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과잉보호 부모(Feat. 사교육)

by 청블리쌤


안 하려고 무척 애쓰지 않는 한 과잉보호는 부모의 본능적인 발현입니다.

한 번은 수능 마친 딸이 교회 친구들과 렌터카로 여행을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운전하냐고 물으니 이번에 면허를 따게 될 친구라고 대답하길래 제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운전면허 따자마자 너희들끼리 장거리 운전을 하여 살아 돌아올 확률이 80%라고 본다. 꽤 높은 확률이지. 그 정도 확률로 대학 원서 쓰는 건 꽤 안정권이다. 그런데 넌 생존확률 80%에 베팅하겠니? 90%라면? 아빠는 95%라도 안 보낸다.


과잉보호에 관해서라면 딸 바보인 저는 누구보다 더 심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과잉보호 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안 그랬어도 될 뻔했다는 후회감입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오늘까지 안전하게 지내왔는지도 모르지만 후회 목록이 끝도 없습니다.


그러던 중 '나쁜 교육(조너선 하이트 외)'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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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에서 1981년 여섯 살 소년이 낯선 사람에게 납치당하여 살해당한 이후 전국적으로 과도할 정도로 아동 과보호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FBI에 따르면 실종되는 아이 중 자신이 어디 가려는지 잘못 일러줬거나, 엉뚱한 방향을 잡아 길을 헤맸거나, 혹은 친부모나 양부모의 집을 제 발로 뛰쳐나온 사례가 거의 90%이며, 실종아동 중 무사히 부모 품으로 돌아온 비율이 99.8%이라는 사실도 함께 언급합니다.


저자는 또 과잉양육에 대해 이런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2015년 플로리다주에서 부모가 늦게 귀가했다가 아동방치라는 죄목으로 체포를 당하였고, 열한 살 난 소년과 네 살 동생은 위탁 보호 시설에서 한 달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열한 살 난 아이가 부모님이 아직 귀가하지 않아서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한 시간 반 정도 밖에서 농구를 하며 놀았기 때문이며 그것을 이웃 주민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절차상 이뤄진 일이라고 합니다.


또 영국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눈(snow)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교칙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눈을 만졌다가 자칫 아이들이 눈싸움을 할 수가 있고, 눈덩이 속에 있을 수 있는 돌멩이가 다른 학생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안전주의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과잉보호 속에서 함께 모여서 놀 수 있는 기회와 모험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정상적인 사회성 발달과 건강한 신체 단련 기회까지도 박탈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처럼 상위학교 진학을 위해 점점 놀이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덧붙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아이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당연히 원하지 않습니다. 위험이나 실패를 겪는 것은 진정한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안전주의 문화에서는 굳이 생각해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쁜 교육이라는 책에서는 또 이런 예를 들면서 논리를 전개합니다.(조선일보 김태훈 기자 요약)

1990년대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어린이 비율은 1000명 중 4명이었다. 학교 급식에서 땅콩을 제외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 학부모들도 선한 마음으로 동의했다. 많은 학교가 식단에서 땅콩을 퇴출시켰다. 10년 뒤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어린이 비율을 다시 조사했더니 1000명당 14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을 땅콩의 위험에서 지켜줬더니 오히려 알레르기에 더 취약해졌다. 그 이유를 알려주는 연구 결과가 2015년 발표됐다. 어린이를 두 집단으로 나눠 실험했더니 땅콩을 먹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 17%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땅콩을 먹은 아이들의 알레르기 반응은 3%에 불과했다. 알레르기 저항력을 키워주려면 위험을 제거할 게 아니라 위험에 노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저자 하이트는 땅콩의 역설이 정신의 저항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 젊은 세대가 호소하는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은 그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큰 위험에 방치됐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보호를 받아 유약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과보호는 교육에도 나쁜 영향을 끼침으로써 미국을 덜 너그러운 마음과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회로 퇴보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니체가 한 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 세대는 weaker로 stronger를 대신하여 아예 어렵고 힘든 과정을 생략하면서 아이들을 과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교회에서 집에 오는 10분 정도의 거리(그것도 거의 도심 한가운데)를 제가 자전거로 두 딸을 앞뒤로 태워서 귀가 시키는 일을 했었던 것이 부모로서 자랑스럽지 않고 지금은 수치스럽습니다.

그때보다 나이가 훌쩍 더 들어버린 딸들은 늦은 귀가나 친구들끼리의 여행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집과 비교해서 너무 심하다고 하면서 그런 부모의 과잉보호에 이제는 솔직함과 적극적인 의사 표현으로 반항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과잉보호고, 편집증적인 반응이며, 과도한 안전주의인지 정답이 없고 아이들마다, 상황마다 매번 다르니 부모는 늘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점점 더 틈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겠지요.




