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교육 없는 행복교육 비하인드스토리

by 청블리쌤

사교육 없이 대학 진학하여 그래서 오히려 여유 있고 행복하게 지냈다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지난 번 이전글을 보고 여동생이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딸들 실명은 OO, **로 표시)


근데.. 언니가 전업주부이지만..

피아노 전공을 해서 피아노 학원을 갈 필요가 없었고.. 오빠는 기타를 잘 쳐서 OO이가 베이스 기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계기가 된 거 아닌지..


서울의 대부분 아이들은 운동하려고 문화센터나 체육관을 다니는데 오빠는 시간 날 때 딸들과 농구도 하고 운동을 해주니..


수학을 가르치다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탱그램(칠교조각퍼즐)을 직접 만져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지. 근데 OO이 **이가 가지고 놀았던 교구들은 유명한 사고력 학원 몇 개를 다녀야 만져 볼 수 있는 거였다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책..

책은 부유하게 사준 편 아닌가.. 우리가 어릴 적 그나마 많이 접했던 것처럼..

사지 않더라도 도서관에서도 많이 빌려 보고.. 그 경험이 중요하지..


자가용으로 드라이브는 안 했어도 자전거로 어디든 다니고 자연을 만끽하고 운동도 저절로 되고.. 그럼 됐지..

목적지를 굳이 자가용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 같아도 사라고 했을 것 같아. 일단 일상이 편해지니까..

근데 나도 아빠의 자가용보다 아빠의 자전거가 그리울 때가 있어. 그때의 상황이 더 그리운 거겠지..


나는 OO이에 대해 아니까 오빠 글만 봐도 짐작이 가고 느낌이 오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이게 가능해? ' 그냥 자족? 자기만족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두 딸들이 가장 잘 클 수 있었던 요인은..

신앙과 부모님의 인성과 사랑..

물론 그 안에 유전인자도 포함되겠지. 그래서 두 딸도 인성이 좋아.


내가 본 부모들 중에 오빠네가 최고야. 오빠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나 같아도 행복할 거 같아.

자전거도 없이 뚜벅이로 살아도 말이지. OO이 **이가 똑똑하고 인성이 좋으니 아는 거야..

(후략)



남들과 비교해서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해왔지만, 난 알고 있다. 누구보다 부유한 마음과 행복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난 그것이 눈에 보이는 가치나 물질적인 재산 등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난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1. 우리 가족의 삶의 방향

우리 가족의 삶의 지향점은 신앙으로부터 나온 시선이다.

그리고 그중 가진 것을 넘어서서 더 욕심내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추구해왔다.


수입에 대해서는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게 하고, 자신의 역량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학벌을 욕심내지 않는 것이었다. 자족하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강점에 집중하는 삶이기도 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속상해하기보다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리는 것...

기질과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기질대로, 가진 성격대로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큰딸도 연애하면서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곧잘 한다. 그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비판의 말이고, 상대방이 자신이 변화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배려하는 말이다.


그건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건 복음적인 관점을 닮아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은혜의 모습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대로 화석화된 모습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장하고 나아지기를, 재촉하지 않으면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성장하도록 애쓰고, 배려하려고 애쓴다.

성장했고, 배려하고, 미덕이 넘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아닌 거다.


이건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2. 교회의 혜택

집에서부터 음악을 접한 기회가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하면 음악을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교회에서 서로 악기를 가르쳐주는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 복음과 신앙을 떠나서라도 교회라는 공동체는 특히 딸들의 성장 배경에 정말 선하고 큰 영향력을 끼쳤다.


큰딸은 중등부 찬양팀에서 어쩌다 빈자리가 있어 베이스기타를 처음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배운 피아노와 아빠한테 배운 통기타로 입문의 문턱이 높지는 않았다. 교회는 음악을 좋아하는 전문가가 많다. 딸은 교회에서 찬양팀 대학부 오빠들에게 베이스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난 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예고 없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생일선물 몰아서 주는 거라고 하며 베이스기타를 사주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샀던 그 연습용 베이스기타를 딸은 대학교 2학년 때까지도 동아리 밴드 연주할 때 쓰고 있다


베이스기타 때문에 고등학교 때 실용음악 전공한다고 아빠한테 대들고, 음악위탁학교에 가야겠다고 버티던 딸의 모습을 미리 그려볼 수 있었다면 사주었을까 후회하려고 하다가 말았다. 그 정도로 베이스 기타에서 즐거움을 찾았다면 정말 제대로 좋아하는 걸 찾아준 거니까... 공부에 지장은 있고, 한참 헤매다가 돌아왔지만 결과적으로 미련 없이 전공을 도전해 보았고 지금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니... 후회할 일은 아니 거였다.


