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전교에서 휴대폰이 없는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한 지 한참 후에야 휴대폰을 해주었는데 그 흔한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이었습니다. 그 대신 집에 있는 아이패드로 SNS를 하도록 해주었지요. 물론 매일 시간을 제한해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무늬만 스마트폰인 더 약오르는 공신폰이라는 걸 해주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생겼지만 와이파이는 물론 데이터를 전혀 이용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통화, 문자, 음악 듣기만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고3이 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약정으로 인해 동생이 쓰다 버린 공기계 폴더폰을 수능 때까지 썼습니다.
딸은 가슴속에 한 가지 약속을 품고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수능 끝나자마자 그때 나오는 폰 중에 제일 좋은 폰을 사주기로 한 약속을... 엄마는 잊고 있었지만 딸은 그 약속을 의지하면서 수능까지 견뎌내었습니다.
공부하려는 상황에 스마트폰과 맞짱을 뜰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학교 현장에서 지켜봐온 저의 지금 생각하니 불편하고도 과도한 통제였습니다.
둘째 딸은 자신의 능력으로 친구가 버리려는 액정 깨진 아이폰 공기계를 구해다가 유심칩을 끼워서 쓰고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어서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만(밤새도록 폰만 붙들 것 같아서 집에서 와이파이 비번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깨진 액정 사이로 SNS를 하며 지냈죠.
이 일을 겪으면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둘째 딸의 액정을 수리해주었고 통화와 문자를 무제한 요금제로 바꿔주었습니다. 새 폰이 생긴 것처럼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짠해졌습니다.
자식의 통제력과 대처능력은 부모가 그 상황을 막아주고 통제하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알아서 하도록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은 건 부모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저는 극단적인 통제 후에 반대 상황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저와 반대 상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적절한 선을 찾는 고민은 부모의 몫입니다. 잘 풀리지 않는 고난도 킬러 같은 문제이지요.
드디어 수능 후 큰딸은 갤** 노트 10 최신 기종을 드디어 득템했습니다. 카톡 등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받으며 반응할 수 있음에 감격해했습니다. 딸에 대한 미안함이 마구 차올랐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의 기회를 박탈했던 것이어서 말이지요.
어제는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이었습니다. 늦게 퇴근하고 가보니 딸이 자랑할 게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수능 성적표를 볼 수 있나 했는데... 성적표는 학교에 두고 왔고...
성적표 대신 딸은 스마트폰의 펜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주에 교회 수련회로 다녀온 부산 밤바다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라면서...
처음에 저는 그림을 보고 자동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기능이 폰에 포함되어 있거나 어디서 그림을 가져온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한붓한붓 자신이 그린 거라고... 물론 여러 가지 효과를 넣고 되돌리기 등의 편리한 기능의 덕을 보긴 했다면서...
위의 그림이 딸의 작품입니다.
너무 비싼 폰을 사줘서 쓰지도 않을 기능이 사장될 거라는 속 좁은 생각이 한 방에 날아갔습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참고 견뎌준 딸이 대견했습니다. 남동생도 좀 비싸게 폰을 사긴 했지만 그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딸은 또 알바를 구해보겠다고 애쓰고 있지만 앱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자리는 없고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으면서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만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용돈을 많이 줘야겠습니다. 중3인 동생 수학 과외를 시급 만 원에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본인의 간절함과는 별개로 정작 당사자인 동생은 공부할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서 남들은 꿀알바라고 하는 그 일을 거의 시작도 못하고 있는 중이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