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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04. 2023

입국심사 같은 건강검진

나이가 들수록 건강검진이 단순한 숙제가 아니라 두려운 관문이 되어 간다. 이 세상에 더 머물러도 될지 입국심사를 새로 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년까지 함께 근무하던 선배교사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함이 있으셨던 분이셨는데, 수술받고 3월 초에 복귀하신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너무도 갑작스러운 부고에 전교직원이 황망함을 느꼈다.


건강검진이 모든 병을 다 예방하고 위험에서 보호해 주는 건 아니었던 거였다. 나이가 훌쩍 더 들어갈수록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또래 공동체가 형성되어 간다.


오늘 아침에 그 심사를 받았다.

여전히 '헬린이'이며 꽤 많은 시간이 더 흘러도 헬린이로 머물 것 같은 난, 오늘 새벽에도 헬스장을 찾았다. 모의고사를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하듯이 이번 주에는 신경을 더 썼던 것 같다.

마치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하거나 키와 몸무게 등의 신체측정이 예고되면 여학생들이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것처럼... 최상의 상태로 기록되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의 다소 낭만적인 열망과 달리 난 좀 더 비장한 이유로 건강검진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건강검진도 학생들이 치르는 모의고사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가감 없는 객관적인 수치가 나와야 한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결과는 재앙일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두렵다고 그 결과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보통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최종선고가 아니라면 부족함에 대한 인식은 의식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매해 갱신되는 듯한 입국심사와 같은 검진은 계속될 것이고 몇 번을 더하게 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종착지에 가까워 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결국에는 정해진 결론에 이르기 전, 무한하게 시간이 남은 듯 착각하며 지내던 오만함에서 벗어나,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삶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회복하는 치유의 기회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검진 후 제공되는 죽을 먹으려 스카이라운지에 갔다가 찍은 사진... 봄이라고 하기에 아직은 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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