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빨리 정할수록 좋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일단 학생들이 그 목표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동기가 생긴다는 것, 그리고 학생부종합에 대비해서 일관된 진로 스토리를 구성해서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그런데 공부에 대한 동기로서 진로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건 공부하기 싫은 합리화일 수 있습니다. 물론 뚜렷한 진로에 대한 의식이 동기유발을 시키는 효과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공부는 동기나 열정만으로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한 습관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 확실한 생각이 들 때까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학년일수록 선택에 필요한 충분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혹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현실에 바탕을 했다기보다 막연한 느낌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 기반한 관련 정보를 충분히 학생들이 얻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서두름으로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생각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고등학교 1학년인 친구 딸은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라며 힘들어하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도 아직 진로도 못 정하고 뭐 하냐고 비판하듯 말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조급해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고민 아니 미래를 향한 설렘을 멈추지 않을 것을 격려해야 합니다.
저는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 중 두 가지는 직업과 배우자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순종적이었던 저는 두 가지 모두 부모님의 반대에도 제가 스스로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도 저도 행복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전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저 자신이 스스로 한 선택이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직업과 배우자 선택은 정답이 없으며 성공사례를 일반화해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선택한 당사자가 지는 것이니 그래서 얻게 되는 후회도 행복도 오롯이 자신의 것이어야 합니다. 강요된 선택은 빼앗긴 행복이나, 원망이 되기 쉽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당당히 맞서서 해결할 힘을 낼 수 있지만, 강요된 선택에 대한 원망은 그냥 주저앉게 만듭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평소에도 사소한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자신이 대체 뭘 원하는지를 알아가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무튼 그 두 가지 선택은 공통적인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대개 그럴 거라 기대하지는 않지요. 가치관과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더 발전해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향도 확실하게 파악해가야 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사귀는 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만남입니다. 혹 최악의 상대를 만난다면 자신의 확실한 취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그 상처도 아예 의미 없지는 않습니다. 더 많이 경험할수록 자신의 취향이 아닌 유형을 확실하게 제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적 경험이 가장 좋지만, 학교 공부와 독서를 통한 간접적 경험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분야를 서서히 찾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에 첫눈에 반했다고 해서 그 진로를 무조건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운 좋게도 그 선택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그런 상황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주자주 꿈과 진로가 바뀝니다. 현실을 알게 되어서도 바뀌기도 하지만 그게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성관계가 아니라도 친구들과 친해졌다가 연을 끊다가 그러는 일이 잦습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을 파악해 가는 중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강연과 저서에서 like, want에 대해서 많이 언급합니다.
우리는 want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는데 익숙합니다. 뭔가 간절히 원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정말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남들을 따라 합니다.
직업에 대해 우리는 지위와 보수와 안정성과 균형(저녁시간이 있는 삶), 노후 대비 등을 want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간절한 like가 아닌 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더 슬픈 건 자신이 뭘 like 하는지 아예 모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like 하고 love 하는 사람보다, 특히 연애가 아닌 결혼에 관해서라면 외모, 경제적 안정성, 능력, 성격 등을 want 합니다. 그런 조건에 맞춰서만 결혼이 이뤄지지 않지만 일단 그 우선순위 범위 내에서 like를 뒤에 찾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요.
학생들의 진로교육은 어떤 직종이 더 유망하니까 그쪽을 선택하라고 유도하는 안내가 아닙니다. 취업률로만 따지면 모두 의대나 공대를 진학해야 합니다. 유리한 조건을 두고 진로를 지도한다면(물론 없어질 직업을 피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정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보다 모두가 원하는 일을 놓고 무한 경쟁에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좋아서 평생 가슴 설레는 일이라면 높은 경쟁률도 넘어서도록 격려할 수 있지만, 어렵게 그 자리에 갔을 때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지요.
