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딸에게 일어난 그 모든 사소한 일들의 결과

by 청블리쌤

너무 간절히 바라는 것보다 때론 기대감을 내려놓는 편안함이 의외의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겠지만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데다가 간절함의 깊이와 편안함은 공존하기 힘드니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평소 정시로 성균관대 이상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 나오기도 했던 딸이 수능을 망치고 울면서 나오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답지만 미뤄 쓰지 않으면 경북대는 갈 거라는 평소 예측대로 계속 집에서 딸과 함께 지낼 수 있겠다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딸에겐 미안하지만 수능 성적이 충분히 잘 나와서 성균관대나 한양대 공대 이상이 아니면 서울로 대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저의 공약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내심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3학년 6월 모의고사부터 국어, 수학을 98%를 찍으면서 기대감을 한참 올렸고 그때부터 딸은 성균관대 공대 이상 가겠다는 욕심을 내기 시작하며 다소 부담감을 느끼면서 취미처럼 재미있게 공부하던 이전보다는 덜 즐겁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심야자습까지 마치고 와서 음악을 들으면서 놀고 있는 딸에게 저는 “네가 그냥 경북대 가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라고 농담처럼 말을 던지면서도 내심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놓아줄 수 없는 집착처럼 말이지요.


수능 후 경북대도 못 갈 거라고 좌절하는 딸에게 표정관리하면서 경북대 기계공학과는 합격권이라고 안심시켰지만, 그건 딸을 서울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안심하고 있던 저만의 주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수능 3일 후에 치러지는 성균관대 논술에 응시해 보자고 딸을 설득했습니다. 합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혹시 재수를 하게 된다면 이번처럼 수능 망칠 상황을 대비해서 보험으로 논술전형 원서를 내고 혹 논술로 진학을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일이 없더라도 고3 때 남들처럼 그렇게 죽으라고 공부하지는 않았던 딸이 다른 젊은이들의 치열하고 간절하게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의 단면이라도 영향을 받고 배워 오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그게 삶에 대한 예의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시로는 뭔가 그전에 그려오던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수능당일, 성균관대 논술 기출문제를 풀어보자고 하니 딸은 "오늘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 상경을 하게 되었으니 논술 기출문제도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 했던 거죠. 남들은 문제 경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인강이나 학원 등에서 특강을 들으면서 예상문제까지도 풀어보며 실전을 대비했을 텐데... 일말의 희망이 있다면 논술시험 자체를 위한 준비도가 아니라 수능 최저등급을 맞췄다는 것과(국수과 2합 4등급 이내, 과탐 반영 시 두 과목 평균등급, 영어 2등급 이내, 한국사 4등급 이내) 평상시 수학과 과학을 원리를 따져가면서 확실히 이해하며 학습했다는 사실뿐이었으니 기대감이 클리 없었습니다.


그러니 논술의 의미보다 수능 후 서울에 있는 삼촌과 고모를 만나며 서울을 둘러보는 위로와 힐링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떠나기 직전에 삼촌의 도움으로 숙소 예약을 하려는데 고급 호텔과 가성비 좋다는 게스트하우스 중에 시험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습니다. 서울임이 믿기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숙소는 편안한 잠을 보장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시험 입실 시간에 맞춰 나름 일찍 나와서 성균관대 근처에서 아침을 사 먹는다는 계획은 완전히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택시가 성균관대 근처도 아닌 곳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의 우회로 선택과 친절한 안내로(시험장까지는 교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험장에 등산하듯 한참을 걸어 올라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택시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렸습니다. 4천 원 정도의 거스름돈은 받지 않고 우리보다 오히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주신 기사님께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덕분에 시험 잘 치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직 학교가 많이 먼 데도 차에서 내려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수험생들을 그냥 지켜보면서도 별로 조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여유 있게 숙소에서 나섰지만 아침을 먹을 시간도 없이 시험장에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딸은 밤새 잠을 설쳐서 만나게 된 졸음을 떨쳐내려 애쓰며 배에서 사정없이 울려대는 꼬르륵 소리와 싸워가며 시간 내 최선을 다하고는 수능 때와는 다르게 환하게 웃으면서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수능장에서 나올 때 딸에게서 기대했던 바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촌의 가이드를 받으면서 대학로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서울 여러 곳을 관광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울 놀러 간 김에 논술시험장에도 잠깐 다녀온 느낌일 정도였습니다.


모든 답을 다 썼고 어렵지는 않았다는 딸의 말만 듣고는 수리, 과학 논술의 특성상 정답보다는 풀이 과정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여전히 합격에 대한 확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딸은 학교에서 수학문제를 신박하게 푸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학원을 전혀 가지 않고 혼자서 원리를 따져가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처럼 선행에 목매지 않았고(그래도 진도는 따라가야 한다는 저의 조언에 따라 학기 시작 전 방학에는 최선을 다해 대략적인 예습을 하긴 했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는 데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정형화되거나 표준화된 방법이 뭔지 모르고 약속된 수식을 나열하기보다 소신껏 문제를 풀고 그림을 그리면서 푸니까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신기해하곤 했습니다.


그런 딸의 특이점을 대학에서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웃으면서 나온 딸은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나서 옆의 수험생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던지면서도 결과는 이미 잊었다는 듯 유쾌하기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울면서 나오는 수험생도 있었고, 어떤 어머니는 딸에게 “선생님이 이야기해준 데서 나왔니?”라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나가는 곳곳에 사진 기자분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 가리워진 길을 그저 사람들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인산인해의 뉴스의 한 장면을 체험했다는데도 의미를 두었습니다.


