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평범한 고3 딸의 평범하지 않은 행복 편지

by 청블리쌤

올해(2019년) 5월 어버이날 즈음에 고3인 큰 딸에게 받은 편지입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메시지이지만, 평범해서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고3의 생활이 드러나는 편지여서 소개해 보려 합니다.



부모님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속 최대한 덜 썩이게 공부 열심히 할게요.(제 기준에서)

우리 집이 너무 좋아요. 돈 많은 집 진짜 하나도 안 부럽고 화목한 분위기가 제일 큰 복인 것 같아요.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도 하면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을 만큼 할 수 있게 토대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나중에 돈 많이 말고 어느 정도 벌어서 효도할게요. 사랑해요.

저도 커서 우리 집 같은 가정 만들고 싶어요.

2019년 어버이날 즈음에 큰 딸



눈물 나도록 감동했던 큰 딸의 편지였습니다. 그러고도 공부는 여전히 죽을 만큼 하지 않고 취미처럼 하고 있고, 수능 카운트다운 들어가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딸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열심히 한다는 약속도 자신의 기준에서 나름 하겠다는 것이어서 적어도 그 약속은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정한 최소한의 분량의 공부는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돈 많은 집 하나도 안 부럽다는 건, 일단 우리 집 돈이 많지 않다는 걸 전제로 한 현실 발언이어서 가장인 나를 각성시킬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이 진심인 걸 아니 부담은 갖지 않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자전거를 태워줘도 창피해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아빠를 차도남(차 없는 도시 남자)으로 소개할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행복 = 현실/기대


위의 행복 공식에 비추어보면 돈 많고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힘겹게 갖추는 것보다 기대를 낮추는 것이 훨씬 행복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빠른 길임을 딸도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 더없이 기뻤습니다.


공부도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나, 다른 애들보다 앞서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나, 무조건 좋은 대학 가려고 하려는 것이거나, 남들 하는 만큼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 없이 본인의 말대로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만, 그리고 다른 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에 대한 감사가 묻어나서 다행이구요. (딸은 실제로 고1부터 1년 넘게 연애도 했고, 2학년 때는 실용음악 베이스기타 전공 시켜달라고 고집을 부려 한 학기 이상 주 2회 베이스 기타 위탁교육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원 안 다니는 시간적 여유를 누리는 것이었지만, 성적이 떨어지게 될 것은 알면서도 전 선택을 존중해주었습니다. 물론 이후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돌아온 것도 딸의 선택이었습니다.)


정시에 올인하여 나름 애쓰고 있는 딸에게 대략적인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의 도달 여부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가고 싶은 걸음을 걷고 도달한 그곳이 그저 나름 성공의 발걸음임을 믿기 때문이지요.


결과에 조급해하거나 성과를 위한 억지스러운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남들 다 하는 사교육도 안 하면서, 오히려 안 했기 때문에 스스로 깨쳐 가는 과정 속에 제대로 된 즐거움을 찾아왔기 때문에 그 자연스러운 도달점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3의 입에서 요새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하는 고백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인지...


수능이 끝나면 어떤 심경일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끝까지 그 길을 완주한 그 노력만으로 박수를 쳐주며 결과를 받아들이고 길을 찾을 겁니다. 결과만이 모든 노력과 여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과정 중에 충분히 행복했고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으니...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갈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딸아이의 삶의 목적이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만이라서 또 감사합니다. 그래도 자족하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으니 행복할 거라 믿습니다.


늘 아빠가 학교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돈 많은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일들조차 챙겨주지 못한 부족하고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발견해냈으니 말입니다.


공부하러 나서는 딸이 안쓰러울 땐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하지마!"


딸의 대답은 늘 이렇습니다.

"걱정하지 마요(그럴리가 없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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