학생부종합전형을 담당하는 모 대학 입학사정관도 학창 시절에 자신이 입학사정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의외로 대학에서도 일관된 진로에 대한 스토리를 높게 평가하지만,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기반이 된 진로 변경과 그 진정성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는 분위기라고 하니, 내 진로에 대해 진심이라면 처음 정한 진로여야 한다는 짐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 제자 중 하나는 고3이 되어서 1, 2학년 진로로 확정해서 준비했던 의대를 보장할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성적을 떠나서 그 학생에게 의대는 썩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학생이 먼저 제게 고민을 얘기해 줘서 함께 의논하고 준비하였습니다. 추천서에는 성적이 계속 잘 나왔더라면 의심 없이 의대를 그냥 진학했겠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본인이 정말 원했던 감춰져있던 진로를 꺼내들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써주었습니다. 결국 그 제자는 연세대 건축과에 합격을 하고, 한 학기 마치고 제게 찾아와서 감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의대 못 간 게 너무 다행이었어요. 고3처럼 정말 바쁘게 지내지만 정말 행복한 길을 가고 있어요. 정말 여기 오길 잘했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잘 갖지 못합니다. 이미 어린 나이부터 일정한 기준 이상이기를 요구받으며 학원을 돌면서 취향을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축적되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가슴 설레는 일을 모두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가 정리>
아이들의 진로선택과정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르는 작업과 흡사하다. 이왕이면 품질 좋고 비싼 거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 취향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싼 옷을 입고도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고 행복하면 명품옷을 걸치고 어색한 것보다 더 낫다. 소위 요즘말로 개취존(개인취향존중), 싫존주의(싫어하는 것도 존중해달라는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전에는 취업률위주로 아이들을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취업률도 어차피 이후 급변하는 시대에 재편성 될 수 있는 거다.
이왕이면 융합시대에 이과를 베이스로 하는 것이 유리하긴 하다. 그러나 그것도 개취존이 필요하다.
이과였던 제자 한 명은 국어, 영어 1등급, 수학 5등급을 맞아, 좋은 내신으로 중앙대 공대를 진학했다. 수능최저등급에서 수학을 제외하고 반영하면 되었기 때문에 일단 합격은 했으나 학과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자퇴를 했다. 그리고는 재수해서 수학의 부담이 없는 수의예과를 진학했다.
이과 중에서도 물리와 화학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공대를 가서 애를 먹는다. 당장 수능등급을 위해서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선택한 거라면, 물리와 화학이 그렇게 싫지 않은 경우라면 대학 가서 따라갈 수는 있지만, 전혀 물리와 화학에 관심도 따라갈 역량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같은 이과라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시행착오는 이를수록 좋다.
옷을 느낌 빡 오는 걸로 바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걸쳐 봐야 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과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정말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힘이 된다.
학생들에게 난 이왕이면 이과베이스에서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수능선택을 떠나서 물리나 화학에 대한 관심 여부부터 따져보라고 말한다. 이과라도 공대가 아닌 자연과학 쪽이라면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그래서 실패를 겪지 않고서는 자신의 확실한 길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빨리 진로를 못 정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핀잔이 아니라 더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보라는 격려다.
<진로를 정하기 전 준비할 것들>
공부하는 능력은 신문을 재미있게 읽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신문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과학을 아우르는 살아가는 삶의 교육을 이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난 신문을 보면 뒤에서부터 봤다. TV편성표, 만화, 스포츠 그러면 정치니 경제니 하는 것은 내게 아무 의미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에는 TV뉴스가 제일 재미없었다. 무슨 말인지 맥락도 파악이 안 되었지만 어린 시절 나의 삶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문 전체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읽을 때의 독해력이 계속 향상된다는 부수적인 효과 외에도 이미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기본지식은 신문의 내용까지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본지식으로 신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기존의 지식체계를 더 확장시킨다는 의미다.
내 제자 중 아침에 신문을 본다고 자주 지각하는 학생이 있었다. 성균관대를 진학했다. 그 학업능력과 신문읽기는 우연이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교육은 이런 사례를 얘기하면 당장 아이들에게 신문부터 읽히려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원리를 모르고 금리나, 환율, 물가와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아이들이 경제분야를 단기간에 이해할 수도 흥미를 느낄 리도 없다.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교육 성과의 결과 단계에 해당되는 것이니 신문읽는다는 결과를 시작단계부터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의 교과교육이 의미가 있다. 기본원리와 기본지식을 차츰 갖추게 되면 더 궁금하게 생기게 마련이고 주변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어라도 모든 분야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며 자신의 어휘체계와 기본지식체계가 갖춰진 만큼만 보이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신문을 보기 때문에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기본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신문을 볼 수 있게 된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신문을 보는 실력을 갖추었다면 그 다음에는 지식은 눈덩이처럼 가속이 붙으며 불어난다. 비슷한 또래라 하더라도 그 격차는 더 심화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평생배움이 강조되는 새로운 급변하는 시대에서는 더 그렇다.
