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교사들에게 전하는 진한 라떼 열일곱 잔

by 청블리쌤


아직 교단에 설 기회가 많이 남으신 후배 교사님들께 부러움을 눌러 담아 전해드리는 선배 교사의 조언이지만,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꼰대 교사의 후회와 아쉬움을 담은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경어체를 쓰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려요.


1. 교사의 페르소나

교사는 친밀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학생에게 다가가는 교감이 절실하지만 적어도 시작할 때는 연기가 필요하다. 가면 쓴 나의 모습, 제2의 인격으로 학생지도 방향을 설정한다.


자신감과 확신.. 때론 뻔뻔할 정도의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진심 어린 노력과 프로의 실력이 뒷받침 되는 노력이 전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교사만 믿고 따라오면 될 거라는 확신으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감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겸손과 겸양은 적어도 교사가 처음 학생들 만날 때는 미덕이 아닐 수 있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은 노력을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시작하지 않으면서 학생들로부터 서서히 그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대구 수성구 대구여고에서는 학생들이 단 10분만 수업을 듣고도 그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끝난다고 한다. 학생들은 대개 첫 수업 시간부터 교사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에 임하며 준비하는 학생들처럼 교사들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 수업 시간을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언젠가 거만하기 그지없어 보여 싫어하던 인터넷 인강 1타 강사를 직접 만나보고는 그 겸손함에 놀랐다. 그에게 수업의 현장은 철저한 준비로 무장한 연기였다. 아니 그 철저한 준비로 우러나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2. 과감하게 버리며 가지치기

원리와 원칙을 고집하며 스스로와 학생들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소신과 원칙이 중요하지만 때론 자신의 자존심과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는지를 수시로 돌아보아야 한다.


Apple의 성공은 “simple”과 인문학적 스토리에서 비롯되었다. 있던 것도 없애버리는 애플의 단순함이, 하나라도 더 추가해서 다 갖추려 했던 블랙베리폰의 아성을 넘어서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2020년 블랙베리폰은 결국 생산 및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교사의 열정이 때론 자기만족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의 용량을 넘어서 더하는 것은 과부하로 인한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림으로써 더 중요한 걸 강조할 수 있게 되고 가장 중요한 핵심을 끝까지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줄 수도 있다. 교실 내에서 가르칠 수 있는 용량의 한계를 인정해야 교실 밖 학생들의 확장 학습 활동도 유도할 수 있다.


현직 교사의 책은 잘 안 팔린다고 한다.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백의 미가 학생들을 숨 쉬게 하고 여백 외의 것들에 더 집중하게 한다. 교사가 다 해주려고 하는 것은 강박에 가깝다. 나의 첫 책은 그래서 망했다.


피카소 말 그림은 6살짜리 그림처럼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피카소 그림의 전문성에서 나온 단순함의 미학을 6살의 그림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고1 때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깨끗한 교과서를 보여주며 교재연구 하나도 안 해도 가르칠 수 있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곤 했다. 절대 교사로서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일종의 본보기가 되었다. 6살 그림과 피카소 그림은 분명 다른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학생 입장에서 끊임없이 지식을 재구성하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이 가르치는 준비다. 피카소는 더 복잡하게 그릴 수 있음에도 단순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교사도 아이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비경제적인 거룩한 시간 낭비로 단순화된 예술적 수업을 준비한다.




3. 개별화와 인격화

교사는 대개 그룹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개별학습을 시키는 것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무리나 군중으로서 학생이 아닌 개별적인 학생으로 인식한다면 보통의 수업환경에서도 기대 이상의 교감이 이뤄질 수 있다.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이 인격화와 개별화의 첫 출발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은 머리가 좋아서이거나 안면인식에 대한 타고난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니 자신은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인원에 따라 난 보통 한두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끊임없이 사진 대장을 들고 반복하면서 걸리는 시간이다. 한 번도 쉽게 외운 적은 없었다.


