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친과 헤어져서 아파하고 있는 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미완성은 아쉬움을 의미하고 때로는 슬픔을 뜻하기도 한다. 일상이어서 특별하지 않을 것일수록 상실에 대한 박탈감은 더 커진다. 그건 내 생활의 일부분인 것이니까.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껴야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때로 상실의 이유가 되는 대상 자체에 대한 가치나 아쉬움의 본질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보다 상실된 작은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헤어짐의 아픔을 감당하지 않으려면 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행복도 진심어린 교감도 얻을 수 없다.
공립학교 교사로서 난 매년 헤어짐을 경험한다. 거의 4년 주기로 익숙한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의 선택에 내몰린다. 익숙한 공간을 채우던 익숙한 아이들은 다음 해에 낯선 아이들이 자리하고 이내 익숙함이 되고, 그래봐야 또 다른 상실이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다.
끝이 예정된 만남, 그래서 일상에 진심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상이 끝나면 거의 완벽한 추억으로 봉인되는 슬픔의 공정을 거친다.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일상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님을 그 추억을 통해 매번 확인한다.
경대사대부고를 떠날 때 내 교직 생활에 교생선생님을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중학교에 와서 교생쌤들을 2년 연속 만났다.
작년에 교생쌤 만나고 실질적인 은퇴를 하려고 했다. 교생쌤들이 나를 반기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 있던 탓이었다. 올해 교생쌤들은 내 큰 딸 또래였다. 교생쌤들이 바라시는 젊은 감각과 친밀한 거리감을 채워드릴 자신이 없었다.
작년에 교생쌤 지도 신청을 전체 메시지로 받았을 때 연구부장님께 위와 같은 이유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꼭 해야 하는 의무적인 상황에서 강제로 시키면 하겠지만 먼저 나서서 신청하지는 않겠다고.
부장님은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제가 강제로 시키겠습니다. 3명 신청하겠습니다. 재능기부하셔야죠”라고 답변했다.
그렇게 못 이기는 척(?) 하고 올해도 교생지도를 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한 분 늘어서 네 분을 만났다.
교생쌤 중 한 분이 자기 대학에서 제일 착한 사람들만 온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진실이었는지, 모든 쌤들이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내 피드백을 겸손하게 잘 받고, 배움과 성장의 증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올해 교생쌤이 마지막 교생쌤일 것 같다는 가능성을 두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누군가 강제로 시키면 기쁜 마음으로 하겠지만 내가 먼저 의도적으로 신청해서 하기에는 혹 만나게 될 교생쌤들게 너무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아서...
그러던 차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규 영어교사 멘토링 요청을 받았다. 과분한 제의였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욕심이 아니기를... 교직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후배교사들에게 다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지고 있어서 제안을 수락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만나는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배움의 간절함만큼만 해 줄 수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내 능력의 부족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런 기회가 있음이 늘 감사하다.
나의 역량이 아니라 올해 교생쌤들의 간절함과 겸허한 배움의 자세로 난 피드백을 해드리면서 오히려 내가 도로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힐링이 되었고 힘을 얻었다. 평소보다 시간을 더 쓰고 에너지를 썼지만 그 이상을 덤으로 더 얻은 느낌이다.
올해 마지막 교생쌤이라는 비장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아직 어찌 될지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생에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더라도 이번 교생쌤들은 물론, 매번 만나는 학생들과는 어차피 그 마지막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게도 교직생활 마지막 학생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 비장할 일은 아니다. 그때의 학생들도 지금 만나는 학생들처럼 일상으로 만나서 평소와 같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애쓸 것이고, 그 노력과 사랑과 진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만남에 충실해서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끝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후회 없는 진심만이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다짐... 어쨌거나 난 지금 이 순간만 산다.
박탈감이라는 헤어짐이라는 슬픔에 무뎌지지 않아 새로운 만남에 치러야 할 대가가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아래의 영화대사가 떠올랐다.
We can't have the happiness of yesterday without the pain of today. That's the deal. 우리는 오늘의 고통 없이 어제의 행복을 가질 수 없어요. 그건 거래죠. - 영화 Shadowlands(1993) 중
그래서 난 그 비장한 슬픔의 무게 속에서도 이 순간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리고 그 행복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기대한다고..
교생쌤들을 떠나보내며 교생일지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드렸다.
