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미니학점제 영어문법수업 첫 시간에 아래의 내용을 각자 공부하라고 했다. 잘 모르겠으면 친구들에게 물어보라고 했고, 10분 후에 시험치듯이 내가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할 거라고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랜덤 번호뽑기로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품사가 뭐냐? 명사가 뭐냐? 보어의 역할은? 이런 식으로 기본적인 개념을 물었다.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학습지 내용 그대로 대답했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기 전에는 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인용해서 학생들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전했다.
안다는 건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암기해서 쌓아 두었다가 그대로 출력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여 이해하는 거라고. 진정한 지식의 힘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아는 것 같은 내용이라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을 책에 나오는 언어와 자신만의 언어가 만나 나만의 지식체계를 축적하여 이해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은 이런 암기의 방식으로 중학교 때 원하는 성적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부터 이런 학습방식은 한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 나름의 언어로 위 학습지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위의 내용은 나만의 언어가 아닌 학습지 그대로 발췌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진정으로 알고 얘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어 학습 단계>
정확한 문장해석을 위해서는 모든 단어의 의미와 역할이 납득되어야 한다.
단어를 만났을 때 발음, 품사, 의미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다 알아야 한다.
정확한 발음으로 유창하게 음성적으로 반응을 해야 의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여유가 생길 것이니 귀찮아도 발음부터 정확히 익혀야 한다.
품사를 알아야 하는 건, 품사에 따른 지정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에 따른 의미를 맥락에 맞게 연결하는 것이 해석이다.
<품사>
그렇다면 품사란? 학습지에는 단어의 종류라고 나오지만, 선생님의 언어로 단순하게 설명하면 "단어특"
단어의 고유한 특성이다. 개별적인 특징이라기보다 공통적인 성질로 분류해 놓은 그룹적 특징인 것이지.
품사는 "-사"로 끝난다. 가장 중요한 품사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가 있다.
명사는 이름, 동사는 동작이나 상태, 형용사는 명사 수식 혹은 서술, 부사는 특히 동사 수식.
<문장성분>
문장성분이란? 문장에서의 역할. "-어"로 끝난다.
서술어는 동사 독점이므로 예외적으로 편의상 "동사"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
주어는 누가? 무엇이?
목적어는 동사 행동의 대상.
동사 뒤의 명사는 거의 목적어로 보면 된다. 주어가 목적어를 대상으로 동작을 한다고 이해하면 되고.
보어는 앞 명사를 보충하는 말.
정확하게 얘기하면 앞 명사가 어떠하다고 서술하는 역할. 그래서 명사 뒤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수식어는 한정(구별)하는 역할을 하게 되지.
형용사는 반드시 명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전제로 하며, 형용사를 문장에서 만났을 때는 명사를 찾아내야 한다. 명사를 수식하거나 보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수식은 명사 중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정보를 더해서 범위를 좁히면서 한정, 구별하는 역할이고, 보어는 이미 무엇을 가리키는지 안다는 것을 전제로 그 명사가 어떠하다라고 서술하는 역할이지.
물론 주어에 대한 보어는 대개 be, get, seem 등의 linking verb의 존재로 역할을 부여받는다.
목적어에 대한 보어는 목적어 뒤에 바로 이어서 쓰면 되고.
<구와 절>
여러 단어의 모임이라는 공통점, 그러나 절에는 동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차별점이 있다.
구, 절은 묶음 전체에 품사를 인위적으로 부여한다. 그래야 문장 내 역할을 지정할 수 있으니까.
동사 변형 형태인 to do, doing, Ved(pp)를 준동사라고 하고, 준동사에 품사를 부여해서 명사구, 형용사구, 부사구가 되면 각각 맥락에 맞게 주어, 목적어, 보어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장단위 앞에 that, wh- 를 붙여 명사절, 형용사절 등의 역할을 부여하지.
명사구(절), 형용사구(절) 구별
<진정한 앎의 과정>
암기로 커버할 수 있는 건 표층구조에 불과하며, 심층구조를 통해서만 이해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심층구조는 어려운 심화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기를 의미한다.
단어는 문장에서 만나고 의미를 추론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단어 뜻도 모른다면 추론은 사치스러운 일에 불과하다. 구구단을 외우고 나서야 계산이 가능해지고, 심화개념으로 역량을 확장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단어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암기해 두어야 한다. 그 대신 잘 외워지지 않을 것이니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읽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발음부터 정확하게 하면서 점차 의미로 나아간다.
시중의 단어장이나 학원단어장도 좋지만, 이왕이면 수준별, 단계별 빈도순으로 정리된 쌤의 단어장을 활용하기를. QR코드 찍어서 동영상강의를 활용하여 들으면 정확한 발음과 의미를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지금 언급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고등학교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본기에 해당되는 기초공사와 같은 심층구조가 갖추어져야 고등학교 단어와 설명에 맞닿는 이해의 수준으로 넘어설 수 있을 거다.
지금 해야 하는 공부는 이후의 공부에 맥락을 이어가며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성취에 조급해하지 마라. 모의고사를 푼다든지, 선행 진도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어떤 과목의 어떤 내용이든 잠시 멈춰서 왜 그런지를 따져가면서,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친구에게 가르쳐 주며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렴.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이후의 과정이 단순한 암기의 나열이나 표층구조에 머물러 있는 허공에 흩어진 노력으로 끝나지 않고 이해로 쌓아 올리는 지식체계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배움을 멈추지 않게 될 것이니.
성적은 그런 학습의 과정 끝에 어쩌다 보니,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결과로 따르게 될 것이니, 그 결과에 집착하며 의식적으로 애쓰지는 말아야 한다.
몇 시간 안 남은 수업시간에 모든 기본기를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알려주는 방향대로 스스로 공부법을 터득할 기회가 될 거라고 믿는다.