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블리쌤 May 09. 2023

설렘과 떨림 그 어딘가(공개수업을 하며)

한 번씩 심장이 가만히 있질 않고 자꾸 나댄다. 그래야 한다. 심장이 가만히 있다는 건 살아 있지 않다는 의미이니까. 그러나 심장이 뛴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 수는 없다. 그걸 당연히 여기면서 의식하지 않아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씩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댈 때가 있다. 그걸 우리는 설렘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 떨림이라고 하고, 긴장이라고도 한다.

아내를 처음 만나 연애할 때 심장이 나대서 새벽에 깨곤 했다. 설렘의 그 감정이 결혼으로 이끌어주었지만, 평생 밤잠 설치는 나대는 심장을 안고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설렘을 넘어선 그 이상의 친밀감으로 사랑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을 앞두고 난 자주 설렜다. 그 설렘이 시험 직전까지 촘촘한 학습을 계속하게 해주었다. 

대학원 석사까지 마치고 더 이상 그런 설렘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교사로서 늘 설레는 순간을 마주한다. 아이들을 새로 만날 때, 수업 들어갈 때... 그러다가 수업이 계속되면 설렘은 이내 익숙함이 된다. 그래서 한 번씩 설렘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설렐수록 수업과 만남을 더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교사, 학부모 강연과 다른 중고등학교 학생 특강을 다니면서 난 그 설렘의 물결에 허우적거리며 떠내려 다녔다. 대부분은 거절할 수도 있었던 것이니,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수락한 이유는 그 설렘의 끝에 행복한 순간들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강의하기 전의 설렘은 때로 날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일단 강의가 시작되면 그저 황홀하고 행복하다.

설렘이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는 역할을 해주니 그 설렘에 대한 불만은 없다.

그 설렘은 살아있음을, 지루할 겨를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심지어 설렘과 비슷한 증상인 떨림과 긴장됨도 그렇다.

이번 공개수업을 앞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 퇴직하면 이런 설렘이 없을 텐데, 그게 마냥 좋아할 일인 것인지. 아닐 것이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롭지만, 그저 설렘으로 규정하면 될 일이다. 내가 감당할 것만 생각하면 된다. 이후의 결과까지 결합해서 상상하면 너무 복잡해진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설렘을 가질 수는 없다. 내 영역을 벗어날수록 설렘은 스트레스가 된다.

공개수업이 다가오자 설렘인지 떨림인지 긴장인지 스트레스인지 구별이 안 되는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미쳤지" 뭘 그렇게 자신감이 있다고 일을 벌였는지 참.. 

평범한 나의 수업에 별로 차려놓은 것도 없으면서, 국어과, 사서쌤 포함해서 10명의 교생쌤들과 타학교 수석교사쌤을 초대했고, 교감선생님도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해주셨다.



<수업 후 소감>

설렘은 결국 행복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나의 부족함을 선생님들이 발견하셨다면 용기와 힘이 되었을 것이니,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체육대회 반티 입어 보며 다른 의미로 설렜던 아이들은 정작 수업이 시작되고 나니 나랑 동일한 의미로 설레하는 것 같았다. 12명의 선생님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무척 되었을 것이다.

지난주부터 목소리가 잘 나지 않아 노래는 무리였는데 억지로 강행하여 제대로 망신당한 느낌이었지만, 최고의 컨디션으로 했어도 나의 의도는 감탄이 아니라 학생들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으므로 실패는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수업 후 날 위로했다. 생각보다 기타 잘 치신다고... 그걸로 난 아이들과 부쩍 가까워진 걸 느꼈다.

교감선생님은 감사하게도 가장 큰 반응을 보여주시면서 정말 수업을 열심히 들으셨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며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먼 걸음을 해주신 수석선생님과 수업 후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의도와 수업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의 수업에 대한 변명과 숨겨진 수업 의도, 평소 수업의 방향 들에 대해 변호하듯 말씀을 드렸고, 수석선생님은 수업에 대해 정리한 후, 다른 날에 참관을 약속하신 다른 수석쌤의 반응을 종합해서 협의회 자리를 따로 만들기로 했다.

부담스러운 자리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학생들에게도, 한 시간 내내 서서 기합받듯이 수업에 경청해 준 교생선생님께도, 수업에 학생들보다 더 몰입해 주신 교감선생님께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수업의 내용을 세밀하게 메모하면서 수업나눔을 베풀어주신 수석쌤께도 신세 진 날이었다. 

나의 설렘은 나의 잘남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받는 감사로 마무리되었다.

영어과 교생쌤 네 분과 진행하면 될 일을 굳이 이렇게까지 더 큰 설렘을 안으면서 확장한 일이었는지 시작 전에는 자책하는 마음도 들고, 수업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지 못한 속상함이 가득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받게 되는 위로와 격려의 크기로 인해 더 깊은 감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틀 후 우리 반에서 같은 차시로 2차 수업공개가 있을 예정이다.

영어과 교생쌤 네 분이 한 번 더 참여하시기로 했고, 학교 선생님 세 분 외에도 타학교 수석선생님이 참여하시기로 되어 있다. 

이미 한 번을 겪었더라도, 설렘은 면제되지 않겠지만, 이미 말아먹은 경험으로 인해 좀 더 편안한 설렘을 누리게 될 것 같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대구 모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 14명을 대상으로 영어 1등급 프로젝트 2기 수업 시작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또 다른 설렘이 시작되었고...

5월 17일 오후 중학교학부모대상 영어자기주도학습 온라인 강연, 21일 **교회 특강이 예정되어 있어 벌써부터 설레는 중이었다. 

부디 나의 설렘이 나만의 행복으로 그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소망한다.

수업자료 공유

https://url.kr/o4mfae


작가의 이전글 나의 공부 연대기6 (삶으로 터득한 공부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