1
늘 진중하고 신중하게 책임을 다하시고 애쓰시는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 부족한 건 역량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고 자신감인 것 같아요. 겸손한 자세로 평생 성장을 이루시겠지만, 더 큰 자신감으로 계신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축복과 행복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
모든 이들의 해피바이러스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다른 교생쌤들께도 선생님의 유쾌한 에너지가 잘 전달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이 단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을 그런 자리에서 다른 이들의 행복을 책임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존경받으면서 따뜻함까지 전하는 훌륭한 리더가 되실 것 같아요. 제게 주신 피드백(?)도 감사했습니다. 젊음을 바친 제 삶에 보상을 주는 듯한 멘트여서 많이 감동했고 힘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동일한 감동을 전하는 귀한 역할도 잘 감당하시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3
존재 자체가 감동인 사람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어요. 분명 제가 피드백을 드리고 있는데 오히려 제가 더 힐링이 되고 제가 상담을 받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실제로 과분했지만 제게 주신 “좋은 어른”이라는 피드백(?)에도 크게 감동하고 감사했습니다. 쌤께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의식적인 노력도 있으셨겠죠. 꼭 축복과 은혜의 통로로 부르심 받을 거라 믿습니다. 꼭 그러셔야 하구요. 그동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시고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행복까지도 지켜주셨네요. 선생님의 첫 떨림을 기억합니다. 그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욕이고 진심이고 설렘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평생 그 떨림으로 끊임없이 성장하시길.. 과정은 “행복할 만큼만” 결과는 “어쩌다 보니”의 삶이 되시길.. 단 한순간의 행복도 놓치지 않으시길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4
수줍은 척 할 거 다 하시고, 막상 무대에 서면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당당함을 지니신 것 같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말투에도 따뜻함이 묻어나시고, 세밀함으로 주변의 것들을 흡수하여 완전체로 나아가려는 의욕도 느껴졌고, 사람을 대할 때나 수업을 준비할 때도 진심이 느껴져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실 거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열심히 애써주셔서, 그렇게 자기 성장을 이뤄가시는 모습에 흐뭇했고, 학생들의 행복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저 행복하게 과정을 누렸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꿈을 이루게 된 모습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그리고 교생쌤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울컥했다. 이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확신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극적으로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지난 학교를 옮길 때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기에는 우리의 교직경력이 많이 남지 않음에 책임감의 무게를 느낀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젊기 때문에 이뤄낼 것이다.
선생님들이 내게 남겨주신 감동적인 편지글 중 몇 부분만...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히 마음에 열정이나 의지가 확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태도, 열정, 따뜻한 마음씨, 사람을 대할 때 편안함, 영어라는 분야에서 전문성과 선생님만의 개성 있는 수업이 어우러져 시작할 때의 제 마음이 변할 수 있었습니다.
1주차 때 수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힘들고 굉장히 두려운 상태였는데 개인 상담을 진행하여 해주신 조언들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아낌없이 자료를 공유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선생님의 열정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지금까지 만나 뵌 선생님 중 가장 따뜻하고 닮고 싶은 분인 것 같아요.
제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교생실습을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고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게 쉽지 않은 도전들이 참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격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고 선생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겠습니다. 교직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들의 정성이 담긴 편지를 여러 번 읽으면서 울컥했다. 좋은 지도교사를 만났다는 그들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난 정말 좋은 교생쌤들을 만나는 축복을 누렸던 거였다.
불안한 현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 딸 같은, 실제로 딸과 같거나 비슷한 나이의 젊은 분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여정에 유의미한 한 가닥의 긍정적인 스크래치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었기를... 그러기에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많이 드리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은 크지만...
마지막 교문 밖을 나서는 것을 악수로 배웅하면서 진하게 묻어나는 아쉬움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이후 학교에서 평소처럼 일상에서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는 허전함이... 그 어떤 교생쌤들과의 헤어짐보다 더 무겁고 슬프고 허전하게 다가왔다.
교생쌤이 가고 없는 자리에서 반 아이들과 오래간만에 종례를 했다. 서로의 삶이 교차했었다는 그 특별한 인연을 아이들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설프지만 아이들은 교생선생님들과의 송별회에 마음을 담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쉬는 시간에 계단까지 따라내려왔다.
교생선생님들께 행복을 주어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드린 것 같아 담임인 나도 뿌듯하다고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문득 이제 희미해져만가는 내 교생시절이 생각났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어서, 가능하다면 교육실습 과목 낙제점을 받고 재수강을 받고 싶을 정도였다.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돌아와 주체할 수 없는 허전함과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그 아쉬움의 느낌은 여전히 살아 있다.
꿈을 꾼 듯 그 짧은 기간을 지난 후, 교사가 되어 만나고야말겠다는 비장함으로 그 꿈을 구체화시키며 애를 쓰고 노력했던 그 과정도...
우린 서로의 인생의 여정의 접점에서 화학변화와 같은 삶의 변화를 마주하며 그 감동과 여운을 성장의 동력으로 추억을 완성해가는 듯하다.
교생쌤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유독 올해 특히 아쉬운 내게도, 의도적으로 의식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서로를 향한 진심과 행복의 순간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성장의 동력으로 남았기를...
박탈감이라는 이름의 슬픔에서 더 절절하게 건져올린 소중한 느낌을 추억으로 포장하여 잘 간직하며 힘겨울 때 한 번씩 꺼내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