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학생들의 타이밍(고2)

by 청블리쌤

남녀 사이도 타이밍이잖아요.

근데 계속 타이밍이 안 맞으면 어떡해?

늙어 죽든가, 속 터져 죽죠. 확실해질 때까지 간 보다간 게임오버에요.

왜.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건 알잖아.

알지만 속 터져 죽겠어, 때마침 저돌적인 헌터가 치고 들어와. 뭔가 신선해. 뻥 뚫려. 새로워. 그럼 홀랑 넘어가게 되는 거지.

- 한국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중에서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내가 승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보다는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인 거다.

- 한국 영화 ‘너의 결혼식’ 중에서


... 이 영화가 말하는 ‘타이밍’이란 단순히 사랑이 이루어지는 ‘타이밍’이 아니라, 손에 쥔 사랑을 지켜낼 ‘타이밍’, 더 늦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할 ‘타이밍’, 그리고 너로 인해 내가 성장했음을 깨닫는 ‘타이밍’이다. 공감도 높은 서사가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돼 있던 감정을 적잖이 건드린다.

‘너의 결혼식’ 충무로 멜로, 죽지 않았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명확히 알게 됩니다. 정작 그 순간에는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훗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 순간 어떤 계기가 있었다면 더 완벽한 결정을 했을 것이고 그 결정으로 인해 나의 삶이,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도 함께 바뀌었겠지요.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에서는 친구 커플들끼리 저녁식사시간에 서로의 휴대폰의 문자, 전화, SNS를 숨김없이 공개하는 설정이 나옵니다. 그러기도 했던 상황과 하지 않기로 했던 상황의 극명한 차이를 영화에서는 교묘하게 보여줍니다. 사소해 보이는 결정과 비밀의 누설 여부 등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일깨워줍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마지막 수업시간에 무슨 질문이든 하라고 하였는데 그중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나요?”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의 답변은 “사랑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는 거다.”였습니다.


저도 제 딸이 고등학교 시절에 연애를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사랑은 말린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말릴수록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더 타오릅니다), 시작하라고 격려한다고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노력의 여부나 매력 발산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는 사랑의 시작은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시작된 연애에서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는 것이 관계와 서로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노력할 점이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집착하지 않고, 서로의 인간관계를 제한하지 않으며 서로 학생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감정에만 충실하지 말고 절제하고 지켜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며, 헤어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헤어짐을 통해서도 인생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제 딸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최고의 내신성적을 받아들고 함께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 고3이 됩니다. 1학년 말부터 시작된 연애와 실용음악(베이스 기타) 전공에 대한 막연한 희망 그리고 아토피가 심해서 잠을 잘 못 자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이 아이를 주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환경이고 본인의 공부에 대한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겠지요. 실제로 1학년 1학기 때 성적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아토피 증상도 절정이었습니다.


그런 딸이 방황을 어느 정도 끝내고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나름 성공적으로(그래도 중간고사를 망해서 성적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치르고 나서는 이전에 조금 더 공부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 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순간 네가 몸이 힘들어서 집중이 잘 안되었던 것 기억하고 있단다. 연애를 하면서, 실용음악을 기웃거리면서 넌 그저 그 순간에 너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을 한 거다. 그 선택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아빠가 충분히 정보를 주었음에도... 덕분에 실용음악을 전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과 베이스 기타가 평생 즐거움으로 할 수 있는 취미라는 확신을 가지고 즐겁게 교회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소중한 추억을 만들면서 인간관계를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잖니. 그러다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를 너의 노래처럼 느끼며 감성이 자라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겠지. 너의 선택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건 너에게 주어진 축복 같은 것이란다. 물론 성적과 맞바꾼 후회나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 아쉬움을 알고 선택한 것이니 후회는 하지 마라.


공부는 이후에도 네가 간절하다면 재수나 반수의 과정으로도 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그런 생활과 소중한 기억들은 그때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것이니 아빠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너의 능력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노력의 부족으로 못 가게 되는 대학은 결국 너의 길이 아닌 거다. 네가 현재를 담보로 미래를 위해서만 투자할 생각이 없고 이 순간 공부만 하지 않고 다른 소중한 것들을 찾아 선택하는 삶을, 그런 여유 있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면 그렇게 대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된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네가 선택하지 않아도 그런 대학을 자연스럽게 가게 될 것이란다. 더 좋은 대학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은 있지만 그렇게 너에게 알맞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너에게 달렸고 더 좋은 대학을 가려는 욕심은 너 스스로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공부하는 고3 과정이 즐거우면 좋겠다. 종착지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곳까지, 부담 크게 갖지 않고 즐거움으로 그 길을 가게 되면 좋겠다.


결국 타이밍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학생으로서 공부할 타이밍만 외칩니다. 늦기 전에 해야 할 공부에 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학생으로서만 할 수 있는 그 순간의 소중한 일들에 대한 타이밍도 돌아봐야 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다 놓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학생이든 성인이든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낭비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지금도 저는 이미 훌쩍 커버린 딸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 낭비를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그 순간이 아닌 지금은 의미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애써 안타까움으로 인정합니다. 이후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과정이 될 때까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으면서 말이지요.


아래의 대사는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에서 딸이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일 때 아빠(조진웅)가 해 준 이야기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가. 그게 아니라면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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