베이스 기타를 안 사줬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까? 상상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방과후형 음악위탁학교를 고2 때 보내면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인지하고도 가려 했고 그래서 보냈다.

난 최선을 다해 반대했었다. 난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할 때도 현실을 가감 없이 얘기한다. 그 현실이 두려워서 진로를 포기한다면 그건 자신의 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의 반대에도 딸은 전공하려고 애를 쓰다가 혼자 현타를 느끼며 공부의 자리로 돌아왔다. 딸은 직접 실패를 경험해야 제대로 깨닫고 배우는 유형이었다. 물론 공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많이 둘러 가는 길은 아니었다.


늘 아이들에게는 대학 진로는 공부역량보다 어떤 범위까지 능력을 발휘해야 행복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 100% 역량을 다 발휘해야 서울대를 갈 수 있다면 거기 가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가진 것 이상으로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할당량을 다 채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유를 둬야 그 삶의 여백에서 행복을 느낄 여지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 둘 다 교회의 축복을 완전히 누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설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힘든 시기에도 교회 친구들로 인해 버틸 힘이 되기도 했다. 상처와 아픔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성장했다.


3. 함께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시간 보내기

난 결혼 전 아들이 있으면 함께 야구 캐치볼도 하고, 탁구도 치고, 농구도 함께 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실은 딸을 원했으며 나의 소원대로 딸 둘을 키우게 되었지만 아들 못지않게 함께 운동할 기회가 많았다. 내 고질적인 어깨통증으로 자주 하지는 못한 아쉬움이 사무치긴 하지만... 그런 기회를 통해 뭔가를 발달시키고 이후에 좋은 준비를 하게 된다는 식의 계산으로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즐겁게 기회 될 때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다.


딸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도 가장 큰 추억 중의 하나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딸들을 대견하게 쳐다보던 기쁨의 순간도 잊을 수 없고, 언덕을 자전거로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서럽게 울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큰딸의 모습도 생생하다. 넘어지는 걸 미리 막아주지 못한 부모로서의 자책감으로 더 가슴 아파했던 그 순간의 기억과 더불어서... 그러나 부모가 모든 아픔과 상처를 막아줄 수 없고, 때론 그 아픔을 통해 더 성장하기를 기도하는 심정일 수밖에 없음을 시간이 더 흘러가면서 더 크게 실감하게 되었고 그 장면은 내게 상징적인 모멘트로 남았다.


그냥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며 되는 거였다. 남들 따라서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다.


4.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수학공부 방법을 익히다

우리 애들은 서울에서 영재수학을 가르치는 고모가 명절 때 한 번씩 수학적 사고를 체험하며 수학의 재미에 입문하도록 도와주었고, 고모가 챙겨준 수학교구에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정기적으로 과외를 받았어도 좋았겠지만, 원리를 중심으로 한 수학공부 방법을 체험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이후의 자기주도 학습에 큰 바탕이 되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교구는, 러시아워(보드게임), 클리코(모형조립블록)였다.


5. 공부 잘하려면, 인생을 배우려면, 평생 공부의 시작인 독서

학교 현장에서, 딸들을 키우면서 공부역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라고 난 늘 강조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다 사주지 않아도 되는 자전거 거리에 대구의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1, 2주 만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20-40권씩 책을 빌려서 아이들이 책이 없어서 못 볼 일이 없도록 공급해 주었다. 아이들이 읽은 책 제목과 페이지를 기록했다가, 한 달에 한 번, 한 페이지 당 1원씩(학교 애들이 너무했다는 피드백으로 3원, 5원까지 올렸다) 계산하여 용돈을 챙겨준 경험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진정한 그게 외적 동기라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아이들을 책으로 이끌려는 조급함을 이기지 못해서 벌린 일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책을 많이 읽게 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문턱을 넘어서니 이젠 아이들이 책을 자기주도적으로 찾아서 읽기도 한다.


6.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들을 찾아주다

우리 집에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은 없애고 책장을 두었다. 물론 아이들과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따로 시간을 정해서 함께 보았다.

TV를 없애서 아이들이 구어체에는 좀 약했다. 그리고 아빠가 대구말 안 쓰는데 아이들이 대구말이 매우 유창한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큰딸은 대학 가서야 서울말을 제대로 배우고 있다.


