특히 임용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지표 같은 존재라고... 블로그의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고 그런다고... 자신도 멘토한테서 인생수업 듣는 것처럼 글을 읽는다고ㅠㅠ


울컥했고 감동했다. 제자의 9년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소 길긴 했지만 댓글에 다 담을 수 없었을 텐데 뭔가 그 이상의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 오랫동안 교사를 하면서 새로운 만남에 대해 느끼는 기대감과 설렘 등의 복잡한 심경과 조금은 닮아 있을 듯한 불안감...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설렘으로만 규정하기에는 현시대의 불안감을 생각하면 낭만적으로까지 보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도달할 길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 제자와 함께였던 9년 전과 그 이후의 첫날이 떠올랐다. 2, 3학년이 가운데 공간을 터주고 기다리고 신입생 1반부터 담임쌤 인솔하에 강당에 입장을 하면 선배들이 박수를 쳐주는 식으로 진행되던 입학식이었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인솔해서 입장할 때 박수와 더불어 감당할 수 없는 데시벨로 한참을 이어졌던 함성소리... 그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까지 계속되니 그게 나를 향한 함성임을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당 앞에서 1학년 담임 소개할 때 학생들이 내게 마음껏 쏟아주었던 함성소리는 그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나의 사랑과 열정의 메아리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 그 감격의 순간과 그 함성이 환상과 환청인 것처럼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 내가 초라해지고, 무력감을 느낄 때도 아무것도 아닌 내게 쏟아주었던 학생들의 사랑이 여전히 과분한 듯 나를 교사되게 하고 있다.


그때 모든 학생들을 이름까지, 그들의 성적과 평소의 기쁨과 고통까지 마음에 품었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놓쳐버린 기억으로 인해, 미안한 마음 끝이 없지만...


나를 교사이게 해주었고, 세월의 거센 저항을 마주하였지만 여전히 교사이게 해주는 이유가 되고 있다...

댓글을 읽고 감격하고 울컥해서... 이 감동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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