참고로 성균관대 논술 경쟁률은 공학계열의 경우 62 대 1이었습니다. 물론 응시경쟁률은 그 절반 정도로 예상되고 수능최저등급까지 통과한 실질경쟁률은 그보다 훨씬 낮긴 해도 엄청난 인파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격하게 아껴주었던 삼촌의 가이드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고모와도 만나서 수능 후의 충분한 보상을 받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습니다.


그다음 주 한양대 논술은 공부를 좀 해야 데려온다는 말 때문인지 공부하기 싫어서 안 하겠다고 딸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양대 논술은 경쟁률이 72 대 1이며 수능 최저등급까지 없어서 엄청난 인원이 응시를 하여 지하철역에서는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떠다닌다는 소문을 결국은 확인을 못하였습니다.


정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내놓은 경북대논술(AAT)은 정시로도 갈 성적은 되기 때문에 아예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 수시합격자 발표를 확인했는데 당연히 불합격이었으며 예비번호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균관대는 예비번호를 넉넉하게 주는 편이 아니어서 예비번호 없어도 합격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혹시나 무조건 불합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대학의 합격 고지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전화 연락을 놓쳤을 경우는 불합격이 아닌 미등록으로 처리되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수시합격을 한 것라서 정시의 기회가 박탈됩니다. 결국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해에 대학진학을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어서 마감일인 19일 목요일까지는 전화 잘 받으라고 당부를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 딸은 제게 수능을 망쳤어도 자신은 행복했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만으로도 저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인생 여정에서 도달점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과정 자체의 행복이 그 자체로 삶과 일상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부에만 몰입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생활에 후회는 없다고 한 그날 밤 딸이 엄청 흥분해서 제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는데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추가합격메시지였습니다. 딸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니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고3 담임할 때 추가발표 마감 1시간 전에 합격통보를 받고 안내받는 계좌번호에 대해 보이스 피싱 아니냐고 제게 물었던 제자와, 연세대 합격한 걸 제가 먼저 확인하게 되어 전화로 알려주는데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합격 조회 때 함께 나오는 We are the champion 노래를 함께 들려주니 이성을 잃고 좋아하던 또 다른 제자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딸의 합격조회영상에도 We are the champion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예전에 수능 끝난 딸에게 위로하듯 포스팅했던 글이 민망해졌습니다. 마치 경북대를 가는 것에 대한 합리화처럼 들려서 말이지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건 아빠만의 욕심이었던 겁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날 딸이지만 적어도 집에서 다닐 수도 있는 4년은 더 함께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딸을 독립시킬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납니다.


어떤 쌤은 조카가 서울에서 자취방에 변기가 막히니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누굴 부를 수가 없어서 부모님이 밤에 대구에서 서울로 출장 서비스를 하고 왔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주변에서 축하와 놀라움의 인사가 쇄도하는 가운데... 너무 치열한 경쟁을 걱정하는 딸에게 교회 선배가 이런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걱정 마라. 성균관대 공대를 가면 쟤가 어떻게 여기 와 있지 하고 의아해할 친구들이 반 정도는 될 거니까.. 그런데 너도 아마 그 절반에 포함될 거다ㅋㅋ



그래도 상위권 대학일수록 논술은 운이 좋아서 합격할 수 없으니 딸의 그동안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노력을 덜했다는 것이고, 남들처럼 학원을 가지 않았다는 것일 뿐 딸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듣고 보니 딸은 논술시험장 가자마자 배도 고프고, 졸음도 쏟아지고, 어차피 논술시험에 대한 기대감 없이 온 거라서 그냥 시험장을 나올까 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정시파이터를 선언하고 나서 중간, 기말고사에 대해 등급을 성취하지는 못해도 시험에 대한 예의는 다하라는 아빠의 말을 실천하던 그 습관으로 그저 시험에 대한 예의만 다했다고 합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의 중요성을 기대도하지 않던 성취로 실감하게 된 것이지요.


논술 마치고 딸에게는 "어찌 보면 대학이 널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남다른 너의 학습과정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대학을 테스트하는 거니 결과 여부에 관계없이 당당해라"라고 말해주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논술도 수능처럼 기본기부터 원리를 따져가며 천천히 실력을 늘려가는 과정입니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예상문제를 풀어보는 것은 기본기를 갖추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어갈 단계인 것이지요.

토익시험의 고득점을 위해서 토익 문제를 풀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것은 최종 단계일 뿐이며, 그전에 오히려 수능 대비 공부를 철저히 하면 토익 문제를 따로 많이 풀지 않아도 고득점을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 수능의 고득점을 위해서 수능 기출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급해하지 않고 기본기부터 서서히 쌓아올리면 단기간의 수능 기출문제 풀이만으로도 고득점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같은 원리입니다. 토익이나 영어 수능이나 출발점은 동일합니다.


기본기부터 서서히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며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암기하다시피 힘겹게 공부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데다가 단계별 진행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과정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제 딸은 설레는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경북대에 갈 줄 알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했던 딸은, 성균관대에서는 2학년 올라갈 때 세부전공을 성적을 반영하여 결정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갑자기 물리2 책과 공업수학 책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딸은 이제 대학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진학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실천하려는 준비가 된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요.


이제부터 새로이 설정될 아빠의 역할을 저도 치열하게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을 하는 딸에 짐을 실어주고 대구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혼자 눈물을 쏟았다는 선배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는 제게도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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