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출간 후 15만 부 기념 리커버판으로 출간된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세대 김주환교수의 역작이다.
resilience
* the ability to be happy, successful, etc. again after something difficult or bad has happened(Cambridge)
* an ability to recover from or adjust easily to misfortune or change(Webster)
단어 안에 이미 많은 이야기를 담겨 있다. 케임브리지 사전에서는 힘든 일이나 나쁜 일을 겪은 후 다시 행복해지고, 성공적이 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웹스터사전에서는 불운이나 변화로부터 회복되거나 쉽게 적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어원으로 보면 re(back) + salire(to jump, leap)로 구성된다.
물리학에서는 압력 이후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탄력성이나 힘을 의미한다.
고무줄을 늘였을 때 다시 튀어 오르듯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그림이 연상된다.
김주환교수는 물리학적인 용어와 영영풀이의 의미를 잘 살려서 “회복탄력성”이라는 거의 우리말 표준해석을 만들어 냈고, 그에 대한 통찰력을 책에 잘 담아냈다.
쉽고 자세한 이야기, 친철한 설명으로 그냥 책을 읽기만 해도 “회복탄력성”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고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교사나 부모로서 아이들의 실패와 좌절을 예방하거나 막아줄 수는 없다. 그걸 바라보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그 아픔만큼 성장하므로, 일부러 아이들을 아픔으로 내몰 수는 없지만 그 가슴 아픈 과정을 응원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른들이 개입해야 할 타이밍은 아이들의 고무줄의 탄성이 너무 늘어지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살펴주어야 할 때다. 영영 주저앉거나 포기해버리지 않도록 어른들의 진심의 마음이 그 응원의 메시지로 가닿도록 애쓸 필요가 있다.
그저 아픔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스스로 탄력성을 발휘하지만, 때로는 좀 더 강력하게 개입해야 할 때도 있고, 이런 도서의 도움을 받아 덜 아프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몇 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하려 한다. 나머지 부분도 일독을 권한다.
특별히 더해질 나의 의견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회복탄력성의 정의>
회복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떨어져 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 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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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실패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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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사실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실패를 안 했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넘어섰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시험의 좌절이 필요한 이유는 실패를 통해 배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학생들은 대부분은 시험성적을 자격과 최종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규정해 버린다. 어른들의 인식과 강요에 의한 시스템적 오류다. 물론 내신 시험의 경우 한 번 망한 등급 자체를 만회할 방법은 없다. 그것이 축적되면 더 좁고 치열한 정시 파이터로 내몰리기 때문에 좌절감은 필연이긴 하다. 그래서 미리 더 준비하려고 하고, 그래서 선행이 더 횡행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그런 시스템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감지하고 반응한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아직 발휘되지 않은 잠재성조차 좌절과 포기로 영원히 덮어버릴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또 스스로에게 지금의 좌절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더 큰 성장의 가능성이 있음을 흘러가는 말로서 하는 위로가 아니라 확신에 찬 현실인식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회복탄력성은 자생적인 속성이지만, 그 속성을 장착하기까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사가 존재하고, 집에서 부모가 존재한다.
주변 환경이나 당장의 실적으로 아이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규정해버리지 않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공감과 현실코칭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정노동과 아픔의 공유는 어른들의 몫이긴 하다.
회복탄력성의 뛰어난 학생들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한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 당장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어도 결국에는 지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러니 당장 높은 성적을 갖는 것보다, 회복탄력성의 속성을 갖는 것이 평생 자산과 힘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회복탄력성을 키워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행복을 뇌에 새기는 연습>
지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배움을 통해 얻어지는 명시적explicit 지식과 익힘을 통해 얻어지는 암묵적implicit 지식이다. 명시적 지식은 머리로 배우는 것이고, 암묵적 지식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명시적 지식은 암기해야 내 것이 되지만 암묵적 지식은 습관을 들여야 내 것이 된다. 공자의 논어 맨 처음에 나오는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의 학學이 곧 명시적 지식의 습득이요, 습習은 암묵적 지식의 체화다. 머리로 배우는 명시적 지식은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거나, 논리적 추론을 이해하는 지식이다. 역사나 과학, 수학 등의 과목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식은 한 번만 잘 이해하고 암기해두면 내 것이 된다. 그러나 암묵적 지식은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몸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지식이다. 악기 다루는 것, 자전거 타는 것, 그 밖의 다양한 스포츠 기술 등을 배우는 예체능 과목이 대표적인 예다. 영어 같은 외국어 과목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영어의 듣기와 말하기는 반복 연습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체능 과목과 유사하다.
이러한 암묵적 지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몸에 배게 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습관을 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은 사실 몸에 배는 것이 아니라 뇌에 새겨지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 신경들 사이에 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한 신경연결망이 새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행동이나 사건에 뇌가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신경망 구조를 잘 만들어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부단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종류의 훈련이나 연습은 뇌에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새로운 신경망이 형성되려면 뉴런의 수상돌기와 축색돌기를 이어주는 시냅스 부분에 새로운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 일정한 형태로 ‘자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과 연습이 효과를 보려면 보통 수 주에서 수개월 이상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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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골퍼들은 스윙할 때 뇌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생각이 많은 것이다. 아마도 “하체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어깨 회전은 충분히 하고, 손목 코킹 각도 유지하면서 힘 빼고 끌어내리다가 골프채를 던지듯이 치고…” 등등 배운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이리라. 즉 아마추어 골퍼에게 스윙은 여전히 명시적 지식에 따른 ‘몸 움직이기’라 할 수 있다. 반면 LPGA 프로 골프선수들은 스윙할 때 초보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특정한 부위의 뇌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를 훨씬 적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치려면 골프 스윙이라는 동작이 몸에 완전히 배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뇌에 그러한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 구조가 잘 형성되어 있어서 골프 스윙할 때마다 뇌의 여러 분야에 저장되어 있는 다양한 정보를 다시 긁어 모으는 복잡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프로선수에게 골프 스윙은 뇌에 깊이 습관화되어 있는 셈이다.