Wee Sing 시리즈, 다양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등으로 어린 시절 아이들의 영어듣기와 감성을 함께 키워줬고, 아이들은 심심할 때 반복적으로 DVD를 많이 보았다. 얼마 전 유튜브로 Wee Sing시리즈 영상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추억 돋는다고 난리였다.

I SPY, Blues Clues 등 영어로 된 컴퓨터 게임을 아빠랑 같이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리틀팍스라는 플래시 동화로 지속적으로 영어듣기를 하도록 해줘서 따로 영어듣기 공부를 안 했어도 시험에 충분히 대비가 되었다.


시험 대비 외에 일반적인 실용영어 갖추지 못하게 한 건 아쉽지만,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영어와 다른 영상매체를 제한된 시간에 접할 수 있었다.


7. 사소한 일상에서 큰 기쁨을 찾다

아이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과는 차원이 다르게 엄마, 아빠를 많이 감동시켰다.

블로그에도 포스팅했던 그 사례 하나...


얼마 전 어버이날이라고 4학년인 둘째 딸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화려한 문체도 시적인 표현도 없었지만요. 거기다 공짜 쿠폰까지 있었습니다. 청소 4회, 설거지 5회, 안마 5회..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쿠폰이었구요. 그리고 봉투 안에 현금이 2천원이 있었습니다. 아빠한테 천원, 엄마한테 천원이었습니다. 정말 저렴한 어버이날을 보낸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모를 감동이 느껴진 건 그 2천원은 그 아이의 두 달치 용돈이었던 겁니다. 4학년이지만 한 달에 천원씩 용돈을 줍니다. 그걸 받아들 때 기뻐 뛰는 아이를 보면서 늘 흐뭇했었거든요.


그런 상황을 생각하니 2천원이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인데도 제게는 가장 값비싼 가격으로 느껴졌습니다.


8. 어릴수록 엄격하게, 갈수록 선택 존중하기

휴대폰은 되도록 늦게 해주었고, 스마트폰은 더 늦게 해주었다,

초등학교 때는 오히려 노는 시간을 통제하고 휴대폰을 대신할 만한 아이패드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혼자서 심심한 시간이 많아야 책이라도 읽을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매일 반드시 해야 할 최소한의 분량을 정해주고 한 번씩 점검해 주었다.


노는 시간 제한이나 기본적인 생활습관 등에는 좀 엄격하려 했으나 사실 제대로 관리되지는 않았다. 노는 시간 쿠폰제를 활용해서 할 일을 많이 하면 쿠폰을 발행해 주고 몰아서 노는 것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이벤트로 그치기도 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거의 공부 안 하고 방황하려는 선택까지도 존중해 주어야 했다.


아이들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런 얘기는 한다. 엄마, 아빠가 노는 시간 제한하고 아이패드 시간 제한해서 몰래 놀러 가고, 몰래 스릴 있게 아이패드 하면서 더 꿀잼이었다고...


그러니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규율과 훈련은 아이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지키고 절제하는 힘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융통성을 발휘하며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아이에게 추가 휴식시간은 달콤한 줄 모르는 거니까...


9. 급 마무리

솔직히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아픔과 고통까지도 행복이긴 했다. 그걸 터득한 지금은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고 있기는 하다. 큰딸은 너무 자기 원하는 걸 너무도 잘 알아서 피어싱도 했다.(피어싱할 때 부모의 가슴도 같이 뚫린다는 건 딸은 잘 모를 거다ㅠㅠ) 한 때 실용댄스 전공을 고민했던 둘째 딸은 고2인 지금도 몬스타 엑스 덕질하면서 포카를 사고파는 일에도 열심이다.


부모의 관점으로 낭비 같은 일이나 부질없는 일들도 아이들이 겪어봐야 제대로 자기들이 깨닫는다. 영영 깨닫지 못하면? 그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인생이다.


어린 시절에는 윤리의식을 의도적으로 심어줘야 하고 삶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절제와 생활습관 형성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사춘기를 지날 때는 아이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며 ,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부모의 잔소리로 아이들이 변화되지도 않는다. 관계만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것은 허용하면서도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명확하게 해주는 deal 같은 걸 했다.