부디 못 한다고 핑계 대지 말자.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이름이 외워지기를 바란다면 그 교사의 목록에는 공부를 잘하거나 특이하거나 사고 치는 학생들만 기록될 뿐이다. 모든 학생이 번호나 “야!”라는 단순화된 호칭이 아닌 개별 이름이 불릴 가치가 있는 귀하고 특별한 학생들이다. 즉 이름을 외우는 동작은 모든 학생이 하나도 예외 없이 자신에게 특별한 학생이라는 다짐이며 그런 교육 이상의 실천이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진정한 의미는 이름을 다 외워보면 안다. 이름을 다 알게 되는 순간부터 강의식 수업을 하더라도 학생 개개인이 보이기 시작하며 평상시 행동을 통해 그 학생의 성격과 기질도 파악할 수 있다. 성적관리를 할 때도 의미 없는 글자와 숫자의 나열로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기쁨과 좌절과 아픔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게 아이들의 결핍을 파악하는 것만큼 교사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보통은 외면하는 그 필요를 채워주는 활동을 하며 아이들이 감동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아니 그런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관찰하게 된다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다음 해에 또 전교생 사진 대장을 들고, 눈부신 기술의 발전(자꾸 자신의 얼굴을 기술력으로 조작하려는)과 노화의 장벽을 넘어서서 이름 외우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개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상담은 늘 일반적인 얘기와 결론으로만 채워진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교사의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다. 깊은 관심과 개별화된 접근이다.



4. 학생들은 나의 눈과 귀를 통해서도 세상을 본다.

사명감을 가지고 교사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때론 그 과정이 설렌다. 내가 보고 들은 이 좋은 것들을 어떻게 학생들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책과 좋은 영상들은 읽고 보는 것은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학생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니 교사는 삶 자체가 교재연구이며 학생상담 준비이다.


특히 심리학 같은 인문학 도서와 고전 작품 등을 통해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넓힌 것만큼 아이들의 다양한 심리와 기질을 더 잘 볼 수 있다. 교육경력이 쌓인다고 자동으로 학생들의 이해가 깊어지는 건 아니다. 그런 노력과 시각으로 학생들을 바라본 것만 유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의 가장 큰 덕목은 “공감능력”이다. 그 공감의 시작도 평소 나의 시각을 넓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늘 겸손하자. 우리의 살아온 인생이 학생보다 훨씬 길다고 해서 그들의 처지를 다 이해하고, 그들 삶의 정답을 가진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5. 학생들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다.

유물론적 관점과 창조론적 관점은 그 진실 여부를 떠나서도 학생들을 각각 상품이나 작품으로 보는 차이를 가져온다. 유물론적 관점은 무한 경쟁,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각자의 경쟁력으로 결국 상품이 되는 성과와 결과만을 강조한다. 창조론적 관점은 학생들의 현재 위치와 모습에 상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하고 특별한 존재, 즉 작품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그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소망 가운데 기다려줄 수 있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때로는 잘못을 저질러도 그들은 여전히 귀한 존재다. 결과나 성취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성장하는 과정에 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런 관점으로 존중받는 학생들은 자신의 분량만큼 그들만의 속도로 성장을 이루며 스스로 행복해한다.


증권사 친구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몇 억이 좌우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대단한 영향력임에는 틀림없지만 교사의 영향력에 비할 수는 없다. 교사의 말 한마디는 아이들의 영혼을 살리기도 하며, 그들의 삶의 경로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음을 감격해하며 순간순간 그 귀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학생들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그 시기에 그들 삶에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최전방에서 그들을 만나는 축복을 가진 것은 교사의 특권이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 저주하며 기억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행복한 추억 속에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그 행복한 추억의 시작은 학생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6. 넘어지게 놔두기. 답답해도 기다리기

교사와 부모에게 <마인드셋>이라는 심리학, 교육학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입시의 과정에서조차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결과로서 성공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매 순간 행복하게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기독교에서 율법주의와 복음을 대비시키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종교에서도 기독교의 율법주의처럼 인간의 선행과 노력으로 뭔가를 이뤄낸 성취를 중시한다. 기독교에서도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게 출발점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감격은 자신의 삶도 세상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자신이 애쓰지 않고 더 큰 자격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체험이 자존감을 마구 올려주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에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자격에 관계없이 사랑받기 시작하면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인 노력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립 얀시는 독일어를 할 줄 안다는 자격을 갖춰야 독일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게 되면 완전 자발적으로 그 사랑을 위해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독교 내에서도 율법주의를 경계한다. 종교적 규례를 잘 지키는 것으로 우월성을 강조하고 그 완성도에 따라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기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규례를 잘 지키며 성장한다.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유사하다. 그걸 우린 은혜(grace)라고 한다.


공부방법서는 시중에 넘쳐난다. 그걸 다 지켜야만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자기계발서는 우리를 더 좌절시킨다. 자신은 그렇게 성공한 사람의 방법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이제 이렇게 강력하게 선언해야 한다. 난 그런 방법들을 다 따를 수도 없지만 따르지도 않겠다고... 그건 율법의 무용성을 말하거나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잘못되었다는 선언이다.


