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학원 하나 보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아이의 평생 자산 같은 투자였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딸은 고맙게도 아빠의 뜻을 잘 따라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남들 다 있는 차도 없이 살고 있다.
딸들은 어린 시절 아빠가 학교에 자전거를 태워 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자전거 앞 뒤로 둘을 태우고 학교와 교회를 오갔다.
큰 딸은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아빠를 차도남이라고 발표까지 했다. "차가운 도시 남자"가 아니라, "차 없는 도시 남자"
면허도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한 번씩 차를 살까 물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차멀미할 차를 뭐하러 사냐고. 그냥 이대로 좋다고 아이들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기차 여행을 주로 다녔고... 1인 1차 시대를 구현하기도 했다. 소위 자전차를 네 명의 가족이 타고 교회를 가고, 근교를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남들 다 해주는 걸 아이들에게 못해준 게 많았다.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사주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가서 신기하게 풍선을 쳐다보면 우리 부부는 저건 그냥 보기만 하는 거라고 아이들의 시선을 외면했던 기억이 지금은 가슴 아프다.
용돈도 원하는 것들도 남들처럼 풍족하게 채워주지 못했고(혹은 않았고) 다른 가족처럼 차로만 갈 수 있는 여행지로 드라이브해 준 추억도 없어 아쉬움이 크다.
아이들 사교육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친한 선생님들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심지어 학교 애들도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연휴기간 동안 대학교 2학년인 큰딸이 집에 다녀갔다. 큰 딸이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우리집은 사교육을 안 하고 차도 없고 그래서 여유 있게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듣고 마음이 찡했다. 여유 있게 챙겨준 것도 없는데 여유 있게 누리며 살았다니... 차가 없다는 원망도, 남들 다 하는 사교육을 안 시켰다는 원망도 아니었다. 나름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여유가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딸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보니 이번 상위 12%는 받지 못한 재난지원금을 실제로 못받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SKY와 의대 입학생들의 상위계층 비율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는 성대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딸이 실제 대학에서 생활을 해보니 돈을 쓰는데 있어서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딸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사교육도 받지 않고, 그렇게 죽어라고 공부한 것 같아 보이지 않은 딸을 두고 "논술의 폐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던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 때 딸에게 20세가 될 때까지는 부모가 법적 책임자인데다가 경제적으로도 부양할 의무가 있으니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고 그렇게 멋대로 하려거든 20세가 되어서 네가 돈을 벌면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라고 말하곤 했다. 딸의 질풍노도의 질주는 자주 있어서 그 말을 자주 하게 되니 딸 아이에게는 그 말이 반복적으로 완전히 강조하는 말처럼 가슴에 새겨진 듯했다. 정말 20세가 되어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시킬까봐 두려웠고, 그래서 수능 끝나고 학교선생님들께 과외할 자리 없냐고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일단 등록금과 생활비를 어느 정도 챙겨주고 있으니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본인이 알바를 하면서 기본적인 생활비 외에는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려고 애쓰고 있기는 하다.
딸은 그 전에도 우리 집이 아파트도 아니고 차도 없고 남들 하는 것 다하고 살지는 않지만 행복하다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넉넉한 형편이었다면 아이에게 고급(?) 사교육도 넉넉하게 시키고, 가족 드라이브 여행이라는 추억도 만들어주고, 원하는 것들도 다 챙겨주고, 명품 같은 자신감을 물질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런 형편이 아니어서 내겐 고민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 것은 아닐까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딸이 있는 그 곳에서는 그런 기준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움츠려들고 주눅들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품위유지비가 많이 들 수도 있는 곳인데, 딸은 중고등학교 때처럼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편한 옷을 입고 다니며, 중요한 데이트 때는 룸메이트의 드레스까지 빌려 입는 뻔뻔함(?)도 지녔다. 그러면서도 아빠나 엄마를 원망한 적이 없다.
엄마의 요리 솜씨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급식이 무조건 맛있다고 했다.
