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수업 관찰>
1. 계속적 용법 설명
1) "(, 관계사) 요렇게 나온 것을 우리나라 문법책에서는 계속적 용법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영어로는 비제한적 용법,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2) 비제한적 용법.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하는 용법. 안물안궁 용법
3) 교사가 수업을 연구하는 목적은 내가 아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는 것은 교사가 그 내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교사가 공부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교사의 실력이 늘지 않으면 학생의 실력도 늘지 않는다. 학생이 배워야 할 내용이 언어나 수학처럼 체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4) 선생님의 자료에는 교사의 내공이 묻어 있다. 특유의 폰트로 일관성 있게 자료가 제작되어 있고, 핵심 내용과 관련 예시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되어 있다. 보통의(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어 교사가 제시하는 자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간결하고 명료하다. 깊이는 말할 것도 없다. ‘정통영어, 안물안궁 용법’은 교사가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내가 공부해보니 이런 용어나 표현은 너희가 이해하기 어려울거야. 그러니 내가 너희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해줄게.’ 교직 생활 내내 교재 연구를 했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삶 전체에 걸쳐서 연구했을 것이다. 언젠가 연수에서 말한 덕업일치 상태, 즉 덕질로서의 영어 취미 활동과 업으로서의 영어 교재 연구 활동이 구분되기 어려운 상태니 이보다 더 전문가적인 상태가 어디 있겠는가?
5) “그래서 전 나름대로 이름을 붙였어요.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저는 이것을 뭐라고 한다고요? 안물안궁 용법.”
6) 연구가 깊어지면 외로워진다. 일반 교사와의 소통이 어려워진다.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식의 저주처럼 지식을 습득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깊게 파면 팔수록 과거의 나와 멀어지고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일반 교사와 멀어진다. 다시 그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관성처럼 계속 정진하는 것밖에 없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를 위로하거나 아니면 나의 위대한 노력을 슬쩍 흘려서 상대방이 알아보게 만드는 것이 보상받는 방법이다. 정성을 다해서 만든 자료, 그 자료 안에 교사의 통찰이 담겨 있으면 그것을 만든이는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력을 학생들도 알아주길 바란다. 혹시나 교사의 위대한 노력을 언급하는 센스 있는 학생이 있으면 이 학생은 분명 지적으로 탁월한 학생일 것이다.
내 생각 : 연수를 다니며 영어교사들을 대상으로 티칭과 코칭에 대해서도 강의하고 있다. 혼자 외롭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나의 노력과 자료의 의미를 아는 학생들을 만나면 반갑다. 보상을 바라고 수업하는 건 아니지만 알아주는 학생과의 만남이 있으면 그 이상의 보상을 받는다.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는 대다수 학생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고, 그 외의 학교에서는 표현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만났다. 수석쌤의 글을 보고 그런 나의 삶이 납득되었다. 그래도 날 한참 올려치기 한 글이었다.
수업후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펼쳐보며 수업에 대한 비판을 기대했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연장자이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날카로운 비판을 기대하라면서, 기분 좋을 때 보라는 당부가 무색해졌다.
그 선생님도 그런 내게 3년 연속 자신의 교사연구회에서 연수 강의를 의뢰했었다. 보통 5월쯤 의뢰받고 9월 강의까지 삶으로 연수 내용을 준비했고 삶으로 강연했다. 덕분에 준비과정에서도 더 치열하게 성장했다.
(안물안궁이지만) 3년 간 강의목록
1.행복교육, 시공간초월교육, 사교육없이 대학보내기
2.뒤집어본 행복교육, 퍼스널 브랜딩, 블렌디드학습코칭
3.삶을 관통한 글쓰기와 행복교육
2. 덕질을 예문으로 활용하다.
1) 선생님 학습 자료에 나와 있는 예문은 아름답다. 때론 ‘I like an English teacher whose nickname is Chungvely.’와 같이 친근하기도 하다.
2) 내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예문은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와 같은 단순 문장이었다.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가 서로 같아서 그저 표면적 형태만 암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영어 실력도 안 늘고 국어 실력도 제자리였다.
3) 영어도 결국은 국어다.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 의미는 감추어져 있다. 겉뜻만 알아서는 느낄 수 없다. 속뜻을 분석해야 언어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곱씹어야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를 삶과 연결할 수 있다.
