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된 딸아이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감성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참을 울다가 이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웃고 떠들다가 또 급우울해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고 입으로는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만 그 목구멍 아래로는 음식을 거부한다며 기운도 없어한다. 헤어졌다가 며칠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한 지 13번, 그동안의 이별 연습(?)이 충분한 건지 이제는 진짜 이별이 온 것 같기도 하다.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고등학생으로서 연애는 권장할만한 사항은 아니어서 시작될 때 말리고도 싶었고 시작되고 나서는 내심 빨리 헤어지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막상 헤어지고 저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의 마음도 같이 아프고 슬프기까지 하다.
이별이라는 것은 많이 반복된다고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더 무뎌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그 아픔을 치유할 방법은 없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하면서 교사는 유통기한이 정해진 사랑, 다르게 표현해서 시한부 사랑을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또 교사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은 학생들과 운명처럼 그저 만나서 보통은 1년 후에 뒤에 남겨지는 슬픈 존재라는 생각도 떨쳐내기 힘들다.
유독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을 많이 쓰고 더 정이 들었던 학생들은 1년 후 그만큼 떠나보내기가 더 힘이 든다.
산술적으로는 덜 사랑한 만큼 덜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망설일 수도 없는 것이 교사의 딜레마다.
<어떤가요> <그런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주 듣는 화요비의 노래 두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물론 연인의 관계를 전제로 진행되는 내용이지만, 종류가 다르고 사랑의 깊이가 다르더라도 자꾸 이별이라는 공통분모에 감정이입이 된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때부터 헤어졌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같이 그리워지는 느낌이 담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 그리움을 여전히 붙들고 싶은 구차한 미련일 수도 있지만...
건조하게 학생들을 대하면 이런 감정의 짐을 남겨두지 않고 미련도 없이 구차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사무적이지 않게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할 경우 진정으로 아이들을 아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 그 뒤의 후유증은 교사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부작용이다.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만남은 없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지금 그저 사랑하는 거다.
그게 연애의 관계이거나, 부모 자식의 관계이거나, 친구관계이거나,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거나 상관없이...
언젠가 딸에게 헤어지고 나면 이 세상의 모든 슬픈 노래가 너의 이야기가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 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슬픔을 간직하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감정이나 만남이 화석처럼 서서히 굳어져 추억이 되는 과정을 도와주고 싶어서다. 이별의 슬픔은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 맞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무뎌질 정도가 되면 안전하게 추억이 되어 웃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거다. 추억을 만들려고 일부러 이별한 건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더 애절한 사랑을 배워가고 아픔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성장한다.
그런데 교사인 나는 이 나이 먹고도 매번 이별의 아픔이 새롭고 힘들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