회복탄력성의 습득도 이러한 훈련과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책은 회복탄력성이 어떠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당신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명시적 지식을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회복탄력성 증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지식이 암묵적 지식이 되어 당신의 뇌에 확실한 회복탄력성의 신경망 구조를 형성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회복탄력성은 당신이 들여야 할 좋은 습관에 의해 길러진다.
그러한 훈련은 뇌를 재-회로화rewiring 시키는 일이다. 부정적인 사건에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뇌의 반응 기제를 바꾸는 일이다. 즉 당신의 뇌를 긍정적인 뇌로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복적인 훈련도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은 우리의 뇌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저절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이 바로 긍정성을 훈련해야 하는 이유다. 3주가량 꾸준히 노력하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고 내게 벌어지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좋은 방향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습관이 들기 시작한다. 3개월 정도 지나면 회복탄력성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난 기질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후천적이고 의식적인 훈련과 노력이 결정적이다. 무슨 일이든 몸에 암묵적 지식이 아닌 내재적 지식처럼 몸에 새겨지는 습관화가 중요하다. 학습 습관도 그렇고 회복탄력성을 갖추는 일도 그렇다.
3주에서 3개월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순탄하고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러나 문턱을 넘으면 신세계가 열린다. 그러니 몇 번의 좌절과 포기의 순간도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영역부터 조금씩 늘려가면서 애써야 한다. 한 번 습관을 들이면 애쓰지 않아도 발휘할 수 있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후에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한 과정을 극복하면 다음 레벨을 감당할 만한 내공도 함께 쌓였으니 수월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니 단 번에 이루려는 욕심도, 몇 번의 실패와 좌절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달하게 되어 있다. 각자 시간이 다를 뿐이다.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제성이 아니라 자율성이다. 물론 학생 스스로의 충동통제력이 발휘되지 않을 때 어른들이나 외부의 강제성이 동원된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충동통제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자율성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자생적으로 생겨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박탈된 자율성, 충동통제력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충동통제력>
보통 학업성취도와 학습동기, 흥미도, 효능감은 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감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는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더 잘하지만, 공부에 대한 흥미도, 동기, 자신감 등은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이 보이는 독특한 현상이다. 다른 나라 학생들의 경우 학업성취도와 학업흥미도, 효능감은 관련성이 높다.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능력과 우수한 자질을 지녔으면서도 자율적인 학습이 강조되는 대학에 입학하면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업무성취도나 생산성에 있어서 상당히 뒤지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2010년 한 특강을 통해 한국의 높은 교육열에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매년 하버드 대학에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다. 한국 학생 비율은 하버드 신입생 1,600명 중에 6%나 된다. SAT 성적이나 내신 성적도 매우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서 낙제하는 학생 중에서 한국 학생 비율은 10명 중 9명이나 될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청소년기인 만 15세 때는 학업성취도가 조금 낮더라도 학생들의 정의적 태도—효능감, 흥미도, 내적동기 등—가 높게 나오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스로 재미있어서 즐기면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당해낼 수 없다. OECD 교육국의 PISA 관리 책임자인 베르나르 위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인 것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행복한 아이들은 아니에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저자의 해법이 제시된다. 평소 나의 교육의 방향과 다르지 않아 신기했다.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다.
<자율성이 가져오는 행복>
디씨와 라이언 교수는 자기결정성이론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키워주는 것이 아이의 행복과 학업 성취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디씨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자율성이야말로 인간의 능력 발휘와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같은 일이라도 자기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야 인간은 흥미를 느끼며 강요된 것,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압박을 느끼는 순간 그것에 대한 흥미를 급속히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좋아서 취미로 하던 일이 돈벌이가 되면 갑자기 재미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나는 이러한 자기결정성이론에 입각해서 우리나라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자기결정성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생활만족도는 높이고 게임중독 성향은 낮춘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게임을 엄격하게 금지하면 할수록 오히려 아이들이 게임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 게임중독에 빠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게임을 못 하게 막고 야단치는 억압적인 부모임이 밝혀졌다. 부모의 강압적인 금지가 게임을 더욱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며, 몰래 게임하는 것을 더욱더 짜릿하게 만들어 결국 게임중독에 빠지게 한다.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인데, 엄마가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고, 그 반대로 게임은 하고 싶은 것인데 엄마가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공부라는 고통을 피하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수단으로서 게임에 더 적극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가질 수 있도록 자율성을 키워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빠에게 야단맞지 않기 위해서 혹은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은 불행한 아이들이다. 자기가 하는 일(공부), 자기가 사는 삶(학교 다니기)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삶의 즐거움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사는 법을 먼저 터득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 즐기면서, 음미하면서, 행복해하면서 자기가 선택한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공부와 학문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 현재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생각하면 영원히 불행해진다.
...
행복은 ‘성공의 결과’라기보다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다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해진다기보다는 행복해져야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