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행복할 만큼만 2(고3 딸 좌우명 실천기)

by 청블리쌤

앞서 소개한 “행복할 만큼만”이라는 고3 좌우명으로 생활하는 딸의 입시 과정과 고등학생들의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정시를 이미 2학년 때 선언하고 달라진 딸의 생활을 몇 가지를 소개하면


1)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공부를 안 하고 고등 래퍼를 하루 종일 정주행하고 미뤘던 치과 예약을 기말고사 기간에 잡는 등 수시진학 학생들에게 내신을 양보하려 애씀(진심인지 공부하기 싫은 게으름인지 때론 구분이 잘 되기도 하지만)


2) 과학경시대회 상 받아서 수시지원 학생들에게 피해가 있을까 봐 출전을 포기함


3) 재미로 나간 수학경시대회에서 어쩌다 상 받은 것에 대해 수시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해함


4) 중간 기말고사의 실수 한두 가지에 속상해하지 않으며 실수를 자랑하여 주변을 웃게 만듦


5) 그러나 중간 기말고사나 수행평가에 대해 여유가 생긴 것만큼 수능에 대한 부담감은 훨씬 더 커지긴 함



특유의 여유와 평화로움으로 흔들리지 않게 본인의 행복을 지키고 있으니 치열하게 수시를 위해 노력하는 애들에게 기꺼이 뭔가를 양보하려는 미덕도 발휘하게 되는가 봅니다. 상을 받게 될까 봐 대회 출전 안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우습기도 하지만 그 마음 씀에 대해서는 상 받은 것 이상으로 흐뭇하였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딸이 제게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랑을 했는데, 그날은 학교생활을 보람 있게 잘 한 것 같다고 하면서 하루 수업 시간 중 두 시간밖에 안 잤다고 하는 겁니다. 두 시간도 많은 시간인데 그전에는 얼마나 수업 시간에 잔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또 물리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흰머리 하나가 너무 눈에 띄어 갑자기 성큼성큼 선생님께 다가가 흰머리를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반 학생들은 경악을 하며 “선생님 쓰다듬냐”고 하고 너무 놀란 선생님께 맞을 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례한 학생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 주신 선생님께 죄송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허점이 많고 인간적인 모습을 학교생활을 하니 학반에 딸을 배척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없는 듯합니다. 연애 후의 후유증이 있을 뿐 마냥 학교생활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상담할 때 공부할 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물으실 정도로 천하태평 모드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고3이 되면 조금 소란스러운 학반에 대한 불만이 있기 마련인데 딸은 반 분위기 너무 좋다고 합니다. 서로 웃으며 적당히 소란스럽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으니 학원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결과에 조급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잘 없는 거지요.


그러다가 이번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대박 났습니다. 주변의 친구들 중 어떤 학생은 딸에 대해 인생은 참 불공평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6월, 9월 대박 나면 수능에서 망한다는 속설을 굳이 딸에게 얘기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딸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성적이 안 나온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딸을 칭찬하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래 6월 성적이 너 개인의 역사를 볼 때 역대급으로 나오긴 했지만 만점을 맞은 건 아니고 점수를 더 올릴 과목도 있으니 아직은 망한 거다. 그 말이 맞는다면 수능은 더 잘 칠 거다.” 이렇게 말이죠. 실은 진짜 모의고사 성적이 좋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을 놓고 공부를 더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딸도 드디어 이과 수학을 1등급 찍자 공부 의욕이 사라졌다고 오히려 푸념하기도 하였습니다.


딸을 보면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꾸준하게, 때로는 하기 싫은 마음도 절제하면서 좀 더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듭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 모두 본인의 선택이니 전 늘 그 선택을 존중해 줍니다. 대학 가서도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에서 과욕 부리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그래서 행복할 정도까지만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과한 시험불안이 오고 민감해지는 것은 자기가 준비한 그릇만큼만 담아 가게 되어 있는 시험의 속성을 거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라도 그릇을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욕으로 초조해하고, 혹 다른 변수나 요인으로 원하는 그 성적을 못 받아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이 앞서기 때문인 거죠.


서로의 성적을 비교하는 것이 시험의 본질처럼 인식되어 가는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긴 합니다. 남과의 비교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내가 바라는 남의 성적은 "내 것이 아니거나", 내 성적이 되더라도 "아직은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비교를 통해 당장이라도 눈에 보이는 뭔가에 대한 결과물을 확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성적이 더 오르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저 지방 거점 국립대학에 진학을 해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아빠의 욕심입니다. 그래서 딸이 공부에만 전념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 고3 학부모의 스트레스는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상을 바라거나 혹 안 될 것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노력 이상 바라지 않고 타이밍을 존중하며 함께 기다려주고, 남들보다 앞서려는 목적으로 공부를 미션 수행처럼 하기보다, 순간순간 자기 성장을 이루는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일상을 보내다가 수능도 또 다른 일상처럼 자기가 준비한 그릇만큼 받아들여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만을 바랍니다.


혹 그 사이에 본인이 더 욕심을 내어서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독립을 하더라도 존중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만 해 둘뿐입니다.


지켜내야 할 것도 없고, 더 큰 기대도 없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결론을 정해 놓고 몰아붙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함께 꿈꿔 봅니다. 그것도 획일화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을 때는 실패자인 것처럼 반응하는 과정이 불행한 사회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개성대로 각자의 속도대로 하나씩 이루는 성취나 발전에 서로 기뻐해 주고 즐거워하며 평생 그런 여유로 뭐든 “행복할 만큼만”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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