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교육 없이도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by 청블리쌤

앞의 글에 이어지는 신앙고백이며, 어떻게 사교육 없이 성균관대 공대를 논술로 합격했는지에 대해 부연하는 이야기입니다. 글이 너무 길고 너무 개인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계획이 옳을 줄 알았냐고 말씀하시듯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딸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후의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감과 소망이 넘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문대 진학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건 아닙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남들보다 앞서가려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길을 찾아가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50%만 사용하고 싶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딸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자명할 때도 사실에 근거한 격려만 했을 뿐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딸도 수능 직전에 밤에 자기 전 2시간씩 웹툰을 꾸준히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결국 그 이상의 시간을 학교에서 공부 안 했을 거라는 말도 당당하게 하였습니다.

딸은 늘 저의 기대를 밑돌았는데 심지어 그러면서도 당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성균관대 논술시험장에 가는 길에 서울대학교 병원을 지나는데 택시 안에서 제가 딸에게 재수해서 저기 가보는 게 어떠냐고, 그 정도라면 너에게 베팅(투자) 할 수 있겠다고 하니까 딸은 당당하게 그 돈 다 날릴 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차피 가도 한 달 만에 뛰쳐나올 거니까...


그런 딸을 강요하듯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것은 딸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사교육을 시작조차 하지 않아서 적어도 학습 면에서는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안 사주거나, 귀가 시간을 제한하는 것 등의 제약은 심하긴 했지만요...


그런데 그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에 대한 갈등은 있었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학습코칭을 하고 진로 및 인생 상담을 하는 교사로서 저는 늘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의 위험을 조심스럽게 경고해주곤 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물론 인강이나 학원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강조한 것은 수준에 맞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급하지 않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학교 수업에 모든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하곤 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여, 각자의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 대학 서열과 학과 서열에 맞추어 이미 결정되고 강요된 목표를 어떻게든 이뤄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교육열로 둔갑하면서 학생들 각자의 준비정도와 능력에 관계없이 사교육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 지금의 현 세태입니다. 공교육은 프로정신을 잃어가고 단지 내신과 학생부종합전형에 필요한 스토리 공장이 되어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앞서려면 선행뿐 아니라 여러 감당할 수 없는 내용조차도 미리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의식과 필요성이 만들어낸 사교육이 또 다른 학교가 되어버린 학생들은 갈수록 독서할 시간과 놀이 시간을 박탈당합니다.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너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안 된다. 학교에서 계속 뒤처질 것이니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라고 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세태에 대해 “자녀들을 학원 보내는 것은 불신앙이다”라는 민감한 발언을 하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용기 그 이상이 필요한 결단인 것입니다.


딸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왜 학원을 보내지 않느냐 하는 말이었습니다. 심지어 공교육에 계신 수학선생님들도 혼자서는 안 되니 늦어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학원을 꼭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친구에게 제 딸의 수학 학습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결론은 학원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과 수학은 혼자서는 절대 안 될 거라고 하면서...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늘 주변에서 듣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프는 학부모들의 사적인 모임에 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갈 때마다 학원의 필요성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고 좋은 학원을 서로 추천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에서(물론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정말 좋은 학원에 대한 정보는 절대 알려주지 않기도 합니다. 서로 경쟁자이기 때문입니다) 학원 안 보내면 나중에 그 원망과 좌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추궁까지 당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흔들리는 마음으로 어김없이 제게 와서 학원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할 때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차츰 아내도 제 뜻을 따라주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건 아니었습니다. 과정 중에는 사교육에서 보여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딸은 여러 분야에서 사춘기 찬스를 수시로 사용하며 “이래도 아빠, 엄마는 여전히 날 사랑할 수 있겠어요?” 라고 시험이나 하듯이 우리의 인내심을 테스트하였습니다. 수능 끝난 지금은 딸의 머리 색깔이 파격적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학원을 다니면 뭔가를 더 배우게 되는 유익도 있지만 적어도 학원을 다니면서, 숙제를 하면서 하기 싫어도 공부하는 절제력을 훈련할 수가 있는데 딸은 그런 절제력을 자연스럽게 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 학원 스케줄에 따라 가능한 요일만 하루씩 놀지만, 제 딸은 학원을 하나도 안 가니 다양한 스케줄의 아이들과 매일 놀 수도 있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심지어 성적이 곤두박질치기도 하며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더 이상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물론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면서, 방향을 제시하면서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도록 분위기는 조성해 두고 기다리긴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치와는 좀 달랐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방향을 제시하며 한참을 기다려줍니다.