사교육도 율법주의 같은 방향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이런 정도의 분량을 끝내야 결과가 보장된다고 한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기쁨과 행복이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모두 다 얻어낼 거라는 보장도 없다.


남들과 비교하여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것을 좌절감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출발점에서 오히려 평안함과 기쁨이 시작된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그 시기를 앞당기려고 남들 하는 것을 따라 할 필요 없이 성장단계에 맞는 자연스러운 기쁨을 누리게 하면 되는 거다.


교사는 그 방법과 방향을 학생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넘어지지 않게 막아주기 보다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의 위치는 출발점일 뿐이며 결국 마지막 걸음이 멈추는 그곳이 성취이자 도달점이 될 것을 격려하면 된다. 멈추지만 않으면 결국 어딘가로 전진하게 되어 있으니 교사는 방향만 잘 코칭하면 되는 거다.


교사는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더라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고, 기본기부터 감당할 수 있는 행복의 분량까지만 전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기꺼이 또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기대하는 역할까지가 우리의 사명이다.


7. 도전에 맞선 자세

지금은 크롬이 대세지만, 크롬 브라우저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거의 모두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쓰고 있었다. 익스플로러가 업무의 표준처럼 여겨지던 그 당시, 그럼에도 크롬이라는 새 브라우저를 굳이 모험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후 압도적인 업무능력과 성취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들은 상황이나 환경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주도했던 부류였다.


교사는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제일 높은 집단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 학생들이다.


변화를 무시하면서도 전혀 불편함 없이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미 학생들과의 가까운 거리를 바라지 않는, 소위 꼰대 교사일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과의 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후배 교사에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 서툴러도 배우려고 하는 교사와 아예 후배 교사를 비서처럼 생각하는 마인드는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삶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이렇게 변화가 강요되는 상황에서도 교사들이 끝까지 변화를 거부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제 유튜버가 되기도 했고, 학생관리하다가 SNS에 중독되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보다 더한 강요된 변화에서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교사들은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Flipped Learning, Blended Learning, 학생들과의 온라인 소통 등에 대해서 코로나가 아니라도 우리는 가르치는 콘텐츠 외에도 플랫폼의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학생들을 위해서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아니라도 교사들은 기본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한다. 엑셀과 한글, 그리고 구글 설문, 구글 클래스룸 등의 업무와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기본에 투자해야 한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기획과 자료 제작에 대한 제약이 사라지게 될 뿐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여 다른 중요한 일에도 집중할 수가 있다.


우리는 늘 도전을 받는 자세가 있어야 변화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매년 매 학기마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학생들 수업평가를 받는다. 무기명으로 수업에 대해 자유롭게 쓰라고 한다. 상처받을 각오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상처가 변화를 보장한다. 매년 실시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의 내용조차 검토하지 않고 눈과 귀를 닫는 교사는 변화의 가능성도 차단한 교사이다.


8. 교사의 가장 강력한 도구 : 경청

상담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물론 그전에 개별화된 관찰과 관심이 전제가 된다. 앞서 언급한 수업평가도 경청의 과정이다. 경청은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골라 듣는 것이 아니다. 때론 감정노동을 해야 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깊이만큼 경청이 가능하겠지만, 경청은 인간에 본능에 반하는 동작이므로 끊임없는 의식적 노력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며 아울러 교사의 가장 강력한 활용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9. 끊임없는 사랑 표현법

1) 교과 지도 : 무료 멘토링 학습코칭 등의 기회를 마련한다. 학습방향과 개별화된 수준에 맞게 시작하도록 시작점을 일러주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꾸준하게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 학습 점검을 해주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교재연구를 충실하게 하여 압축된 수업을 제시하거나 학생들의 다양화된 활동을 유도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와 성장은 교실 밖에서 주로 이뤄진다. 학교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아 학생들이 학원에만 의존하는지도 모른다.


2) 담임 :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우리반만의 활동을 학급특색활동으로 정리하여 학생들을 참여시킨다. 사소한 습관 관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평소의 철저한 기록으로 학생들의 미담사례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필요를 살펴 수시로 상담한다.


3) 생기부 관리 : 교과에서나 담임으로서나 동아리 담당으로나 평소 내실 있는 활동과 기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4) 학습자료 및 수업자료 데이터베이스를 개인블로그 등에서 제시하기 : 학교 홈페이지 활성화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일 수 있으며, 이왕이면 다른 네티즌을 위한 재능기부로서의 보람도 덤으로 느낀다.