4) 예문이 참 좋다.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의 덕질의 흔적일 것이다. 언젠가 중3 아들이 듣는 ‘쎄듀 김기훈’ 강사의 교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7~8문장으로 이루어진 지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지문이었다. 문장마다 필요성이 있었고, 문장마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 강의를 보고 좋은 강사는 강의도 잘하지만, 좋은 교재를 보는 안목이 먼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탁월함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 생각 : 난 주어진 텍스트를 가르치는 것보다 교육과정 재구성의 느낌으로 가르치는 내용을 구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출판물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출판하는 심정으로 자료를 모으고 편집한다.
쎄듀 김기훈 강사의 불후의 명저는 천일문시리즈다. 난 천일문을 백일문으로 이름을 바꾸어 구성하였다. 공교육수업으로 커버할 수 있는 문장 수는 백 한 문장이 적합하기도 했다. 컨셉만 가져왔을 뿐, 그렇지만 이름과 구성은 유사하여 짝퉁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지만... 예문은 전부 내가 수집하였다. 구문개념에 맞춰,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주로 사랑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또 사랑이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를 담은 문장을 수집한다.
망망대해에서 한 마리씩 건져 올리지만 원하는 물고기가 아닐 때는 놓아주거나, 혹 다른 시기에 사용할까 해서 킵해두는 식으로 진행하는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작업이다. 그러다 월척을 낚듯 적합한 문장을 낚아올릴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 월척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날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서 선물을 준비하는 즐거움도 함께 느끼기 때문이다.
문법 설명을 할 때에도 이왕이면 감동이나 재미가 있는 문장으로 제시하려 한다. 그래야 영어가 문법책에 갇혀 있지 않고 학생들의 삶에서 살아난다. 교사의 수고의 깊이가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배움의 즐거움을 확장할 수 있다면 헌신할만한 투자다.
난 영어로 된 매체를 즐겁게 감상할 사명을 가진다. 그러다 마주하는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문장은 수업자료가 된다. 그래서 난 덕업일치를 외친다. 내가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수록 학생들의 기쁨도 커질 거라는 확신으로 행복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3. 의외의 대담함과 뻔뻔함?
1) 본인이 소심하다고 말하는 교사가 수업 시간에 기타를 들었다. 보통의 교사는 수업 시간에 짧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부끄러운데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소심하다는 말에 신뢰가 안 간다.
2)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해야 하면 분명 위축될 것이다.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떨림은 클 것이다. 반면 늘 해오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김의 순간이 될 수 있다.
3) 선생님이 기타를 잡고 자세를 잡자 여기저기서 ‘오~’라는 놀라움과 기대감의 표현이 나온다. 첫 소절을 삑사리로 시작하자 집중되었던 분위기가 깨지면서 웃음이 나온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감미롭게 노래가 시작되었다. 첫 소절로 이미 분위기는 끝났다. 한두 번 불러본 솜씨가 아니다. 같이 부르기로 한 학생들은 그저 듣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노래를 계속 부르던 선생님이 뻘쭘했는지 같이 참관하던 교생 선생님의 참여를 유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 그저 지도 교사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고 싶을 뿐이다.
4) 교실 온도가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소심한 교사로 돌아갔다. 학생의 환호에 그저 무덤덤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바로 학습 내용으로 전환했다. 학생들은 분명 이런 분위기를 기회 삼아서 교사의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을 것이다. 조금 망가져도 좋았을 텐데.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의 성향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공개 수업이라는 엄숙함 때문인지 더는 떼를 쓰지 않았다. 감미로웠던 분위기가 교사의 ‘자 이제 전치사 할께요’라는 말 한마디로 180도 바뀌었다. 11반 학생들은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담임 선생님을 들었다놨다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담임 선생님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영어 실력은 향상되겠지만, 영어 수업 시간의 추억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담임 선생님을 잘 구워삶아야 한다.
내 생각 : 기타를 치는 건 감탄이나 감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주려는 퍼포먼스다. 그래야 학생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대신 좀 뻔뻔해져야 한다. 이 실력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고? 그런 생각이 학생들에게서 퍼져나가면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는 법을 삶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연례 행사로 진행하는 퍼포먼스인데, 이왕이면 수업공개에 시기를 맞췄다. 학생이 아닌 손님들께는 부담스러운 친근함의 초대였을 터라서 좀 더 뻔뻔해져야 했다.
