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블리쌤 Sep 03. 2023

게을러진 독서, 핑계 두 가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 감퇴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학년부장님께 수학 도우미를 교무실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실로 가는 길에 새까맣게 까먹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노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눈이 침침해지는 노안이다.

젊은 시절은 난시로 인해 글자의 사소한 변형이 있어서 책을 볼 때 안경을 벗을 일이 없었는데, 노안이 오니 그나마 안경을 썼던 불편함이 편리함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안경을 벗으니 작은 글자가 보인다. 누워서 편하게 책을 보는 자세에 최적화된 일종의 혜택이다.

 

젊은 시절에는 원하는 책을 거의 다 사보았다. 영화 비디오 빌려보는 것과 책을 사보는 것이 젊은 시절 유일한 돈 드는 취미였다.

그러다 도서정가제가 되면서 책을 사는 것도 망설여졌지만, 딸들이 커 가면서 한정된 수입의 한계를 고려해서, 딸들을 위한 그림책이나 학습서에 도서비를 양보했다. 난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책은 완독을 하고도 책을 사곤 했다. 영원히 책을 소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러나 책도 나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을 견디지 못했다. 누렇게 바래지거나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다.

 

소유에 대한 집착도 나이가 들면서 명분과 의미를 잃어갔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 자신도, 책도 영원하지 않다는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진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물론 컸다.

책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는 중고서점에 되팔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고, 세월의 흐름에 넘겨주어야 할 책들이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책을 구입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책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정신력이 온전해야 볼 수 있고, 집중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누워서 활자 대신 영상을, 최근에는 짧은 영상 보는 것을 선택한다. 그럴수록 활자에 대한 긴 집중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연령에 상관없이 단체로 중독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중학교에 와서 보장된 칼퇴는 물리적으로는 더 많은 독서시간을 확보하게 해주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집중력을 핑계로 독서는 우선순위 밖으로 밀린지 오래다.

퇴근 후 영화나 드라마를 주로 보고, 기운이 좀 남아 있으면 글을 쓴다. 이러다 젊은 날의 인풋을 다 끌어다 써서 고갈되면 쓰기도 잘 안될 거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여간해서 독서의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

그러던 중에 독서를 하기 힘들어졌다는 핑곗거리도 두 개 생겼다.

 

책을 구입하지 않는 노선을 추구하는 나의 독서의 루트는 Yes 24 크레마북 이북 정기구독, 대구 중앙도서관 책 대여 두 가지였다.

 

그동안 Yes24 크레마북으로 독서하다가 스크랩 기능을 활용해서 에버노트 등에 텍스트를 공유해서 블로그에 독서기록을 해왔는데, 얼마 전 크레마북에서 스크랩 기능이 전격 중단되었다.

 

예스 24 고객센터 답변의 일부

대단히 죄송하게도 크레마 단말기의 통합 뷰어 (타 서점사의 이북과 함께 이용하실 수 있는 시스템)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해당 기능 또한 적용이 어려운 부분으로 해당 기능/메뉴가 삭제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갑자기 매달 크레마클럽 정기구독을 해야 할 의지와 의욕을 잃고 정기구독을 해지했다.

그러면서 내 책 읽기의 목적이 단지 읽기만이 아니라 쓰기와 정리에 더 비중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젊은 시절 그저 읽기만 했고, 책에 밑줄을 치는 정도로 독서를 이어왔는데...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내 독서의 삶을 결정짓는 일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이젠 종이책을 보다가 마음에 두는 구절을 표시해서 사진을 찍고 OCR 프로그램을 돌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독서 기록 장벽이 더 높아졌다.

 

최근 대구 중앙도서관이 2년 넘는 기간의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개장을 했다. 거의 20년을 다녔던 정든 곳이 새 단장을 한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기대감은 컸다.

 

<리모델링 영상>

https://youtu.be/D8MspX4vTac?si=x468E2GRMfh9h4lD

재개장하는 날 9시 기다렸다는 듯이 도서관에 뛰어들었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새 건물 냄새가 나를 밀어내려 했다.