심리학에서도 인지행동치료를 언급할 때도 한 번에 완전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한 번에 혹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저 가랑비에 옷 젖듯 저항감 없는 영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변화에 이르기까지 인내와 기다림은 숙명입니다.


보통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감정을 앞세워 지도하거나, 혹은 다양한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사교육은 한 번 시작하면 중독성이 있어서 끊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그 과정에서 공부가 복음의 메시지와 닮은 면이 있다는 걸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즉, 공부 안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나 정죄로 좌절감과 우월감을 가진 학생들을 구분 짓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적 등으로 판단 받지 않고 이미 학생 됨의 자격을 얻은 상태에서 능력껏 재미있고 기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그래서 결국 은혜의 분량까지만 자라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율법이 아닌 은혜의 분량대로 자라나는 것을 엄청난 인내로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듭니다.


중학교 때 영어성적이 50점이 나와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낄 때 딸은 중 3 때부터 영어를 기본기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기보다 스스로 넘어지고 부족함을 처절하게 인식하는 시점이 제대로 공부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 그저 기다린 것입니다.


복음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죄인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부족함에 대한 인식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들어갈 자리가 비워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교육은 없었지만 딸은 아빠 찬스가 있긴 했습니다. 수시로 학습 컨설팅을 해주고 영어 과목은 제가 기본기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공부한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이 주도적으로 학습하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의 목표는 단기간에 저를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고 실제로 단기간에 기본기를 쌓도록 도와준 이후로는 딸이 혼자서 알아서 다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저의 역할은 그러합니다.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을 목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합니다.


도서관에서 매주 끊임없이 책을 빌려다 주며 학원 가는 시간에 독서를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수학은 선행이 아닌 속도가 느리고 성적이 당장 안 나와도 원리를 따져가면서 이해하면서 차근히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격려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모의고사 성적, 아니 다른 성적에 대해서도 꾸중을 한 적은 없습니다. 특히 모의고사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학원을 안 다니면서 얻게 된 것은 독서시간, 조급해하지 않고 원리를 따져가며 천천히 능력에 맞게 익혀갈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수준을 강요하지 않음으로 인해 진정으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얻어 재미있게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독서의 효과는 오랜 시간을 거쳐 서서히 드러나는데, 말을 빨리 알아듣고 이해력이 높아지면서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더 효율적으로 빨리 학습을 끝내는 모든 과목의 공부를 잘하는 기본 내공을 보장합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에게 자주 이런 사실을 주지시켜주었고 제 바람대로 딸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히 행복을 찾아내었습니다.



학교수업이 이해가 되고 혼자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면 아빤 그걸로 족하다.

그러고도 더 욕심을 내는 것은 너의 선택이다.



딸이 어쩌다 1등 했을 때도 어차피 내려올 자리이니 힘겹게 자리를 지키려 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하던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는 학원을 가지 않으니 매일 야간자습과 심야자습을 11시까지 하고 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자율학습 시간을 확보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조를 많이 합니다. 학원을 가거나 굳이 학교에서 공부할 마음이 없다면 억지로 붙잡지는 않지만 처음에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앉아 있는 시간이 곧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딸은 학원 안 가며 저축한 시간과 첼로 사려고 저축해 둔 용돈 전부를 1학년 2학기부터 1년 반 동안 연애하는데 쓰기도 했습니다. 베이스기타 전공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방학에 실용음악학원도 두 달 다니고 방과후 위탁교육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다니면서 2학년 과정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냥 선택을 존중해주었습니다.


너무 행복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여 학원이나 치열한 공부에 지쳐있는 친구들에게는 너무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딸은 수능을 망친 후에도 그런 고등학교 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저도 동의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한 다음 날 성균관대 공학계열 논술전형으로 추가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성균관대를 합격하기 위해 논술시험대비 학원을 가거나 인강을 듣지 않았고 신기한 경험일 것 같다면서 그냥 시험을 쳤습니다.