기타를 꺼내는 순간 모두가 기대를 한다. 그래서 난 처음에 의도적으로 삑사리를 내서 웃음을 유발하고 나의 긴장은 누그러진다. 그런데 함정은 의도적인 삑사리와 나의 최선의 간격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뻔한 수업 루틴에서 잠시 자유로우며 나와 학생들은 그 특이함에서 잠시 휴식을 누린다. 그리고 이후 난 학생들과 더 친밀해진다. 그러니 매년 이 이벤트를 안 할 이유가 없고 스스로 망가지지 않을 수 없다.
노래를 한 곡 하면 배려심이 깊은 아이들은 앵콜을 외친다. 굳이 이 불편함을 더 감수하겠다고? 그러면 난 또 못이기는 척 한 곡을 더 하기도 한다. 진짜 시킨다고 또 할 줄 몰랐다는 후회의 표정이 스쳐가도 뻔뻔함으로 무시한다. 그들이 자초한 일이므로, 뭐든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난 몸소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것이니 난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분위기가 업되면 수업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다른 얘기로 유도를 한다. 교직 초년생일 때는 진짜 아이들이 내 첫사랑을 궁금해하는 줄 알았다. 그저 수업을 안 할 수만 있다면 궁금하지 않은 얘기까지도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비장함이라는 걸 몰랐다.
“11반 학생들은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담임 선생님을 들었다놨다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담임 선생님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영어 실력은 향상되겠지만, 영어 수업 시간의 추억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담임 선생님을 잘 구워삶아야 한다.”
정말 많이 웃었다. 때로는 교사가 그래주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그냥 진도를 나갈 때도 있다.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내가 먼저 들어보라고 얘기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첫 여고에서 아이들이 내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을 때, 난 20여분 이상을 주저하면서 부르다 말고를 반복했다. 그때의 아이들은 인내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잘 부를 필요가 없었던 걸 그때는 몰랐기도 했고, 아직 뻔뻔함이 장착이 되지 않아서였기도 했다. 기타까지 치면서 망가지면 아이들이 두 배로 즐거워했을텐데...
강력하고 간절하게 학생들이 요구할 때는 그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시켜줄 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수석쌤의 말씀대로 수업 시간의 추억도 필요하다. 그건 대개 경로를 이탈할 경우에만 생성되는 것이므로, 의도적인 일탈도 필요하다. 아이들은 그 여백의 공간에서 삶을 배우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그 자리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쯤은 분위기 파악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4. 전치사 설명, 구체물 보여주기
1) 컵과 스푼을 보여주자 학생들이 집중한다. 단지 컵만 제시했을 뿐인데 수업 내용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나온 컵이라는 스토리를 입히자 학생들은 더욱 관심을 보인다.
2) TV에 해당 전치사를 띄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암기하지 말고 이해하라고 말한다. 컵과 스푼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해당 전치사를 설명한다. 설명이 간결하다. 학생들에게 전치사를 시각화해서 설명한다. 텍스트로 설명하면 각자의 수준으로 머릿속에 이미지화하겠지만, 컵과 같은 구체물로 보여주니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지 부하가 덜하다.
3) 컵으로 설명하고 나서 간단한 예시를 든다. ‘about 40. 딱 40점이 아니고 약 40점, 주변이니까’. 컵으로 설명했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내 생각 :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 2월 봄방학 직전, 진도를 나가는 것이 의미없어진 세기말 적 분위기에서 학생들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기획한 수업이었다. 컵과 스푼이라는 실물로 전치사의 공간적이고 물리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 확장하도록 해주기...
그때 아이들은 놀랐다. 그들이 배웠던 영어학습 방향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낯선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학생들도 아니고 컵과 스푼을 들어가면서 설명하다니.. 그 학생들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전치사에 익숙하고 숙어도 많이 암기했었기 때문에 내 설명에 열광했다. 기계적으로 암기했던 것들이 의미가 살아나며 하나하나 납득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이 수업은 청블리영문법, 백일문구문독해, 발음강의, Rootfix(어근접사), 블리텐어법(어법 10가지 포인트) 등과 함께 내 시그너쳐 수업이 되었다.
그런 수업의 특징은 암기를 최소화하면서 확장을 도와서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쉽지만, 그래서 외면하던 기본그림을 그려주는 이런 방식은 최상위권부터 하위권까지 모두에게 새로운 자극과 배움을 선물하는 수업기획이다.
그리고 관련된 재미있는 썰이 가미되면 그 여유와 좋은 기분으로 수업집중도는 더 올라간다. 물론 이것도 학생활동중심이 아닌, 교사중심이다. 난 주인공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