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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Sep 05. 2023

영화 어바웃 타임을 다시 보고

시간 여행을 해서 예전에 어바웃 타임을 봤던 그 날로 돌아간 듯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도 충분히 나이가 들어서 봤고, 특별히 놓친 감성과 감동이 없을 줄 알았는데...

놀랐다.

영화의 교훈처럼 그냥 일상 중 하루로 돌아가서 그 삶을 다시 살아가는 행복처럼, 그 반복은 내게 지루한 반복이 아니었고, 특별한 자극은 아니었지만 놓쳤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주워담는 작업과도 같았다.

 

코로나 이후 수업 화면녹화를 일상처럼 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연애편지 쓰다 버리고 다시 쓰는 것처럼 인사나 인트로만 몇 번이나 새로 찍었다. 너무도 완벽한 것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물론 말투도 자연스러워지고, 더 자신감이 붙기도 했겠지만, 아무리 반복하고 새로 찍어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포기의 순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고, 그 무뎌짐으로 영상 찍는 게 겨우 가능해졌다. 물론 보는 이들을 배려하려고 내 얼굴은 안나오게 화면녹화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 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되고 완성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move on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인생과 닮아 있었다.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은 기억 속의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동영상강의 찍는 작업이 떠 오른 거였다. 남주는 영상을 다시 찍듯이 인생을 고쳐쓸 수도 있을 것이니.

사실 우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실물로 만나지는 못하고, 삶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추억으로 그때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있다. 마치 수정되지 않는 읽기전용 파일처럼 스쳐가는 아쉬움이지만... 그래서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그 아픔은 그 당시 사랑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이니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 사랑하는 행복을 누리는 대가를 치른 후에 남겨진 잔유물인 것이니.

 

시간 여행이 가능하더라도 특별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다. ordinary한 삶을 extraordinary로 만드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나 운명적인 외적 자극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어차피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영원히 미뤄두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그런데 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으로 돌아가 인생을 바꾸기보다 바뀌지 않을 평범해보이는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고, 매 순간을 누리고 행복해 하는데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순간 단 하나의 후회도 남기지 않고 삶에 충실하고 행복을 누리기 시작할 때쯤, 더 이상 시간여행이 필요없다는 걸 받아들인다.

 

남자 주인공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도 특별할 것 없는 아들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산책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모리와의 화요일>에서 루게릭 병에 걸린 모리 교수의 소원이기도 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단 하루가 허락된다면 그 전의 일상을 하루 반복하겠다는.

내게 그런 제안이 주어진다면, 나도 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던 10년 전에는 아직 두 딸들이 어렸던 때라서 이 장면을 스쳐가듯 보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무치게 공감되었다. 어린 시절의 딸들과는 이제 시간여행하듯 추억속에서만 산책이 가능할 것이니까.

 

<Our Town>이라는 희곡에서도 에밀리는 죽은 직후 자신의 열두번째 생일이었던 평범한 날로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만남도, 특별한 계기나 기회도 아닐 것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의 반복 가운데서도, 즐겁지 않아 보이는 피하고 싶은 순간이라도, 단 한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What if?"라는 끊임없는 상상으로 삶을 바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후회라는 명분으로 떠올린다. 

 

고등학교에만 있다가 중학교에 오게 된 나는 시간여행자처럼 학생들에게 이대로 간다면 마주하게될 가슴 아픈 현실을, 목격자를 자처하면서 리얼하게 얘기를 해줘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에 많이 무력했었다. 

지금은 마음을 비워서인지, 학생들 스스로 고등학교에서 후회를 겪고 난 후 혹 시간여행으로 중학교에 돌아가더라도 결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한계에 충실하여 최선만 다하고 있다.

 

이 영화는 후회로 가득한 이전의 일상을 되돌리려는 비장함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마음으로 그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그냥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았다.

 

실패와 좌절도 우리 삶의 일부이니, 실수와 실패를 리셋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실수할 필요는 없고, 뇌과학적으로도 우리는 오류를 무시하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떤 기회로든 실수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을 바꿀 것이니까...


    영화대사 정리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038352123


            영화 OST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794269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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