어른의 가치관이나 강요로 아이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설레는지를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 학원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생각할 여력도 기회도 없다. 때로는 헛짓을 하고 시간낭비 같은 일을 해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있는 아이들은 그걸 찾아가고 있는 거다. 어른에게 예의를 다하는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부모에게 대들거나 반항하는 아이들은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자아를 찾아가는 중인 거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감정쓰레기통의 역할을 맡게 되지만 그게 부모의 숙명이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집이 행복하다는 이유 중 하나는 판단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틀린 선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황하고 헤매는 선택조차 존중한다. 부모의 역할은 최대한 느슨해진 테두리를 설정하면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로 제한하려고 애쓴다.


아이들에게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 아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대화로 해결하도록 애쓴다. 물론 대화의 단절을 겪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도록 서로 노력한다.


부모의 조언이 효과 있는 건 아이가 먼저 도움을 청할 때뿐이다. 부모의 이런 고급진 도움을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고 자꾸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해지면 지는 거다. 조급함을 내비치고 판단하면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난 딸이 고등학교 시절 연애를 시작할 때 (이미 시작된 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아이들을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 수는 없으니) 반대하기보다 지지해줬다. 카페에서 데이트하는 걸 처음 들킨 날 난 카드를 주며 맛있는 거 주문하라고 해주었고, 이후 스케줄을 잡아서 남자친구의 학습상담도 해주었다. 그 이후로 딸은 아빠라는 연애코치(?)를 두게 되었고 아빠는 딸의 연애 스토리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평생 패스를 얻었다.


부모 자식 관계도 밀당이 필요하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채워 주려 하는 것은 스토커의 행보와 닮은 점이 있다. 밥을 안 먹으려 하거든 때로는 배고프도록 내버려 두어야 혼자서라도 챙겨 먹는다.

드라마에서도 상대방이 옆에 있을 때 모르다가 갑자기 사라져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스토리는 사랑 완성의 공식과 같다.

부모는 더 어려운 미션을 감당한다. 분명 당장이라도 해줄 수 있는데 안 해주고 기다리는 것...

난 영어도 가르쳐줄 수 있고, 입시 및 학습코칭도 언제든 가능하지만 아이가 필요할 때만 이야기 들어 준 후에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원할 때 하는 건 잔소리가 아니다. 원하지 않을 때 쏟는 것을 잔소리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다. 부모라도 일방적인 강요 안 된다. 갑과 을인 관계는 없는 거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녀도 없다.


나는 지각하는 딸들을 상상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게 그만 현실이 되었다. 학교에서 지각하는 학생들 지도하는 교사가 딸 하나 제대로 지도를 못하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오래전 고등학교에 있을 때 어느 날 아침 흥분된 목소리의 학모님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하도 지각을 자주 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어서 아직 학교 안 보냈다고 하셨다. 난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 어머님. 이해합니다.” 어머님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놀라시는 눈치였다.

그러고 늦게 온 학생은 이미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야단도 치지 않았고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멋쩍어 하는 아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만 건넸다. 그 아이는 그 이후로 단 한 번의 지각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인사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어머님은 달라진 아이의 태도와 전화 통화할 때 그 말 한마디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훗날 학교를 일부러 찾아오셔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셨다.


이런 미담을 지각대장인 큰딸에게 이야기하니까, 딸은 그렇게 이해가 가능한 게 모두 자기 덕분이라고 반응을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각으로 벌점이 쌓여가는 딸을 향한 나의 무력감은 마음 비움으로 나타났다. 그저 학교에서 벌점차감 봉사를 하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으면서 스스로 느끼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그러다 우연히 두 딸의 모교인 중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어서 강연 도중에 학부모였음을 커밍아웃하고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행복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전해드리며 울컥했다. 선생님들께서 괜찮다고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결론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이다. 행복할만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런 외적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그냥 행복하니까 괜찮은 거다. 그리고 남들의 행복 조건도 행복의 분량도 비교하지 않는 거다.


우리의 결론으로 아이를 몰아가지 않는 것... 그건 오랜 기다림과 내공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과정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꽃이 피는 순간만을 위해 과정을 참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순간부터 매 순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독립하지만 알고 보면 부모도 아이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독립하며 미래로 나아가려는 아이들과 독립을 두려워하면서 과거에 머물고 싶은 부모 사이에 갈등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아이들은 미래로 나아간다. 독립은 필연이다. 혹 독립을 막으면 둘 다 심각하게 병든다.


그러니 좋은 관계의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다. 힘들지만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옛 기억만 남겨둔 채로... 그래서 나도 지금 성장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감격스럽고 감사하지만 예전의 아이들의 모습과 그때 아이들에게 뭐든 해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마무리가 강연 모드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글로 강요하며 마치는 모순결론ㅠㅠ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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