20년간 보통 2주에 한 번 이상은 자전거를 타고 드나들며 책을 빌리던 익숙한 공간이었는데 건물 내부가 너무 낯설었다. 바뀐 이름조차 낯설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라니... 불길했다. 도서관 본연의 본질에 뭔가가 섞여 든 느낌이었는데,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2층까지는 도서관이 아닌 박물관이었다. 대구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을 지나기 전까지는 내가 도서관에 있다는 생각을 새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그리고 강의실이나 모둠활동실 등의 공간이 책이 가득했던 자리를 대신해서 채우고 있었다.

 

장서의 규모나 다양성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도서관 공간은 혁신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의자와 소파, 탁자 등이 넓은 공간을 다양하게 채우고 있었다. 휴식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었고,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편의성 면에서도 완벽했다. 더구나 이제 막 개장하여 낡지 않은 완전 새것의 느낌이라서 더 산뜻하고 깔끔해 보였다. 이러려고 리모델링을 하는 거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나 편안한 공간이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두지는 않았다. 곧 나의 시선은 도서관에 구비된 책들로 향했다. 얼마나 많고 다양한 책들로 채워져 있을 것인지 설렜다.

 

그러나 새로워진 공간에 비해 장서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장서의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리모델링은 장서의 규모를 키우고 독서문화의 붐을 일으킬 만한 도서관의 본질에서 약간은 비껴간 느낌이었다.

도서관 리모델링에서 장서가 공간을 양보해서 인간들의 편의성에 희생한 느낌까지 들었다.

다만 유아독서 공간은 훌륭했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책을 가까이하기에는 협소했었는데, 리모델링으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넓은 공간과 예쁜 인테리어로 인해 초기의 독서 문턱을 넘는데 정서적으로 큰 기여를 할 것 같았다.

 

둘째 딸이 원하는 고전소설 분야를 둘러보다가 너무 놀랐다. 예전에 있던 책들도 처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검색을 해보면 요즘에는 서책보다 이북으로 전환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런 변화의 흐름을 내가 놓치고 불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서관의 역할은 책이라는 실물을 맞이하는 곳이라는 나의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겠지만...

 

딸들이 초등학생일 때 도서관에서 가까운 학교에 근무하면서 1-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의 책을 무더기로 빌려주던 때가 있었다. 나도 원 없이 책을 골라서 보았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도서대출기록으로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어 상패와 상품까지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 입장에서 물론 열심히 책을 대여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혹 대구지역의 책에 대한 열정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방증은 아니었을지.

 

개인적으로 원하는 도서를 예약도 서로 신청하고, 도서관 장서가 아닌 책은 희망도서로 신청하면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는데, 그 대출의 과정에서도 치열한 경쟁 같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장서에 대한 수요와 요구들을 반영해서 축소가 된 것인지, 아니면 공간과 행정적인 요인으로 결정된 것이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아쉬운 마음이 더 넓어진 도서관 공간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동안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고 앞으로도 도서관의 혜택을 여전히 보겠지만... 예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불평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너무 아쉽기는 하다.

 

눈도 침침한데 이참에 독서를 쉴까... 독서기록을 멈출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합리화시켜주는 여건이 안도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상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독서에 대한 나의 열심은 나 혼자만의 의지와 흥미로만 지속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쉬움으로 떠올리게 되었지만 그동안 누렸던 혜택과 축복에 감사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있다가 없으면 그때가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할 타이밍인 것이니까.

 

젊은 날 그저 읽기만 했고, 중고서점에 아직 팔지 않고 살아남은 집에 있는 책들의 책장을 다시 넘기면서 독서기록에 도전할 타이밍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제는 양보다 질이다. 나에게 남겨진 세월도 계속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난 책을 읽을 기회를 잡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하기를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이전글 Probably, Maybe, Perhap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