5) 프로그램 기획 : 교사는 마케터, 행사 기획자 등의 역할도 겸해야 한다. 늘 학생들의 필요를 살피며 자신의 체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영어 인문학 독해 특강 등을 무료로 하는 등 아무런 제약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기획할 수 있다. 수강료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정이며 돈으로 받는 수당보다 더 큰 기쁨과 에너지를 얻는다.


10. 외적인 활동이나 열심을 증명하려 하지 말 것

교과서 집필, 외부 활동, 출제위원, 수업 발표대회 등 교사로서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우리는 에너지를 모든 곳에 다 쏟을 수 없으니 늘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진정 학생들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거절하기 연습도 중요하다. 외부의 모임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너무 사적인 부탁 등에 확실한 거절이 학생들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을 벌어준다.


영어교과서 집필을 제안 받았을 때 난 큰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명예의 기회는 잃었지만 그보다 귀한 학생들을 얻었고 후회는 없다.


11.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교직은 직장인과 사명자 두 부류로 나뉜다. 즉 보수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경우(실제로는 보수 받는 만큼도 일하지 않는 분노 유발자 교사들이 꽤 있다는 것이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기도 하여 속상하다)와 그저 학생들을 위해 늘 최선의 것을 주며 즐거워하는데 때가 되니 월급도 받는 경우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발굴되고 알려지지 않았을 뿐 후자에 해당하는 훌륭한 교사들이 정말 많다.


훌륭한 교사는 경제논리를 따지지 않는다. 그래야 교사의 헌신이라는 말이 의미와 실체를 부여받는다.


언젠가 교육의 논리를 경제의 논리로 따지면서 교사에 대한 시각을 바꾼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각이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거기다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고 학부모의 민원이 거세지는 시대가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할 수 있겠냐"는 시험대 앞에 교사는 서야 한다.


촌지를 받고 학생들을 감정적으로 대하고 진심을 다하지 않는 교사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때론 좋은 의도로 진심을 다하며 헌신하는 교사의 교육활동이 모두 다 칭찬과 인정으로 돌아오기는커녕 민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학습효과로 많은 교사들이 헌신적인 학생지도를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슬픈 것은 교사의 열정과 헌신을 과도한 간섭이나 개입으로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교사 상처로,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외부 여건으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동료 교사나 관리자 등으로 인해 움츠리고 망설일 수는 없다.


의사가 수술 결과로 민원이나 법적 소송의 가능성이 염려가 되어 환자 치료를 피하지 않는 것처럼 교사도 학생들을 위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학생들이 교사의 열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강요하지 말고 필요와 준비된 마음에 맞게 강약을 조절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명자인 교사라면 학생들에 대한 진심 어린 열정과 헌신을 멈출 수 없다.


사명자 교사들은 거룩한 시간 낭비와 에너지 낭비를 해야 한다. 효율만 따져서는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다 품을 수가 없다. 상담을 하며 감정노동에 따른 감정 낭비도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낭비로 정의하는 그 낭비는 결국 낭비가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12. 교사는 프로여야 하는가?

교과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함은 물론 입시, 인생, 진로, 공부법, 심리, 연애, 상처 관리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되도록 계속 애써야 한다. 앞서 말한 업무를 위한 컴퓨터 및 인터넷 활용능력은 기본이다.


교사는 가정을 중요시하지만 학교 현장에 사적인 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프로의식의 문제다.


13. 먼저 행복하기

행복은 전염된다. 열정만 넘치는 교사는 지쳐버려 결국에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일관성이 결여된 교사의 열정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일과 휴식이 조화가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가족과의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은 제한적이다. 젊은 교사들은 아직 체력이 좋고 뭐든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지만 젊은 시절부터 체력관리와 열정 조절이 필요하다.


한 쪽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역량을 다한다. 자녀가 어릴수록 너무 학교 일에 열정을 보이면서 거리가 생기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후회로 슬퍼할 것이다.


14. 교사도 인간이다.

첫 시작은 연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쁜 사람 스타일이 효과가 좋다. 첫 대면부터 친절하면 그다음엔 반드시 학생들의 짜증과 배신이 따른다. 인간은 은혜에 중독되어 첫 예외를 일반화시키고, 잘해줘도 당연히 여겨 그 이상을 바라게 되어 있다. 3월부터 샌드위치까지 직접 만들어주며 감동을 주었던 담임교사는 4월 이후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조금씩 분배해서 선물을 주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뭐든 당연하게 받아들인 상황에서는 감사가 실종되고 교육적인 의도로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려워지며, 이후 뭘 해줘도 불평불만인 악성 민원인으로서의 학생들을 계속 상대하게 될 수도 있다. 계속 웃어주다가 화를 내면 학생이 짜증을 내지만, 매번 표정이 굳어 있다가 한 번 웃어주면 학생이 감격하는 사례를 늘 본다.