부모 마음으로는 더 좋은 거를 다 챙겨주고 싶지만,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다 주지 못한 것과 결핍이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가진 것에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처음에 결혼을 반대하셨다. (지금은 물론 우리 가족의 행복에 대해 너무 기뻐하신다) 부부교사를 해야 경제적으로 안정감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난 사랑을 고집했다. 경제적인 넉넉함은 내 삶의 지향점이 아니었다. 비교적 넉넉하게 살지 못한 집안이었음에도... 나의 가치는 눈으로 보이지 않고 실용적이어 보이지 않는 사랑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다른 말로 “낭만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는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면이 있기는 했다. 그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는 거였다. 난 여전히 가슴으로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너무 행복하다. 아내와 딸들과 더불어 늘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건 조건이 있는 행복이 아니었다. 남들과의 비교로 얻는 행복도 아니었다.
진심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수 있다는 축복과 감사는 오히려 많이 갖지 못한 상황에서 더 흘러 넘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엄마가 있다는 안정감과 축복을 누렸다. 아내도 그 역할에 늘 행복해했다. 그건 경제적인 여유가 덜 하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아버지가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게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축복이며 돈으로 살 수 없었던 행복임을 지금은 감사함으로 인정하고 있다.
큰 딸은 학업역량을 더 발휘할 수도 있었음에도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다면 효과여부를 떠나서 아빠인 내게 학원을 보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욕심이 더 있어서 특히 학원을 친구사귀기 위해서라도 보내달라는 말을 했었지만, 이내 아빠의 말에 설득되어 여전히 즐거운 공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극빈층은 아니어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된다. 가진 것에 자족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상황은 일반화될 수 없고, 나의 이런 말이 누군가에는 사치스러운 여유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남들보다 더 가지려 하는 욕심과 외적인 조건에 의한 행복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냐로 결정되지 않고 때로는 결핍과 부족함에서 더 간절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부족함을 느껴야 더 큰 풍요로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이 떠오른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은, 부모로서 실물로 물려주는 재산보다 더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겐 감사가 넘친다.
연약함과 부족함이 오히려 축복이 되도록 해주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 가족이 마음에 품은 복음을 바탕으로 한 신앙이기도 하다. 난 그 신앙 안에서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며 더 큰 행복을 발견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다.
<사교육에 대한 딸의 반응 부연>
딸은 수학학원에서 강사로 알바를 하면서도, 거기서 진심을 다하면서도, 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진정한 배움이 보장된, 즐거운 공부방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동료 여교사들의 경우는 거의 맞벌이기 때문에 학원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을 하기 어렵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원을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집에서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교육없이 해보려고 해도 자기 아이를 두고 모험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하는 경우도 있다. 남들 다 하는 거 우리 애만 시키지 않았을 때 훗날 있을지도 모를 후회는 상상만 해도 가슴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과도한 욕심과 조급함이 더 중요한 이유이긴 하다. 그리고 사교육없이 할 수 있는 대안도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공교육은 크게 각성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는 딸들이 문자적 의미 그대로 사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실은 현직 중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아빠의 학습코칭과 컨설팅이 있었고 초반 영어의 기본기를 완성하는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완벽한 'No 사교육 Zone'은 아니라는 아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있다. 우리도 내 확신으로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도달점에 이르기 전에는 한 번씩 흔들리며 갈등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의 조급함은 학원을 다니는 다른 애들에 비해 너무 여유로워보이는 아이에게 압박감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사교육의 효과를 전면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학생 본인이 을이 아닌 갑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자기주도성을 해치는 사교육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실패를 겪어가면서 스스로 발견한 부족함으로 자기주도적으로 학원이나 인강을 선택하게 하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인 거다.
그리고 출발점 인식과 바른 방향제시가 자기주도성 발휘의 동력이 되고, 그 동력이 지속되도록 아이들의 습관형성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딸의 학교 생활은 모범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원을 안 갔던 가장 큰 혜택은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자기만의 속도로 결론을 정하지 않고 매 순간 성장을 느껴가면서 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특히 시험성적)와 눈에 띄는 다른 아이들의 행보에 비해 늘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서 확신을 갖게 피드백을 주는 학습코칭이 필요하기는 했다. 딸이 필요로 할 땐 늘 내가 그 곁에 있어 주었다.
그래서 딸은 고3 기간동안에도 행복했다.
지금 딸은 완전 자기주도적으로 대학공부를 하고 있다. 그 힘들다는 공대 공부를 알바, 연애, 동아리 활동을 해가면서 행복하고 여유 있게 생활하며 독립을 이뤄가고 있다.
그래서 딸은 사교육에 대한 후회도 미련도 없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