추가 의견 : 과잉보호 및 안전주의 문화와 사교육의 연관성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부모들의 과잉보호와 안전주의 문화의 반영일 수 있습니다. 사교육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경쟁에서 한참 뒤처질까 봐 겁이 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의식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해주는 건 아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반항의 빌미가 됩니다. 부모의 간섭이 계속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너무 의존적이 되거나 아예 반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부모의 기대를 따르기를 바라는 목사와 교사의 아이들은 그런 극단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기대감만 은근히 보이는 경우에도 아이들은 큰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전교 1등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 이후 저의 공부는 매 순간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겨를 없이 늘 결과를 보장해야 하는 부담감과 싸우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전교 1등은 잘해야 본전이어서 정말 애쓰고 노력한 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도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기대감이 압박감으로 다가옵니다.

중학교 전교 1등 시절에는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전체 수석입학에 대한 기대감이 저를 압박했습니다.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전교 1등 시절에는 서울대 진학에 대한 학교와 지역사회와 교회 공동체,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얼마 전 그 당시 일기를 보고 새삼 그때의 고통이 떠오르며 깜짝 놀랐습니다. 일기장에 쓴 글은 거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런 아이들을 특히 대구 수성구 학교에 근무할 때 많이 만났으며, 그런 개인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전교 최상위권 학생들이 제게 심리적으로 많이 기대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들의 능력과 관계없이 절대로 그런 강요나 기대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씁니다. 기대감을 거두고 압박을 하지 않을수록 아이가 공부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의 부담은 대개 학생들의 헌신을 요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성구 학교에서 영어 중간고사를 망친 후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사교육에 들인 돈이 얼만데ㅠㅠ”

큰돈을 들이고 뭔가를 해주는 것 자체는 분명 호의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늘 성과에 대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학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학원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의 무한 헌신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대평가 체제의 시스템에서는 늘 남의 속도를 견제하기 되어 있어서 사교육 시장은 학생들의 뿌리를 내리면서 이후에 잘 할 수 있는 기본기를 쌓아주는 것을 목표로 할 여유가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감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학교에서 저는 학생들이 그런 굴레를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조용히 설득합니다. 가장 필요한 기본기를 강조하고 각자 자신의 출발점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초라해 보이는 발걸음을 내딛자고...


영어의 경우 수준에 관계없이 제가 제일 먼저 내리는 처방은 제 블로그에도 탑재한 1단계 영어필수어휘 1300개입니다. 기본기를 살피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해 온 학생들은 이 단어를 훑어보면서 기본단어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동안 쌓였던 영어의 내공으로 빠르게 기본기의 구멍을 메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반 전교 1등 학생에게는 서울대 의대까지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어떤 의대라도 가게 되어 있으니 최종 발걸음이 머무는 의대에 진학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을 뿐, 더 잘 해야 하고 더 욕심내야 한다는 격려나 기대를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의도로라도 던지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부담감과 압박감이 되는지를 이미 학창시절에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필요할 때는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을 청할 때만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은 나중에 제게 편지로 막연하게 의대가 가능할까 두려워했었는데 의대를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이 좀 더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게 하고 싶은 욕심을 표현하는 건 아이들이 자발적인 자신의 의욕을 발휘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어른들에겐 조급함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금 좀 더 애쓰지 않거나 해서 지금의 걱정과 불안이 현실이 되면 안 된다는 강박과 편집증까지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걱정한 일이 현실이 되지 않게 알려주는 것이 영원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인 아들을 두고 더 노인인 부모가 차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예를 드는 어른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포유류보다 더 오랜 시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영향력은 의도적으로 줄어야 하고 나중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영향력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정이 있어서 훈계도 하고 조언을 하는 건 팩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 자식 관계의 건강함을 보장하는 더 큰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말과 행동을 다 받아들여야만 그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받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더 아프고 힘들 수 있다는 것은 주는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일방성입니다.


더 해주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것... 그게 더 힘든 부모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저는 큰딸을 서울로 보내게 되면서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딸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까지는 제가 입시컨설팅, 학습코칭, 사사로운 생활의 도움, 연애 상담, 인생 상담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을 가까이에서 이끌어 주는 역할을 다 해왔지만... 이제는 서툴러도 딸 혼자서 좌충우돌 겪어내야 합니다. 자신이 부딪혀보고 안되면 제게 연락을 하겠지만요.


제가 곁에서 도우면 더 빠르고 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옆에 오래 머물수록 딸 혼자 터득하는 기회는 계속 더 늦어지니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완전 딸바보인 제 기질상 딸이 가까이에 있으면 딸이 도움을 청하기 전에 제가 먼저 다 챙겨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립을 강요당하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새벽에 잠에서 깨기도 합니다. 서울로 논술 치러 가자고 설득했던 것을 혼자서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더 큰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놓아주어야 하겠지요.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기도하며 거리를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요. 한 번씩 넘어지려 할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주고 싶은 마음을 참아낼수록 딸은 보다 확실하게 일어나는 법, 그리고 궁극적으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까지도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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