밀당은 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부족하고 서투른 교사의 인간미가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히며 학생들의 용기를 키워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심이 통하지 않으면 열정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15. Personal Branding(교육과정 재구성)

일타강사는 자신만의 커리큘럼이 있다. 매년 자료를 추가하고 보완하며 끊임없이 검증받는다. 공교육 교사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교사가 되면 다른 사람의 수업도 참고하지 않고 자신의 수업도 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방법으로든 다양한 강사와 교사들을 벤치마킹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브랜드로 자기만의 콘텐츠 정리를 이상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가르침의 경력이 뒷받침되면 자연스럽게 가능한 일이 된다. 물론 끊임없는 교재연구와 학생의 필요를 살피는 교육과정 재구성하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내용 구성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16. 훈육과 용납 사이

영어로 discipline이라고 하면 훈육이나 절제를 의미한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육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가리키며, 스스로에 대해서는 절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원하는 걸 다 해주는 건 교육이 아니다. 아이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개훌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 반려견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경우는 대개 보호자가 통제하기를 포기한 경우다. 방치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을 한없이 쏟아붓는 경우를 의미한다. 학생들은 원하는 대로 하기를 바라면서도 은근히 훈육과 절제의 리더를 원한다. 밀당의 긴장감 속에서 학생들은 안정감과 존중을 배운다.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강아지조차 보호자를 개무시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율법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율법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율법과 규율의 의미는 다 지키고 순종해야만 자격을 갖추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절제와 통제를 배우게 한다는 데 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강제적인 규율 적용보다는 사랑과 신뢰와 기다림이다.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것만큼 더 노력을 하는 것처럼 규율이나 훈육을 통해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가지며 인격도 사회성도 다듬어 간다.


교사가 혹 학생들을 너무 사랑해서 꾸중하는 것을 망설인다면 아직 사랑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교사는 인기관리나 자기만족을 위해 학생들을 만나지 않는다.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훈육을 망설이면 안 된다. 그 대신 훈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은 훈육을 안 하니만 못하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학생과 잘못한 행동을 최대한 분리하면서 그 학생의 성장을 기대하며 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한다면 당장 열심을 보이지 않거나 행동의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안타까운 마음과 변함없는 사랑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신뢰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학생들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반화시키는 것도 무조건 피해야 한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만 또 그러냐"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안 좋은 행동을 오히려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그런 훈육은 교사의 감정을 쏟아놓는 분풀이에 불과하다.


앞서 연기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오히려 처음에는 과하게 훈육을 하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차차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상대로 처음 쳐 놓은 울타리보다 좁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엔 충분히 좁혀주었다가 점점 넓혀주면 학생들은 감동하며 더 진심으로 훈육을 따를 수도 있다.


난 보통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선언한다.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 때, 졸 때, 잡담할 때 무조건 뒤에 세워둔다고. 실제로 옆 친구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질문도 못하게 한다. 너만 궁금한 거라면 30명 학생들의 시간을 담보로 너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니 수업 마치고 개별적으로 질문하라고 하며 수업 시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물론 웃음 끼 없이 진행할수록 효과가 크다. 어차피 내 성격상 그 연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에 제시한 규정은 나중에 많이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줘도 아이들이 잘 지킨다. 처음에 잘해주다가 아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가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면 아이들의 마음은 교사로부터 멀리 떠나간다. 처음 여학생반 담임할 때 흔히 하는 실수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면 어찌 보면 전략의 실패일 수도 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 연기를 할 필요 없이 학생들에게 냉정하고 차갑게 굴며 시작한 학년에서 학생들이 이후 그 누구보다 날 더 신뢰하고 따랐던 경험이 있다. 어떤 활발한 학생은 수업 시간에 입도 못 열게 하는 나에 대해 증오심을 불태우다가 완전한 팬처럼 돌변하기도 했다. 물론 궁극적인 인기를 위한 전략은 아니다. 교육적인 전략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 들어주지 않는 절제의 시작은 교사로부터 시작되어 학생들이 스스로 절제를 배우는 데로 나아가게 한다.


17. 결국 교사는 학생이 교사를 필요 없어 하는 그 순간을 위해 일한다. 사랑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더 이상 줄 것 없을 정도로 다 쏟아붓고 점점 잊혀지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자 보람이다. 매일이 설레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과정과 끝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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