진로에 대해 한 우물만 파라는 식의 사회분위기에 대해서는 고민이 좀 필요하다. 진로를 일찍부터 정하는 것이 나쁠 건 없지만 그게 확정적 의미를 가졌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의 개성이 아닌 취업과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 자리로 그 결말을 정해 놓고 아이를 끼워맞추는 건 위험하다. 운 좋게 자신의 적성과 일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은 힘겨운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다양한 지식과 체험이 부족하여 자신의 진로를 확신을 가지고 빠르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해왔다면 비판하고 나무라면 안 된다. 다른 애들은 이미 진로를 정해서 맞춤독서와 맞춤스토리를 생성하며 학생부종합전형 입시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질 수는 있겠지만.
설사 학생의 진로가 자신의 적성에 맞더라도 그 진로에 맞는 분야의 독서만 해야 하는가?
고등학교 때 배운 물리만 가지고 공대에 막연하게 진학했다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충분히 겪어보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진학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관심사를 더 확장하며 독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내신과 수능과 비교과가 다 중요한 고등학교 생활에서는 그럴 여유를 갖기 힘든 현실이긴 하지만 진로에대한 노력은 낭비가 아니니 조금씩 애쓸 필요는 있다.
진로를 확정하는 개념보다는 골고루 이것저것 겪어 봐야 한다. 제자 중에서 성대 공학계열진학해서 2학년 때 성적으로 전공진입이 결정되는데, 원했던 화학공학과가 커트라인이 높을 것 같아서 신소재로 전공진입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는 거였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자신의 적성이었다. 이렇게 평소에 가지고 있던 확신도 현실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정확하게 조기에 결정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긴 하다.
둘째 딸은 내신이 어긋나서 어차피 수시로 원하는 대학을 가기가 어려워 정시파이터가 되었기도 했지만 아직 진로를 확정하지 못해서 학생부종합을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덕분에 독서도 다양한 분야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이 가슴 설레는 일을 스스로 찾기를 기대한다. 학생부종합 대열에서 이탈하니까 독서할 여유가 생기긴 했다. 내신은 예의만 다하고 길게 보면서 공부하면 되니까... 사실 독서가 국어성적에 결국에는 직결되는데 조급함으로 다들 당장 점수 나올 것만 공부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균형잡힌 가치관과 시각을 형성할 기회를 놓치고 있고, 문해력을 통한 평생공부의 능력을 갖추기가 더 어려워진다.
중요한 것은 배경지식을 갖추어가며, 외부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비판적사고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중고등학교의 교과 기본지식을 갖추는 것이다. 어차피 써먹지도 못할 거를 배우고 있다고 비판하지 말자. 아이들이 배우는 건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도구가 될 수 있으니...
어차피 미래의 세계는 하나의 진로만 고집할 수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어떤 분야이거나 새로운 전공을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 가능한 배움의 기본지식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맞다. 학교 교육에 충실하면서, 이왕이면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학습을 하면서, 무엇보다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키우고, 다양한 관심을 확장하는 그런 자세만이 전공을 정하고 나서도 오픈마인드로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빨리 정답을 못 찾았다는 불안감이나 조급함을 갖지 않도록, 오히려 일찍 정해지지 않아서 더 설레고 행복한 자기탐구를 지속하도록 해줘야 한다. 심지어 전공을 정하고 나서도 말 그대로 융합적 관심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식의 실용성을 따지면서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공부를 최선을 다해서 해 두는 거다.
기타를 치려면 바로 연주를 시작할 것 아니라 코드잡기와 주법연습부터 해야 한다. 타브악보보는 법까지 익히고 몸이 반응하도록 연습하면 어떤 곡이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다. 제발 어설프게 연주부터 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모두의 발달속도와 역량을 무시하고 결론을 정해 놓고 똑같은 기준에 맞추라고 사교육으로만 아이들을 내몰지 않았으면... 공교육에서도 아이들이 제대로 학습하고, 학습하는 방법도 학습하여 평생배움의 역량을 갖추도록 도와주었으면...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건 남들을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함이며 그게 곧 인성교육이기도 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