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온라인에서 핫한 <민원 없는 완벽한 교사>라는 글을 보았다. 함께 나눠보기에 힘이 되는 글은 아니지만, 고통을 함게 나누고자 아래 그 글을 링크하려 한다.
나도 젊은 시절 학생에게 상처를 받고 힘들 때 그동안 나만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열정도 같이 사라졌었다. 나의 열정이 진짜였는지를 테스트 받는 기분이었고, 그래서 난 그 무력감과 좌절을 두 배로 겪어야 했다. 아이들의 위로와 격려 편지가 쇄도했고, 점심시간에 진행하던 영어인문학독해특강과 개별 단어 테스트 등의 프로그램의 폐지에 대해 대놓고 아쉬워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고마운 마음에 힘을 내야 한다는 이성은 작용했지만, 도무지 계속할 용기도 힘도 나질 않았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의 위로와 격려, 그 존재만으로 아주 서서히 회복이 되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나를 여전히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에는 학기말에 학부모 민원으로 힘들어하며 역시 담임으로서 나만의 열정으로 진행하던 학급특색활동과 학생들과의 교감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 민원의 출발은 나의 젊은 혈기로 인한 감정적인 학생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억울해할 일은 아니었지만 모든 학생들이 나를 다 거부하고 싫어하는 느낌으로 이어지니 도무지 힘을 낼 명분이나 이유조차 찾지 못했다.
고3을 함께 올라가자는 동료교사들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구애 같은 요청도 거부했다. 단 한 분의 학부모님 민원으로도 난 그렇게 무력해질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젊을 때와는 다른 여유가 생긴다. 한계에 대한 인정이고, 기다림을 삶으로 깨우친 결과다.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에 더 큰 존중의 마음을 담는 법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교육은 자발적인 변화에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 조급하면 뿌리가 아닌 꽃꽂이에 더 힘을 쓰게 된다. 그래서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공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과 교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든다고 민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화를 내지 않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세월의 내공이 도움이 되기는 한다. 나이가 들면서 축소되는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겸허하게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드러나는 교육 현장은 정말 심각하다. 내 사례로는 비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와 고통이 교사들을, 그리고 교육계를 마비시키는 것 같다.
보통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그런 일이 생기며, 그로 인해 교사뿐 아니라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학생들에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그래서 아래 선생님의 이야기는 농담 같은데 농담이 아니다. 이런 현실이 아니라면 웃길 수도 있겠지만, 하나도 웃기지 않고 가슴 아프고, 슬프고,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야한다는 당위서 주장이나, 응원 같은 격려조차 죄스러운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아래 글에 농담처럼 유쾌하게 웃을 수 있게 되는 교육현장을 꿈꿔본다.
출처 : https://pann.nate.com/talk/370909851
* 가슴 아픈 교육현장을 담아낸 영상 풀버전
[full] 교사의 죽음,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 추적60분 1336회 KBS 230908 방송
https://youtu.be/WPWWNYGIkyk?si=XmtdKUdRAVfng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