수능도 수능학원을 다니지 않고, 논술도 논술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았던 겁니다. 자신이 학원을 다녀서 준비가 되었다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분량까지만 공부했을 뿐인데 자신의 성취수준도 확인하지 않았었지만 이미 그 수준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보통 결론을 정해 놓고 그 결과에 맞춰 훈련시키는 사교육의 방식과는 완전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혹 성균관대가 아니었더라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원래부터 성균관대를 목표로 그것만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계획대로 경북대를 진학해서 자신의 능력을 탐색하고 자신이 감당할 분량대로 해나가다가 정말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 더 높은 목표를 찾아가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목표나 도달점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론을 정해놓고 억지로 맞춰가는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 순간이 생동감 있고, 의미 있고,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반 학생들은 딸을 이해하며 친하게 잘 지내는데 옆반의 친하지 않은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제 딸에 대한 편견을 갖기도 하였고 열심히 안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온다며 세상의 정의라는 개념을 의심하게 하는 사례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모두 하려고 할 때 혼자 안 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선택입니다. 딸도 초등학교 때는 학원에 가야 친구를 더 잘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여 학원 얘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제 뜻을 잘 따라주었고 그 이후 고3 때는 혹시나 해서 인터넷 강의 패스를 끊어 주었지만 결국은 한 번 구경만 하고는 하던 대로 학교 수업만 들으며 혼자 공부하였습니다.


주위의 무언의 압박에도 그 과정을 잘 따라 준 딸이 고맙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본기, 독서, 무분별한 선행이 아닌 각자 능력과 속도에 적합한 학습의 중요성 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학교수업에 충실할 것을 외치기도 합니다. 공교육 살리기 프로젝트 같은 거창한 캠페인은 아니었지만 제가 믿는 소신을 딸을 통해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성균관대가 아니어도 여전히 기뻤겠지만, 성균관대여서 사람들이 더 주목하고 그 길을 더 인정해줄 것 같아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명분과 증거를 더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성균관대가 목표가 아니며 각자의 상황과 여건이 다릅니다. 그래서 각자의 능력과 속도를 생각하는 개별화된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고 그 기다림의 끝에서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학습능력과 여건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각 아이들에게 맞는 자신들만의 목표와 속도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의대를 갈 필요는 없는 것이며 혹 의대를 목표했다가 이루지 못했을 때에도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의대를 목표했다가 이루지 못했더라도 정말 간절한 제자들은 재수, 삼수, 사수해서라도 결국에는 가기도 했습니다.


진정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 간접 체험을 통해 알도록 기다려주고,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사소한 성취를 통해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는 신앙의 눈으로 이 상황을 감격과 감사로 맞고 있습니다.


이미 모의고사에서 정시로 성균관대를 갈 성적이 나오고 있었고, 논술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논술원서를 낸 것은 부디 원래 나오던 대로 성적이 나와서 부담스러운 논술응시를 안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수능 망치고 좌절해 있던 딸을 서울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일으켜 세워 경험상으로라도 시험을 보고 오자고 말했을 때, 저도 딸도 이러한 결과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하던 과정을 통해 이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정시에서 딸이 성균관대에 합격을 했다면 마음이 낮아질 기회 없이 자신의 능력만 과시하며 성균관대로 의기양양하게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능응시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경북대도 못 가겠다는 낮아짐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험 중간에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끝까지 버티고 나와 수능최저등급을 맞추었던 것도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경북대 가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다하고 있던 그때 성균관대 합격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순간 딸은 자신의 힘과 능력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경험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길이 주어져도 되는지 큰 선물을 받은 느낌으로 감격해하였습니다.


예전에 저도 제가 다니던 비평준화 지역 사립고등학교에서 서연고 대학 합격 시 4년간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고등학교 입학했다가 결국 서울대 떨어지면서 장학금을 놓치고 이사를 가서 연고지가 된 경북대에서 4년 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서울대 합격해서 장학금을 받았다면 저의 인생은 교만함으로 인해 재앙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실패를 경험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받게 된 장학금은 부족한 제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딸도 결국에 좋은 선물을 주시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가시는 손길이 느껴져서 더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성적이 그저 그렇게 나왔을 경우 저의 욕심으로 딸을 집 근처 경북대에 잡아두고 싶은 강요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균관대를 안 가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라는 확신이 들 경우에는 보내주려고 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고민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시에 단 하나 응시한 성균관대 논술이 합격하고 나니 정시의 기회 자체가 없어져 경북대는 이미 선택지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다른 의미의 수시납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딸을 집에서 계속 품고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것처럼 원래부터 딸이 제 소유도 아니고 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하시는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물론 학원을 안 다니는 것이 주님을 의지한다는 신앙의 증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딸이 세상이 시키는 모든 가치관을 다 따르지 않겠다는 훈련의 과정을 믿음 안에서 잘 수료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찬양이 딸의 삶의 주제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주제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요게벳의 노래'를 처음 들을 때 느꼈던 감정도 또다시 살아납니다. 갓난아기를 갈대상자에 떠내려 보낼 때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딸들의 아기였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을 했었다면...


지금은 마땅히 더 큰 세상으로 독립시켜 떠나보내야 할 딸에게 마땅히 해줘야 할 갈대상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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